속초 원도심을 걷다 보면 이 도시가 두 개의 속도로 동시에 흘러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교동 청초호를 따라 이어지는 청초호길에는 칠성조선소를 개조한 카페, 비단우유차, 오래된 문우당서점과 동아서점이 나란히 서 있다. 조선업이 저물던 자리에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들어와 만든 거리다. 청초호를 돌아 청호동으로 건너가면 풍경이 순식간에 바뀐다. 아바이마을의 좁은 골목과 함경도식 순대와 냉면 냄새, 한국전쟁 실향민 1세대의 기억이 여전히 공기 속에 남아 있다. 한쪽은 서핑과 워케이션을 좇는 이십 대의 도시이고, 다른 한쪽은 칠십 년 전 피난 온 사람들이 만든 도시다. 같은 청초호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걸어서 오가기엔 만만치 않은 이 두 동네의 거리가, 속초라는 도시의 압축된 초상이다.
그런데 속초를 오래 들여다볼수록 드는 의문은 다른 데 있다. 속초는 언제부터, 어떻게 강릉의 그늘에서 벗어나 고성-속초-양양으로 이어지는 독자적인 생활권의 중심이 되었을까. 지도 위에서는 자명해 보이는 이 구도가 실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지금 속초가 겪고 있는 흔들림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조선시대 영동 지방의 가장 강한 중심지는 강릉이었다. 속초는 독립된 고을도 아니었다. 지금의 속초 지역은 오랫동안 양양에 속했고, 20세기에 들어와서야 하나의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37년 도천면이 속초면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면사무소도 대포리에서 속초리로 옮겨왔고, 1942년에는 속초읍으로 승격했다. 속초라는 이름을 가진 행정 중심지가 생긴 것 자체가 채 백 년이 되지 않는다.
성장의 배경에는 항구가 있었다. 속초항은 동해안 수산업의 거점으로 성장했고 인근 양양철광이 개발되면서 철광석을 실어 나르는 항구 역할도 맡았다. 그러나 진짜 전환점은 분단과 전쟁이었다. 38선 이북에 편입됐다가 한국전쟁으로 수복되면서 속초에는 함경도 출신 피난민들이 대거 정착했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청호동 바닷가에 실향민들이 모여 아바이마을을 만들었다. 1970년에는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속초는 전국적인 관광도시로 성장할 조건까지 갖추게 됐다.
강릉이 오랜 시간 영동의 행정과 교육, 상업 중심지로 성장했다면 속초는 항구와 실향민, 설악산이라는 전혀 다른 자원으로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고성-속초-양양이 강릉과 구별되는 별도의 생활권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런 변화가 누적된 결과였다. 강릉처럼 오랜 역사 속에서 주변 지역을 끌어당긴 중심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20세기 중반 이후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고성과 양양 사이에서 필요한 몇몇 중심 기능을 맡기 시작한 신흥 중심지에 가까웠다.
흥미로운 것은 속초를 크게 바꾼 힘이 번번이 밖에서 들어왔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실향민이었다.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청호동에 정착하며 아바이마을을 이뤘고, 속초는 짧은 시간에 인구가 늘어나는 도시가 됐다. 함경도식 냉면과 순대는 이제 속초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아바이마을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속초라는 도시의 중요한 정체성이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사람들에 의해 형성됐음을 보여주는 장소다.
두 번째는 대규모 관광 투자였다. 설악산이 국립공원이 된 뒤 속초와 설악권에는 대형 콘도와 리조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화와 대명 같은 대기업이 장기간 투자하면서 설악산 주변은 국내를 대표하는 대규모 숙박·휴양지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속초가 단순한 어항이나 설악산을 거쳐 가는 도시가 아니라 며칠 머무는 관광도시로 성장하는 데 이 투자가 큰 역할을 했다.
최근 십여 년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 서핑과 워케이션, 로컬 라이프스타일을 좇는 젊은 세대다. 특히 양양을 중심으로 형성된 서핑 문화가 속초까지 영향을 미쳤고, 동명동과 청초호 주변에는 독립서점과 카페, 게스트하우스 같은 새로운 공간들이 생겨났다. 실향민과 대기업 투자만큼 도시의 구조를 바꾼 힘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속초의 이미지를 다시 그리기 시작한 새로운 흐름임은 분명하다.
속초는 그렇게 밖에서 들어온 사람과 자본과 문화에 유난히 열려 있던 도시였다. 그리고 새로운 것이 들어올 때마다 도시의 얼굴도 크게 달라졌다.
