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다움

강릉다움


대관령을 넘어 영동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도시가 강릉이다. 옛 대관령길에서 영동고속도로, KTX 강릉선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서울과 영동을 잇는 주요 교통축이 강릉을 향했다. 강릉은 그렇게 오랫동안 영동의 관문이었다. ‘지리가 운명’이라는 말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도시도 드물다.


그러나 길이 모인다는 사실만으로 강릉의 대표성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사람과 물자가 지나가는 길목이 되는 것과, 그곳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주변으로 퍼뜨리는 것은 다른 일이다. 강릉의 특별함은 후자에 있다. 유교 문화에서 단오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최근의 커피와 로컬 브랜드 문화에 이르기까지 강릉은 중앙의 문화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왔다.


이 도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문화 선도력이다. 강릉에서 만들어진 문화와 생활방식은 강릉에 머물지 않고 관동으로 퍼져나갔다. 시대에 따라 그 내용은 달라졌지만, 강릉이 먼저 만들고 주변이 받아들이는 관계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강릉은 국내 지역생활권 중심도시 가운데 이런 문화적 대표성이 가장 뚜렷한 도시 중 하나다.



강릉의 발견 — 강릉다움

강릉다움은 도시에 도착할 때부터 일상적인 풍경에서 느껴진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해변을 지나 원도심으로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진다. 서두르지 않는 걸음, 정갈한 음식, 필요 이상으로 꾸미지 않은 골목. 강원도의 여느 동해안 도시와 강릉을 구분 짓는 것은 관광 인프라만이 아니라 이 도시 특유의 태도다. 그 태도가 오랜 시간 쌓여 강릉만의 문화를 만들었고, 다시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 독자성의 흔적은 아주 오래전부터 발견된다. 강릉 일대에는 삼국시대 이전 예국과 하슬라에 관한 기억이 남아 있고, 이후 고구려와 신라의 영역이 된 뒤에도 동해안의 중요한 정치·군사적 거점이었다. 고대의 정치적 독립성을 오늘날 강릉의 성격과 곧바로 연결할 수는 없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이후의 역사에서도 강릉이 중앙에서 만들어진 문화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변방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가 대표적이다. 오죽헌에서 태어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는 강릉의 문화적 기억을 전국적인 문화 자산으로 만든 인물들이다. 선교장과 오죽헌, 향교와 대도호부 관아가 남아 있는 도시 공간 역시 강릉에서 유교 문화가 단순히 수용된 것이 아니라 지역 사족슬롯의 생활과 건축, 교육을 통해 재생산되었음을 보여준다. 강릉단오제는 또 다른 계보다. 유교적 질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지역의 오래된 신앙과 놀이, 공동체 문화가 살아남아 오늘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강릉다움을 외부 문화를 거부하는 폐쇄성보다는 외부에서 들어온 것을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 다시 내놓는 능력에서 찾고 싶다. 오늘날 가장 좋은 사례가 커피다. 커피는 강릉의 전통산업도 특산물도 아니었다. 그런데 박이추와 테라로사 같은 개척자들이 등장하고 카페와 로스터리, 커피축제가 뒤따르면서 강릉은 한국을 대표하는 커피도시가 되었다. 외부에서 들어온 문화가 강릉에서 새로운 지역문화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솔향이라는 도시 브랜드에서 최근 강조되는 ‘수수한 아름다움’이라는 이미지로 자기규정이 이동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단아함, 여유, 한적함, 품위. 화려함보다 절제를 택하는 이 도시의 성정은 브랜드 슬로건 이전부터 오죽헌과 선교장의 마당에, 경포호의 풍경에, 오래된 원도심의 골목에 배어 있었다.


