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sco Designer 17년

2009년 Cisco Contractor Designer, 그리고 영주권

by디자이너민CHU

오늘 아침, CK Marketing Admin 담당자에게 메시지가 왔다.

“Hi, Min. When did you start at Cisco?”

아마 곧 있을 전체 미팅에서 15주년 이상 장기근속을 축하하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국 회사에서 오래 근무한다는 것은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는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을 때로는 ‘노땅’처럼 바라보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조금 다르다.


오랜 시간 한 회사에서 일했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인정하고 축하해 주는 일에 가깝다.


“17년이나 함께했어?”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을 경험했겠네.”

그리고 박수를 보내준다.

나에게는 그 15년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안에는 정말 많은 시간이 들어 있다.


2009년. 나는 Cisco의 Contractor Designer로 일을 시작했다. 그렇다 처음에는 정식 Cisco 직원이 아니었다. 2011년 6월 드디어 영주권을 받았다. 그리고 Cisco의 정식 Full-time Designer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Contractor 시절까지 합쳐 Cisco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덧 17년을 넘어섰다.


한 회사에 이렇게 오래 있을 줄은 나도 몰랐다. 그동안 수많은 부서를 옮겨 다녔다. 매니저도 바뀌었고, 팀도 바뀌었고,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도 계속 달라졌다.


어떤 시기에는 내가 도대체 어느 조직에 속해 있는지 나 자신도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사실 Cisco에서의 시작이 늘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Contractor 시절에는 지금 생각해도 별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은 일들이 있다.


당시 지인이자 매니 저였던 분과 함께 카풀을 하며 출퇴근을 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출퇴근 시간조차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다. 마치 내가 내 시간을 온전히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은 답답함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힘들었던 2~3년이었다. 그래도 견뎠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었던 내가 미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살아남아야 했다. H-1B 비자 신분 때문에 다른 디자이너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기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다. 특히 연봉과 처우에서 차이를 느낄 때면 속상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견디자.’


처음 미국에서 온라인 게임을 구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말 그대로 McDonald’s에서 받는 시급을 생각해야 할 정도로 막막했던 유학생 시절.


그런 내가 미국에서 디자인 일을 하고, 비자를 받고, 결국 영주권을 받고, Cisco의 정식 디자이너가 되었다. 2011년 6월 영주권을 받던 날은 지금도 기억한다.


그날 이후 내 삶에는 조금 다른 가능성이 열렸다. 더 이상 비자 때문에 매 순간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미국의 다른 디자이너들과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디자인 경험과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 물론 나에게는 영어라는 핸디캡이 있기에 더욱 노력해야 했다. 내가 노력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의미였다.


돌이켜보면 Cisco는 나에게 단순히 ‘온라인 게임’이 아니었다. 이 회사에서 나는 디자이너로 성장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수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안정적인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고,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Cisco라는 회사를 생각하면 단순히 ‘15년 근속’이라는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Cisco는 내가 미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나에게 기회를 준 회사였다. 그리고 나는 그 기회를 붙잡고 오랫동안 달려왔다


어쩌면 내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성공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좋은 온라인 게임을 얻었던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높은 연봉을 받았던 것도 아니다. 비자 때문에 마음을 졸였고, 차별을 경험하기도 했고, 원하지 않는 상황도 견뎌야 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견디고, 배우고, 다시 도전했다.


그렇게 한 걸음씩 걷다 보니 어느새 15년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Hi, Min. When did you start at Cisco?”라는 짧은 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2009년.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볼 수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믿지 못했을 것이다.

“네가 정말 Cisco에서 17년이나 일한다고?”

나도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기까지 왔다.


17년의 Cisco life.


나는 이제 조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Ciscoian이다.


그리고 이 단어에는 단순히 회사의 이름을 넘어, 내가 미국에서 살아온 시간과 디자이너로 성장해 온 시간이 함께 담겨 있다. 17년. 참 긴 시간이다.


하지만 내 디자인 인생 30년에 비하면 아직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바카라상에 앉는다. MacBook Pro를 열고, 새로운 디자인을 시작한다. 아직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Still designing.

Still learning.

Still enjoying the work.


Don’t work hard.

Just enjoy your work.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지나가는 것과 남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