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짜치고 힘든 이야기만 좔좔해댔지만 사실 올해는 슬롯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평화로웠다. 우선 잠을 잘 잤다.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 정도로 기절잠을 자고 수면시간도 부족하지 않았다. 학생 때처럼 바카라도 꽤 읽었다. 읽어야하는 텍스트 말고 읽고싶은걸 읽는 즐거움을 되찾았다면 얼마나 꿀인가. 아이와는 아홉시까지 등원하고 네시부터 여섯시반까지 놀았다. 휴직을 갈기고 아이와 세계여행을 떠나는 용감한 아빠는 꿈도 못꾸고 요즘 많이들 한다는 해외 한달살기는 면접스케줄 아니 돈때문에 포기했지만 아이는 하루도 잇몸을 드러내면서 활짝 웃지 않은 날이 없었다. 긴 그림자만큼 늘어지는 아이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까지 세보면 아들은 하루에 124번은 ‘아빠’를 불렀지만 힘들지만은 않았다. 각을 잡고 집안일을 몰아서 해둔 날이면 컴컴해지고 들어온 아내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렸고, 아내는 이따금씩 퍽 순진한 얼굴로 농담인지 모를 말을 했다.
“우리가 대출과 부양만 아니면, 뭐 한놈만 버는게 더 사는거 같다 야.”
한끼줍쇼를 컨셉으로 얼굴본지 오래된 인연들을 한 번씩 찾아가는 점심도 좋았다. 부러움과 응원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받았다. 여름이 지나고 나서 그마저도 끊긴건 나도 지인들도 지쳤기 때문인 듯했다. 걱정거리가 많고 욕할게 많고 불만이 많은 내게 일 년에 한두번 보는 친구들이 질렸다는 인상을 느끼기도 했다. 겸양을 꺾어 표현한 자조가 거슬렸던 한 선배는 갑자기 높임말을 쓰면서 꾸짖었다.
“서울에 집있고 대기업다니는 당신은 상위 10%입니다. 내려치지 마세요.”
비혼주의인척하다 가장 먼저 결혼하고 딩크인척 하다가 아이도 가장 먼저 낳은 나는 언제나 그 모임에서 기만자였다. 최근 가장 말을 많이 섞은 친구는 배달 중 보낸 내 사진과 에피소드가 지겨워질 때쯤 반응했다. 더러운 가게 사진도, 빡빡한 건물사진도, 넘어져서 까진 손 사진도 아내에겐 보낼 수 없어서 친구들에게 보냈는데 그게 영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너 이거 패션이잖아.”
“패션?”
“온라인 게임 있잖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돈벌어야지 그럼 놀아?”
“전업딸배들이 보면 넌 강남좌파라고. 그냥 시간있을때 이것저것 다른걸 해봐”
처음엔 인력거꾼 김첨지로 나를 부르던 친구는 안팎으로 사람이든 슬롯든 후려치는 독기 서린 내 말들에 인내심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한 발을 온라인 게임에 걸쳐두고 월 100 될까말까하는 소액을 긁어모으러 다니는 내가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됐는지 그때부터 날 패션딸배, 줄여서 패딸이라 불렀다. 주가폭락과 콜을 연결지어 말할땐 거리의 경제학이라고 하더니 주거니 받거니 드립을 치면서 서로를 조롱하다 보면 패션딸배의 슬롯학이라했다. 다 내 업보였다.
링크드인이 물렸을 즈음 검색창에 넣은 ‘패션딸배’ 글자를 따라가니 디시인사이드였다. 대부분은 말그대로 옷차림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가짜’ 의미의 패션딸배 언급도 있었다. 바이크동호회 같은 사람이 백팩을 메고 배달을 하면 패션, 허세브랜드라는 베스파 스쿠터로 하면 패션, 눈비올때 안타면 패션, 누구는 G80타면서 취미로 배달한다는 사실관계 모를 특정인 저격글을 클릭했다. 절박함 과 전업 이 동시에 충족되어야만 "패션"이 아닌 라이더인가보다. 어디에 말은 못했지만 동남권물류단지에서 본 신형 테슬라 SUV 쿠팡아저씨를 보면서 내가 찌그린 눈꺼풀과 마음이 진배없었다.
“패션사무직인데요? 깔짝 하면 다 패션이죠.”