그 과정에서 속초는 고성과 양양 사이의 생활권 중심 기능도 하나씩 갖췄다. 그러나 춘천이 강원 영서 북부의 행정·교육·의료·교통을 폭넓게 장악한 것과 같은 강한 구심력을 속초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 고성과 양양은 독립된 군이고 각각 자체 행정과 생활 기반을 갖고 있다. 속초의 중심성은 모든 기능을 독점하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 지역을 함께 묶는 몇몇 중요한 기관과 서비스가 속초에 자리 잡았다는 데 있었다.
가장 분명한 흔적은 법원이다.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의 재판 관할은 지금도 정확히 속초시·고성군·양양군이다. 고성과 양양에 군법원이 따로 있지만 주요 재판을 담당하는 지원은 속초에 있다. 국세 행정도 같다. 속초세무서의 관할구역 역시 속초·고성·양양 세 지역이다. 사법과 세무라는 국가 행정의 두 기능이 같은 세 지역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고 있는 셈이다.
교육에서는 속초와 양양의 결합이 더 직접적이었다.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두 시군을 하나의 교육지원청이 담당하는 속초양양교육지원청이 속초에 자리 잡고 있다. 양양에는 교육지원센터가 있지만 주요 교육행정은 속초에서 담당해 왔다. 다만 이 체제는 이제 끝을 앞두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은 2027년 3월 양양교육지원청을 독립 개청한다는 목표로 신설 절차를 밟고 있다.
의료에서도 속초는 주변 지역이 의존하는 거점이다. 속초의료원은 속초뿐 아니라 고성·양양·인제 주민의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지역바카라임의료기관이다. 교통에서도 한때 속초공항이 이 지역의 하늘길 역할을 했지만 2002년 양양국제공항이 개항하면서 강릉공항과 함께 그 기능이 양양으로 통합됐다.
이런 기관들을 하나씩 놓고 보면 속초의 성격이 보인다. 모든 기능이 속초로 빨려 들어오는 강력한 단핵 생활권이라기보다, 고성과 양양이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법원·세무·교육·의료 같은 일부 상위 기능을 속초에서 공유하는 작은 생활권이다. 속초의 중심성은 강한 지배력보다 세 지역 사이에 필요한 기능을 제공하는 데서 만들어졌다.
그런 중심성은 지금 두 방향에서 흔들리고 있다. 밖에서는 주변 도시들의 독립성이 강해지고 있고, 안에서는 속초의 공간 자체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먼저 생활권이 다극화되고 있다. 강릉은 KTX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발판 삼아 관광도시를 넘어 도시적 매력을 갖춘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부상했다. 로컬 상권이 몇 개의 점이 아니라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강릉과 달리, 속초의 새로운 상권은 동명동과 청초호길 등 몇 개의 거점에 흩어져 있어 도보로 도시 전체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양양고속도로도 2017년 완전 개통됐다. 중요한 것은 이름 그대로 이 고속도로의 동해안 종점이 속초가 아니라 양양이라는 사실이다. 양양은 이제 속초를 거치지 않고 수도권과 직접 연결된다. 서핑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양양은 교통의 종점일 뿐 아니라 독립적인 목적지가 됐다. 고성 역시 아야진과 죽왕면 일대 등을 중심으로 속초와 다른 해변 문화와 로컬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행정 기능에서도 같은 움직임이 나타난다. 2027년 예정대로 양양교육지원청이 독립하면 오랫동안 속초가 맡아온 교육행정 기능 하나가 양양으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속초 생활권이 해체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원과 세무, 의료 등에서는 여전히 속초의 중심 기능이 남아 있다. 다만 고성-속초-양양을 속초 하나가 끌고 가는 구조가 아니라 세 지역이 각각의 중심성을 키우면서 필요한 기능을 공유하는 느슨한 다극 생활권으로 변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속초 내부에 있다. 애초 속초를 관광도시로 키운 개발의 방식이 이제 도시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해안에는 대규모 숙박시설과 고층 건물이 빠르게 늘었고, 원도심에는 고층 아파트와 오래된 저층 상가가 뒤섞여 있다. 관광객은 계속 들어오지만 개인 창업자와 로컬 브랜드가 오랫동안 자리 잡으며 거리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은 오히려 귀해지고 있다. 강릉 안목해변처럼 작은 가게들이 연속적으로 거리를 만드는 방식보다 대규모 숙박시설과 개별 관광시설이 점처럼 들어서는 방식이 강하다.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는 이런 속초에 또 한 번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현재 정부 계획은 2029년 개통이다. 속초시는 노학동과 조양동 일대 속초역 주변에 업무·주거·문화·공공시설과 MICE, 관광·숙박·상업시설을 결합한 대규모 역세권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철도가 열리면 수도권과의 거리는 지금보다 훨씬 짧아질 것이다.
