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은 강원도에서 인구가 가장 빠르게 줄어드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1967년 12만 5천여 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인구는 2026년 2월 3만 5,917명까지 내려앉았다. 석탄산업 합리화 이후 탄광이 하나둘 문을 닫았고, 상동광산의 텅스텐도 1994년 중국산 저가 공세에 채굴을 멈췄다. 시멘트와 석회석 산업이 그 자리를 메웠지만 인구 유출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제 인구 감소는 영월에 낯선 뉴스가 아니다.
그런데 2026년에는 뜻밖의 뉴스가 잇따랐다. 단종의 영월 유배를 소재로 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600만 관객을 넘어서는 흥행을 기록했고, 3월에는 상동광산이 32년 만에 재가동을 선언하며 본격적인 텅스텐 생산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7월 뉴욕타임스는 상동광산을 미·중 전략 경쟁 속 핵심광물 공급망의 현장으로 다뤘다. 같은 해 강원랜드 폐광기금은 1,861억 원으로 2001년 제도 도입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영월을 향한 관심과 투자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이 모순을 풀 실마리는 영월을 영월군이라는 행정구역 안에서만 바라보지 않는 데 있다. 충북 제천에서 시작한 태백선은 영월을 지나 정선과 태백으로 이어진다. 제천이 충북에 속한다면, 영월읍은 태백선 벨트의 강원도 구간에서 행정·사법·교통 기능이 모이는 중요한 중심지다. 영월이 앞으로 지켜야 할 것도 인구 숫자 자체보다 이 중심성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답은 영월의 도시성이다. 영월읍은 이미 인구 감소 시대 도시 모델로 부상한 콤팩트 시티다. 남은 과제는 그 압축성을 태백선 벨트의 강원도 지역을 지탱하는 힘으로 키우는 것이다.
영월의 중심성은 먼저 행정과 사법, 교통에서 나온다.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은 영월·정선·평창·태백을 관할한다. 여기에 태백선과 38번 국도가 겹친다. 1955년 제천~영월 구간을 시작으로 연장된 태백선은 석탄산업 시대 제천과 영월, 정선, 태백을 하나의 산업축으로 묶었다. 38번 국도도 제천과 영월을 거쳐 정선·태백으로 이어진다. 영월은 제천처럼 큰 상업도시도 아니고 태백처럼 독립적인 산업도시도 아니다. 대신 태백선 벨트의 강원도 구간 한가운데에서 여러 기능을 이어주는 작지만 분명한 결절점이다.
이 중심성 위에 산업 자원이 얹힌다. 상동광산은 한때 한국 텅스텐 산업의 중심이었고, 이제 전략광물 시대를 맞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알몬티는 상동광산의 매장량을 5,800만 톤, 채굴 가능 기간을 약 45년으로 추산한다. 생산이 본궤도에 오르면 중국 의존도가 높은 세계 텅스텐 공급망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갖게 된다. 영월군도 텅스텐을 중심으로 한 핵심광물 첨단산업단지를 추진하고 있다. 시멘트·석회석 산업과 영월복합화력발전소 역시 지역 산업의 한 축이다. 과거 태백선이 석탄을 실어 나르던 산업축이었다면, 이제 영월에는 전략광물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생겼다.
두 번째 가능성은 청년이다. 영월군은 2021년 청년사업단을 정식 부서로 만들고 청년공간 ‘청정지대’를 중심으로 창업 상담과 커뮤니티, 정바카라 참여를 지원해 왔다. ‘Youth Map Project YEONGWOL’에는 도토리서점, 동강주조, 살롱더스트링 등 수십 개의 청년 브랜드가 등장했다. 덕포리에는 80 가구 규모의 청년주택도 들어섰다. 군 전체 인구는 계속 감소하지만 그 안에서는 작은 창업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문을 열 영월청년라이브러리는 흩어진 창업가와 크리에이터를 연결하는 새로운 앵커가 될 수 있다.