20세기 국토개발 과정도 역설적으로 강릉의 옛 도시 조직을 지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강릉이 철도망에 연결된 것은 1962년으로, 경부선과 호남선의 주요 도시들보다 훨씬 늦었다. 여기에 강릉 공군기지로 인한 고도제한까지 더해지면서 대규모 고층 개발의 압력도 상대적으로 제한됐다. 그 결과 명주동을 비롯한 원도심에는 작은 필지와 골목망, 낮은 도시 경관이 상당 부분 남았다. 개발의 지체가 결과적으로 강릉의 문화를 담을 그릇을 지켜준 셈이다.


최근의 로컬 브랜드도 그 위에서 자랐다. 커피, 수제맥주, 음식, 디자인이 뒤섞인 강릉의 산업 지형은 정부가 하나의 산업을 계획해 만든 결과라기보다 지역 자원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한 사람들이 축적한 결과에 가깝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KTX 개통 이후 강릉은 수도권 젊은 세대가 쉽게 찾는 도시가 되었고, 오래 축적된 정갈함과 여유가 새로운 세대의 취향과 만나 ‘강릉 감성’이라는 이미지까지 만들어냈다. 시대마다 소재는 달랐지만, 새로운 것을 강릉의 것으로 바꾸는 방식은 이어지고 있다.


강릉의 중심성

강릉의 문화 선도력은 문화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교통과 행정이 사람을 모으고, 교육이 인재를 길러내며, 상업과 산업이 그것을 일상 속에서 확산시켰다. 이 여러 기능이 겹쳐지면서 강릉은 관동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강릉생활권은 행정구역으로는 강릉시 하나지만, 사법 관할로 보면 강릉·동해·삼척 세 도시를 아우른다.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이 관할하는 범위가 바로 이 셋이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범위는 훨씬 넓어진다. 강릉대도호부는 삼척과 양양 두 도호부, 평해·간성·고성·통천 네 군, 울진·흡곡 두 현을 아우르는 관동의 중심지였다. 신라시대 명주의 영역은 한때 남쪽으로 지금의 경북 북부 동해안까지 이어졌다.


행정적 중심성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강릉대도호부 관아와 칠사당이라는 역사적 상징을 넘어 지금도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과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이 강릉에 자리한다. 강원영동병무지청이라는 기관의 이름 자체가 강릉이 시 경계를 넘어 영동지역을 담당하는 행정 거점임을 보여준다. 과거 관아가 주변 지역을 행정적으로 묶었다면 현대의 특별행정기관과 사법기관이 그 기능의 일부를 이어받은 셈이다.


교통도 강릉의 중심성을 더한다. 강릉역은 KTX 강릉선의 동쪽 거점이면서 동해선과 연결된다. 동해선 철도를 따라 남쪽으로 동해·삼척을 지나 부산 부전까지 갈 수 있고, 강릉~제진 구간이 완성되면 북쪽 동해안 철도망도 이어진다. 도로에서는 영동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가 만난다. 대관령이라는 자연의 관문이 철도와 고속도로라는 현대의 관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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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로 확산되는 강릉 로컬 브랜드 생태계


산업과 상업에서도 강릉은 중심지다. 강릉은 이미 자기 문화를 산업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커피에서는 보헤미안의 박이추와 테라로사의 김용덕 같은 개척자가 나왔고, 수많은 카페와 로스터리가 뒤따랐다. 버드나무브루어리로 대표되는 수제맥주, 초당두부에서 파생된 새로운 음식과 디저트, 감자 소재로 만들어지는 로컬 콘텐츠 생태계 등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 분야의 로컬 브랜드도 같은 흐름에 있다. 이 브랜드들의 본질은 단순한 제조업이나 음식업이 아니다. 강릉에서 어떻게 먹고 마시고 쉬는지를 상품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문화산업에 가깝다.


상업 역시 강릉만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맛집과 카페가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포남동, 초당동, 명주동, 홍제동, 강문과 안목 등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다. 동네마다 작은 앵커스토어가 자랄 수 있는 구조다. 전통적인 중심상업지구에는 성남동 중앙시장이 있다. 과거 대관령을 넘어 평창과 진부까지 물자가 오가던 영동지역 상업의 중심이었고 지금도 강릉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남아 있다. 강릉에 백화점이 없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대규모 소비시설보다 시장과 대형마트, 그리고 도시 곳곳의 상점과 음식점이 소비를 나눠 갖는 구조다.