패딸이란 말에 발끈해서 겨우 받아친 말은 패션사무직 이었다. 생계로 따지면 회사에 목멘 올인상태지만 Fake 뜻만 차용해 포장해서 자의반 타의반의 탈주자인 나를 “패션이오.”라고 우겨댔다.
계절이 두 번 바뀌니 회사와 거래처에서 담당자를 착각해서 오는 연락도 없어졌다. “아 제가 휴직 중이라서…”라고 겸연쩍게 대답하고 팀원을 연결해 줄 일도 없는 고요한 전화에는 다른 콜만 울렸다. 임금은 생산성의 대가라고 드라이하게 봐야겠지만, 내가 겪은 슬롯는 가짜충성과 더불어 가짜야망도 필요했다. ‘사업가’란 단어로 임원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외쳐야하는 주니어시절과, 다음 팀장 후보로 나를 끊임없이 각인시켜야 하는 열정의 숲에서 딸리는 연기력으로 십몇 년. 결국 진짜로 대차게 충성과 야망 둘다 던져버린 나는 앞으로 회사입장에서도 생산성<연봉 이라 슬슬 밀어내야할 “패션사무직” 이 맞았다. 저는 사업가 대신 직무전문가의 길을 택했다고 남아있으면 인정해주지 않는 조직과의 밀당이 마치 정신수양의 영역이 될 수도 있었다. 내가 욕하던 조직내 사람들이 내 롤모델이 되는 거라니 어쩌면 사유보다 알약이 더 적절한 해법이었다.
실제로 애초부터 중소기업 팀장자리정도의 이직보다 대기업 타업종 아니면 버티다 희망퇴직 노선을 택하기로 나는 나름대로는 지독히 합리성에 베팅하고 있다고 우기는중이었다. 그저 내 밥값은 하고 살고있다 여겼던 시간들도 사실은 자기기만이었을까. 열몇바퀴 돌던 트랙에서 원심력을 못버티고 한발을 밖으로 뺐는데 나머지 축발로 버티면서 다시 안으로 드리프트를 하기엔 발목이든 세로토닌수용체든 어딘가 하나는 거덜나지 않을지 겁이 났다.
비수기가 또 돌아오니 보도블록 틈새로 비죽 고개 든 풀떼기를 보면서 맥락 없이 연결되는 마인드맵만 그렸다. 쾌청한 하늘이 해를 더 눈부시게 할수록 실존은 뭔가 싶었다. 멍청한 얼굴로 구글링했다가 ‘실존’ 나무위키 내용이 생각보다 짧아서 실망했다. 정작 링크로 연결된 실존주의(Existentialism)를 눌러 방대한 내용을 긁어 내리다가 사르트르든 까뮈든 직접 읽을 엄두는 나지 않아 바로 내려놓고 얼른 쿠팡과 배민 주문지역을 찾아 몸을 옮겼다. 몇 번 가벼운 사고로 길바닥에 엎어져서 다음날 모가지가 옆으로 돌아가지 않을 땐 방문을 닫고 넷플릭스를 켰다. 지인이 권한 [퍼펙트데이즈]를 밤늦게 틀었다가 새벽까지 봤고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다음날엔 ‘실존주의’ 네글자만 떠올라서 얼마간 홍상수영화를 찾아서 [하하하]를 오전부터 틀었다. 젊은 김강우에게 좀 덜 젊은 유준상이 잡도리하는 그 대사 한 줄을 희미한 기억에서부터 쫓아왔는데 원본은 처음이었다.
“너 실존주의에 좀 빠진 것 같아.”
“실존주의 풍에 기대서 그냥 그걸 뽑아낸 거잖아. 니가 그걸 스스로 극복해야지! 좀 더 치열하든가. 죽을 각오로 살던가, 아니면 너한테 진짜로 솔직해지든가, 둘 중의 하나를 해야지. 이건 그냥, 진짜 니 마음이 아냐!”
모순투성이 인물들 너머 실존도 실존주의도 오리무중인 가운데 배달이 대략 오천건을 향해가고, 탈락 메일이 서른 번째쯤 왔다. ai면접이란걸 한번 했다가 떨어지고 나니 이제는 다리도 풀렸다. 꼬랑지를 말아끼우고 잔뜩 고개를 숙인 채 조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저 다시왔어요.”라고 겸연쩍은 인사는 언제 드리러 가야하나. 지금껏 본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분들은 다 갓 애기 돌잔치를 마치고 온 머리 기장이 안본새 짧아진 엄마들뿐이었는데.