세 번째 가능성은 문화다. 영월은 일찍부터 문화와 창조성을 도시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만들려 했다. 2001년 ‘동강사진마을’을 선언하고 2005년 동강사진박물관을 열었으며, 이후 군 전역에 다양한 박물관과 문화공간을 조성했다. 산업이 쇠퇴한 자리를 관광시설 몇 개로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사진과 박물관, 문화예술과 창작 활동을 새로운 도시 정체성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 코오롱FnC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에피그램이 2022년 ‘영월 에디션’을 내놓은 것도 이런 축적과 무관하지 않다. 외부 기업이 영월의 장소성과 콘텐츠를 브랜드 자산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영월이 산업도시와 관광도시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이미지로 읽힐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자산들이 만나는 물리적 공간이 영월읍이다. 동쪽 군청에서 서쪽 영월역까지 이어지는 중앙로를 중심으로 군청과 시장, 터미널, 문화시설과 상점이 걸어서 닿는 거리에 모여 있다. 공동화된 다른 소도시 중심과 달리 영월의 중심가로에는 공방과 서점, 카페 같은 새로운 골목상권 콘텐츠가 촘촘히 들어섰다. 대규모 신도시와 외곽 상업지구가 도시의 기능을 크게 분산시키지도 않았다. 인구감소 도시가 새롭게 만들기 어려운 조건을 영월읍은 이미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 도야마시가 참고할 만하다. 도야마는 자동차 의존과 외곽 확산에 대응해 LRT와 대중교통을 중심으로 주거·상업·문화 기능을 다시 모았다. 철도역과 버스정류장 주변에 거주를 유도하면서 ‘대중교통을 축으로 한 콤팩트시티’를 도시 전략으로 삼았다. 도야마가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되찾으려 한 조건을 영월읍은 상당 부분 처음부터 갖추고 있다. 영월의 과제는 도시를 새로 압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압축된 도시를 더 잘 쓰는 것이다.
문제는 상동광산의 부활이 자동으로 영월읍의 부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광산을 움직이는 자본과 기술, 의사결정의 상당 부분은 영월 밖에 있다. 광산에서 만들어지는 부가가치가 지역의 상권과 창업, 주거와 문화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광산은 살아나도 도시는 살아나지 않을 수 있다.
폐광기금도 마찬가지다. 2026년 폐광기금은 사상 최대인 1,861억 원에 이르지만 태백·삼척·영월·정선의 대체산업 육성에 광범위하게 투입된다. 중요한 것은 돈의 규모보다 돈의 공간적 귀착지다. 폐광지역에 투자되는 돈이 영월읍의 상권과 창업, 주거와 문화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지역에는 투자됐어도 중심지는 강해지지 않는다.
인구정바카라도 같은 문제를 보여준다. 영월군은 청년 창업과 주택, 농촌유학, 관계인구 정바카라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전체 인구 감소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청년정바카라의 개별 성과와 군 전체 인구곡선을 되돌리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오히려 인구 4만 명이라는 숫자를 되찾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다면 영월이 가진 더 중요한 자산을 놓칠 수 있다.
2026년 7월 출범한 민선 9기 영월군정은 ‘다시 뛰는 영월, 함께 여는 미래’를 내걸고 새로운 공약 실행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출향군민까지 포함한 ‘7만 군민 시대’를 제시한 것은 흥미롭다. 주민등록인구만으로 지역을 정의하지 않고 영월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까지 지역의 자산으로 보겠다는 접근이기 때문이다.
영월이 이 방향을 실제 도시 전략으로 만들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허브 앤 포크다. 영월읍이라는 허브를 더 두텁게 만들되 모든 것을 읍내에 모으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영월 곳곳에 흩어진 좋은 콘텐츠를 영월읍이라는 중심과 연결하고, 다시 정선과 태백으로 네트워크를 넓히는 전략이다. 중앙로에는 거리의 역사성과 작은 도시의 스케일을 지키는 건축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그 원칙에 맞춰 건물을 짓거나 고치는 건물주에게 설계비와 공사비를 지원하는 ‘건축마을’ 사업도 가능하다. 덕포리의 세경대 로컬창업큐브, 희망목공소, 영월제빵연구소 같은 공간도 하나의 로컬 메이커 네트워크로 연결할 수 있다.