하지만 철도 역시 속초가 스스로 만들어낸 동력은 아니다. 국가가 놓는 철도와 외부 관광객, 대규모 개발에 다시 한번 도시의 미래를 맡긴다면 지난 반세기의 성장 방식이 반복될 뿐이다.
속초가 역세권 개발에서 기대하는 미래 산업 가운데 하나가 MICE다. 속초역 주변에 MICE와 관광·숙박·상업시설을 결합해 동해안의 거점 허브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산과 바다와 호수와 항만을 두루 갖춘 입지를 생각하면 충분히 나올 법한 방향이다. 다만 MICE 역시 회의와 행사, 관광객을 외부에서 계속 끌어와야 돌아가는 산업이다.
정작 속초가 이미 가지고 있고 도시의 정체성과 훨씬 가까운 자원은 따로 있다. 아웃도어다.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갈래다. 설악산이 있으니 산악이 가장 먼저다. 바다도 있다. 속초는 항구도시이자 해변 도시이고, 바로 이웃한 양양에는 이미 강력한 서핑 문화가 형성돼 있다. 영랑호와 청초호는 걷고 달리는 일상적인 아웃도어 공간이다. 산과 바다와 호수를 한 도시의 일상에서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속초가 가진 드문 조건이다.
산림청이 한국 최초의 국립산악박물관 부지로 속초를 선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2010년 전국 11개 지방자치단체를 평가한 산림청은 속초가 산악·등산의 역사성과 상징성이 뛰어나고, 노학동 부지에서 설악산 대청봉과 울산바위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 설악산과 산악문화가 속초의 정체성이라는 사실을 국가기관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국립산악박물관의 중심은 아직 산악의 역사와 문화에 있다. 한국 등반사의 기록과 장비를 보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산악 장비와 의류를 디자인하고 만들고 브랜드화하는 산업 생태계까지 연결되지는 않는다. 박물관은 있는데 그 주변에서 성장한 대표적인 아웃도어 브랜드는 아직 없다.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탄생지를 보면 다른 가능성이 보인다. 파타고니아는 캘리포니아의 서핑과 클라이밍 문화 속에서 이본 쉬나드가 자신이 사용할 등반 장비를 만들며 시작했다. 살로몬은 알프스의 관문 안시에서 스키 장비를 만들며 성장했다. 일본의 스노피크 역시 산을 좋아하던 창업자가 자신이 원하는 등산 장비를 직접 만드는 데서 출발했다. 관광청이 먼저 산업을 지정하고 기업을 유치한 것이 아니다. 아웃도어가 일상이었던 지역에서 그 생활의 불편을 해결하려던 사람들이 브랜드를 만들었다.
속초에 필요한 것도 아웃도어 관광지가 아니라 아웃도어 도시일지 모른다. 관광지는 외지인이 찾아와 소비하고 떠나는 곳이지만, 아웃도어 도시는 주민이 산을 오르고 바다에 들어가고 호수를 달리면서 그 생활에서 장비와 옷, 가게와 서비스, 콘텐츠와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설악산을 찾는 등산객의 수보다 중요한 것은 설악산 때문에 속초에서 창업하는 사람이 얼마나 생기는 가이다. 국립산악박물관도 과거의 등반사를 보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장비와 디자인, 브랜드와 창업을 연결하는 거점이 될 수 있다.
속초는 지난 칠십 년 동안 밖에서 들어온 힘으로 성장했다. 실향민이 도시를 만들었고, 대기업이 관광시설을 만들었으며, 도로와 공항과 이제는 철도가 수도권과의 거리를 줄였다. 그 힘들이 속초를 고성과 양양 사이의 작은 중심지로 끌어올린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밖에서 오는 힘은 언제든 방향을 바꾼다. 양양으로 갈 수도 있고 강릉으로 갈 수도 있으며, 투자가 멈추면 사라질 수도 있다.
다음 속초를 만드는 힘은 조금 달라야 한다. 설악산을 오르는 사람, 영랑호를 달리는 사람, 동해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브랜드와 가게와 일자리가 태어나야 한다. 속초가 가진 산과 바다와 호수를 관광자원으로 소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산업으로 바꾸는 것이다. 밖에서 온 힘으로 중심지가 된 속초가 안에서 자라난 힘으로 그 중심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속초의 다음 동력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