생활문화에 이르면 강릉의 문화적 중심성은 더욱 선명해진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가 있고, 오죽헌과 선교장, 강릉대도호부 관아가 있다. 명주동에서는 문화유산과 골목상권을 연결하는 문화행사가 열린다. 강릉시립미술관 교동관에 이어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와 마이어 파트너스가 설계한 솔올관까지 시립미술관 체계에 들어왔다. 독립서점과 문화공간, 강릉아트센터와 시립예술단,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공간도 곳곳에서 활동한다. 역사문화와 현대문화, 상업문화가 한 도시 안에서 이 정도로 겹쳐 있는 것이 강릉의 힘이다.


크리에이터 스페이스 중심으로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진입하는 명주동 골목상권


다른 생활권 중심지와 마찬가지로 강릉은 교육 허브로 기능한다. 강릉고와 옛 강릉농고, 현재의 강릉중앙고 같은 학교들은 오랫동안 영동지역의 인재를 길러낸 전통을 갖고 있다. 강릉고는 지금도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거점형 기숙형 고교로 선정됐다. 강릉이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여전히 주변 지역의 학생을 끌어들일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대학이다. 강릉에는 국립 강릉대학교와 관동대학교가 있었고 이후 강릉대학교는 원주대와 통합해 강릉원주대학교가 되었다. 그러나 춘천의 강원대학교처럼 강원도 전체에서 인재를 빨아들이고 도시의 지식·문화·산업을 동시에 움직이는 강력한 대학 앵커가 강릉에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2026년 3월 강릉원주대학교가 강원대학교와 통합되면서 강릉은 독립적인 국립대학마저 잃었다. 강릉원주대는 이제 강원대학교 강릉캠퍼스가 되었다.


이 변화는 강릉의 미래에 생각보다 중요하다. 문화 선도력은 과거의 문화유산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새로운 세대가 들어오고, 다른 지역 출신의 청년들이 섞이고, 연구자와 창업가와 예술가가 머물러야 새로운 문화가 계속 만들어진다.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힘에서는 강릉이 영동 어느 도시보다 강하지만, 20대 청년을 몇 년씩 머물게 하는 힘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강릉의 문화 선도력을 앞으로도 유지하려면 강원대학교 강릉캠퍼스가 단순한 지역 캠퍼스에 머물지 않고 강릉의 산업과 문화에 맞는 분야에서 전국의 학생을 끌어들이는 특성화 대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강릉 중심성에 대한 위협

강릉의 중심성이 영원히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역사에서도 확인된다. 신라시대 명주는 동해안의 광대한 영역을 거느렸고, 조선시대 강릉대도호부 역시 오늘날의 여러 시군에 해당하는 지역을 아울렀다. 1895년 23부제에서도 강릉부는 동해안 여러 군을 관할했다. 이후 행정구역이 재편되고 울진이 경상북도로 편입되었으며 동해시가 별도의 도시로 성장하면서 강릉의 직접적인 행정 영향권은 축소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더 중요한 변화는 영토나 관할의 축소가 아니다. 강릉이 스스로 문화를 생산하는 힘이 약해질 가능성이다. KTX는 강릉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동시에 서울의 자본과 브랜드가 강릉으로 들어오는 속도도 빨라졌다. 안목해변은 강릉이 직접 만들어낸 커피거리에서 출발했지만 유명해질수록 전국 프랜차이즈와 대형 상업시설의 비중이 커졌다. 경포와 해변 지역의 고층 숙박시설 개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관광객이 많아지는 것과 강릉다운 문화가 강해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개발을 억제해 온 고도제한을 둘러싸고 완화 요구가 계속되는 것도 같은 문제를 던진다. 규제가 완화되면 도시개발에는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느 해변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고층 숙박시설과 프랜차이즈 상업공간이라면 강릉은 개발에는 성공하면서 가장 중요한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강릉의 문화는 오랫동안 낮은 건물과 작은 필지, 골목과 독립 점포라는 물리적 공간을 토대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중요한 위협이 교육이다. 2026년 강릉원주대학교와 강원대학교의 통합은 단순한 대학 구조조정이 아니다. 지역에서 대학은 학생을 가르치는 시설 이상의 역할을 한다. 외부의 젊은 인재를 도시로 끌어들이고, 새로운 지식과 취향을 공급하고, 지역 기업과 창업가를 연결하는 문화적 인프라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적인 국립대학의 소멸은 강릉의 문화적 자립 기반 하나가 약해진 사건으로 볼 수 있다. 통합 이후 강릉캠퍼스가 어떤 역할을 맡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강릉의 중심성을 위협하는 것은 동해나 삼척, 양양의 성장만이 아니다. 더 큰 위협은 젊은 인재를 빨아들이는 서울과 수도권이고, 지역마다 똑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표준화된 관광개발이다. 강릉이 관광객은 계속 끌어들이면서 정작 문화를 만드는 사람을 붙잡지 못한다면, 문화 선도력도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강릉다움으로 중심성 강화