온라인카지노에 첫 글을 올리고 친구에게 온 연락은 복직 안하실거냐는 질문이었다. '도대체 왜그러시냐'는 그의 질문에 '답답해서 그런다'고 대응하며 서로 말꼬리를 잡다보니 오래전 그의 말이 생각났다. 그건 아마 놀리는 것도 타박하는 것도 아니라 정말로 이해가 되질 않아 반복해서 던지는 질문이었을거라 짐작했다.
“지대추구를 할거면 제대로 조용히 열심히 하든가, 그게 아니면 사원증이라는 별거아닌 미련을 버려.”
충직하지도 솔직하지도 못해서 이직하나 퇴직한번 못하고 곤조를 부리는 내게 주변이 지쳐가고 있음을 느꼈다. 솔직한 발화자가 한 명뿐이었던 걸까. 눈가리고 아웅으로 공개된 지면에 떠들면서 대나무숲인척 읽어주길 바라는 내 마음을 들킨 거였다. 부끄러워 내내 고민해봤는데, 나는 정착과 탈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었다. 양자택일은커녕 나는 둘 중 어느 하나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래도록 주절댔다. 남의 말과 행동은 이러나저러나 무위에 그치기 마련이니, 어설픈 고생담이든 내 본질부터 찾으려는 질문이든 세상에 대한 토로든 손바닥만한 얼굴사진과 소속이 써진 플라스틱 쪼가리 움켜쥐고 외치는 징징댐이었다. 이건 제목그대로 ‘서울자가 대기업 배달부’ 한줄컷이거나 두글자로 는 패딸.
내년이면 조용히 조직에서 보낸 곳에 앉아서 패션온라인 게임인으로 있을 예정이다. 계속해야 하니까. 당초부터 돌솥비빔밥 바닥 까만 누룽지될때까지 붙어서 버티다 조직이 밀어내면 불가항력인것처럼 스스로에게 면바카라조항을 던지고 도망나올 계획이었다. 그 이후의 플랜은 막상 지금 하자니 너무 무섭다. 레일 위에 갑자기 튀어나온 돌때문에 궤도를 이탈한 건지 원래 안맞는 옷을 입은 건지는 이제와서 중요한게 아니었다.
노랑도 초록도 아닌 은행잎들이 바닥에 얼기설기 흩어져있었다. 아직 긴장갑을 낄 날씨는 아니었지만 정없도록 꼬박꼬박 흐르는 계절과 시간이 눈꼴셔 또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세개만 더 하고 들어갈까. 역한 냄새를 싣고 온 바람에 몸이 떨렸다. 이 루틴도 지키지 못하면 내가 무너질것같다고 아내에게 했던 변명이 무색하도록 집에가고 싶었다. 적어도 창으로 내려다보면 은행나무는 색과 흔들림만 남고 냄새는 안나니까 말이다. 며칠 전부터 와장창 우수수 떨어져 버스바퀴에 사나흘간 터져버린 잘 익은 은행열매가 자전거 뒷바퀴를 타고 튀어올라 곳곳에 덕지덕지 붙었다. 물티슈로 닦아내기도 몇 번, 가방과 자전거 곳곳에 붙은 냄새가 집까지 계속 따라왔다. 씻어내기 어려운 냄새야말로 제법 긴 시간이 걸릴 일이었다.
탁탁 터지며 튀어 오른 은행이 곪은 여드름으로 보였다. 이제는 아프게 농양을 짜던 소년이 아니라 아저씨니까 쪼잔하게 떨어지는 낙엽사이에서 헛구역질을 참으려 애쓰고 있었다. 오후의 낮은 해가 부스럭거리는 나뭇잎 소리 사이로 노랗게 바닥을 쓰다듬고 지나갔다. 코끝은 역겨운데 속없이 배가 계속 고팠다. 오른쪽 귀에는 며칠전부터 계속 틀어둔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반복재생중이었다.
"今度は今度、今は今"(곤도와 곤도, 이마와 이마 /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상단창에 쿠팡 콜이 떴다. 일단은 오늘도 페달을 어디론가 계속 밟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