포크는 우선 영월군 안에 있다. 영월의 로컬 콘텐츠가 모두 영월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주천면에는 토마토 농업을 품종과 미식, 체험의 콘텐츠로 확장한 그래도팜이 있고, 폐시설을 현대미술과 공방이 결합된 복합예술공간으로 바꾼 젊은달와이파크도 있다. 영월의 쑥과 단종 이야기를 상품과 공간으로 만든 위로약방을 비롯해 공공화실, 무형서재 같은 새로운 로컬 창업가들도 등장했다. 영월군이 비즈니스스쿨과 넥스트로컬 등을 통해 꾸준히 새로운 창업가를 끌어들이고 길러온 결과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영월읍으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다. 콘텐츠는 각자의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영월읍은 이들을 연결하는 허브가 되어야 한다. 영월읍의 상권과 문화시설, 청년 커뮤니티가 군 곳곳의 농장·공방·문화공간과 연결되고, 방문객이 읍내에서 정보를 얻어 이들 장소로 이동하고 다시 읍내로 돌아오는 구조다. 콤팩트 도시는 모든 것을 중심에 집어넣는 도시가 아니라 강한 중심이 주변의 작은 거점을 살리는 도시여야 한다.
두 번째 포크는 정선과 태백으로 뻗는다. 두 도시에서도 골목 재생과 로컬 콘텐츠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영월은 이들과 태백선과 38번 국도로 연결돼 있고, 무엇보다 청년사업단을 운영해 온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을 생활권 전체로 확장하는 ‘로컬콘텐츠대학’을 영월읍에 만드는 것을 제안한다. 영월군의 농촌 크리에이터부터 정선과 태백의 로컬 크리에이터까지 영월읍에서 만나 배우고 협업한 뒤 다시 각자의 지역에서 사업을 키우는 순환 구조다. 그렇게 된다면 영월읍을 허브로 영월의 면 지역, 정선과 태백으로 뻗어나가는 태백선 벨트의 로컬 창업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두 번째 전략은 창조도시의 재가동이다. 이것은 영월에 새로운 브랜드를 덧씌우자는 제안이 아니다. 영월은 이미 ‘박물관 창조도시’와 ‘크리에이티브 영월’을 내세우며 창조도시 브랜딩을 시도한 도시다. 동강사진마을과 동강사진박물관에서 시작해 박물관 도시를 만들었고, 그 위에 청년사업단과 청정지대, 청년 브랜드라는 새로운 층이 쌓였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과거의 창조도시 브랜딩을 박물관과 문화관광에 머물게 하지 않고 청년·창업·로컬 브랜드·관계인구까지 포괄하는 2세대 창조도시 전략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업을 유치했다면 이제는 사람도 유치해야 한다. 프리랜서와 1인 크리에이터, 재택근무자, 세컨드하우스 이용자, 은퇴 후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려는 사람을 영월로 끌어들여야 한다. 정주인구가 아니더라도 영월에 반복해서 머물고 소비하고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도시의 실제 이용인구는 주민등록인구보다 커진다.
그 사람들을 묶는 물리적 앵커도 필요하다. 영월청년라이브러리가 청년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를 연결하는 커뮤니티 허브가 될 수 있다. 에피그램의 영월 에디션처럼 영월의 창조도시 이미지를 매력적인 브랜드 자산으로 보는 외부 기업과의 협업도 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외부 자본이 영월의 이미지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창업가와 공간, 상권에 다시 연결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허브 앤 포크와 창조도시의 재가동은 결국 하나의 전략이다. 영월읍이라는 압축된 물리적 중심을 강화하고, 영월 곳곳의 로컬 콘텐츠를 그 중심과 연결한 뒤, 그 네트워크를 정선과 태백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상동광산의 전략광물도, 폐광기금도 이 구조 안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영월의 중심성을 강화하는 자산이 된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도시까지 줄어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사람이 줄어드는 시대일수록 기능과 사람, 자본과 문화를 한 곳에 모으는 중심이 필요하다. 영월이 지켜야 할 것은 4만이라는 인구 숫자가 아니라 영월읍이라는 작은 중심의 밀도다. 그리고 그 중심의 힘은 주변을 빨아들이는 데서가 아니라 주변의 작은 거점들을 연결하는 데서 나온다. 영월읍이 군 곳곳의 로컬 콘텐츠를 묶고, 다시 정선과 태백으로 이어지는 허브로 작동한다면 영월은 인구 3만 명대의 작은 지역이면서도 그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가진 도시로 남을 수 있다. 콤팩트 시티 영월의 가능성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