강릉시가 그리는 미래에는 관광과 새로운 산업이 함께 놓여 있다. 글로벌 관광도시를 지향하는 한편 구정면 일대에는 천연물바이오 국가산업단지를 추진하고 있다. 천연물바이오산업은 KIST,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강릉과학산업진흥원 등 기존 연구 인프라와의 연계를 목표로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새로운 산업이 강릉의 기존 문화와 도시 생태계에 어떻게 뿌리내리느냐다.


강릉은 이미 자기 자원을 산업으로 키우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테라로사는 한 지역의 카페를 넘어 전국적으로 알려진 로컬 브랜드가 되었고, 초당두부라는 오래된 음식 자산에서는 짬뽕순두부와 순두부젤라또 같은 새로운 상품이 계속 파생되었다. 수제맥주와 디자인, 독립서점과 문화공간도 비슷한 방식으로 성장했다. 강릉다움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자원 위에 새로운 생활문화를 계속 만들어내는 데 있다.



프리미엄 관광에서도 가능성은 보인다. 경포의 씨마크호텔을 비롯해 강릉의 자연환경과 문화적 이미지를 고급 휴양 경험으로 연결하려는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시설의 등급 자체가 아니다. 강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건축, 음식, 커피, 예술, 해변의 생활방식이 숙박과 결합할 때 비로소 다른 관광도시와 구분되는 경쟁력이 생긴다.


그러나 앞으로 강릉의 문화 선도력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람일지 모른다. 관광객이 찾아오는 도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젊은 사람이 배우러 오고, 일하러 오고, 결국 머물고 싶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


도시 공간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명주동의 작은 필지와 골목을 지키고, 초당동과 홍제동 같은 동네에서 새로운 앵커스토어가 계속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프랜차이즈가 늘어나는 안목해변에도 다음 세대의 박이추와 테라로사가 등장할 공간을 남겨야 한다. 문화 선도력은 거대한 문화시설 하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 작은 실험을 계속할 수 있는 도시 생태계에서 나온다.


강릉은 문화를 보존해서 중심도시가 된 것만은 아니다. 시대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주변으로 퍼뜨렸기 때문에 중심도시가 되었다. 유교 문화가 그랬고, 단오제가 살아남은 방식이 그랬으며, 현대에는 커피와 로컬 브랜드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앞으로도 강릉이 영동의 문화 중심지로 남을 수 있는지는 같은 능력에 달려 있다. 관광객보다 문화를 만드는

사람을 끌어들이고, 대학을 다시 인재의 앵커로 만들고, 작은 브랜드가 성장할 도시 공간을 지키는 것. 강릉다움은 오래된 것을 지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강릉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힘이다. 그 힘이 살아 있는 한 강릉은 영동의 문화 중심으로 남을 것이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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