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이 된 간짜장

올라가고 내려오는 가족

by플랑시


부모님 댁엔 일년에 딱 두 번 갔다. 차례는 안지내지만 명절 두 번은 꾸역꾸역 입석이라도 구해서 갔다. 생일은 그냥 전화와 송금으로 퉁. 두분의 나이와 한해에 일주일이 안되는 방문일정을 바탕으로 계산하니 우리가 앞으로 얼굴을 마주할 시간은 대충 반년쯤 됐다. 기껏해야 400킬로미터인데도 잘 안됐다. 올해는 출근도 안하지만, 아내는 하니까. 황금연휴라고 불리는 해에는 연차까지 붙여 제대로된 해외여행을 기획하는 주변의 목소리를 듣곤 했다. 그런 고민을 할 여력이 없으니 엄마아빠얼굴을 그나마 보는건가, 일종의 비자발적 효도의 마지노선이었다.




아버지는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아이가 좋아하는 바다를 언급했다.


“할아버지집에 바다보러 올래?”


아이는 계절과 상관없이 도착하자마자 바다 보러 가자고 노래를 불렀고 어머니는 일년에 고작 두번 쓰려고 사둔 모래놀이 세트를 가져왔다. 바퀴도 달린 게 무슨 여행가방처럼 생겼네. 플라스틱 삽과 긁개가 담긴 통을 꺼내오는 엄마를 보며 집도 좁은데 이상한것좀 그만 사라고 눈을 흘겼다.


금방 누나가 왔다. 매형은 일하러 갔다고 조카 둘이랑 왔다. 초딩 조카들은 그들사이에서 유행하는 장난감 같은걸 항상 손에 들고 있어서 아들이 눈이 휘둥그래해져서 쫓아다녔다. 아버지가 접이식 캠핑테이블을 창고에서 꺼내와 간이 점심상을 펴고 다같이 주방에서 어머니가 주는 반찬들을 날랐다. 요리에 취미가 없는 어머니는 근처 시장에서 전이며 생선구이며 잡채며 사왔다. 일손도 없는데 그 편이 서로 나았다.


“아들 이거 얼마게? 맞춰봐.”
“글쎄 뭐 만원?”
“이거 이만큼에 오천원. 이동네는 집도 밥도 다 싸다. 온누리상품권 페이백도 있다.”


시장을 돌며 싸게 산걸 자랑하는 게 요즘들어 거의 유일한 취미인 어머니에게 같은 표정으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걸 똑닮은 누나는 엄마 이거 얼마게? 하면서 저렴한 액세서리 같은 걸 자랑했고 둘이 통하는게 다행이면서도 별로였다. 그 신산한 뿌리가 내게도 있는걸 너무 잘 아니까. 어머니는 밥을 뜨다 말고 정신없이 방에 갔다가 양말 한무더기를 들고왔다. 다해서 삼천원에 샀다고, 포장지까지 닳고닳은것같은 신을일없는 정장양말을 내밀었다.




“서울살이 힘들제?”


지도 서울에서 대학까지 다녔으면서 누나에겐 서울은 늘 버거운 곳이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서울사람이던 누나는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사투리가 다시 붙었다. 나랑 대화할 땐 서울말을 쓰려하고 부모님이랑 대화할 땐 사투리를 쓰는 컨버팅모드가 낯설었다. 연년생을 키우면서 완전히 전업맘이 된 누나는 맞벌이 힘들지, 서울생활 힘들지라고 아니라고해도 볼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연달아 했다.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던 아이가 바다 보러 가자고 소리를 꽥 질렀다. 아버지가 껄껄웃으며 나가자고 했다. 화초와 바카라 사이에 사람이 껴서 가득히 복작대던 거실을 정신없이 두고 일단 모두 나왔다. 아이가 자라 이번엔 주니어 카시트를 끼우니 아버지 차 뒷자리에 셋이타기가 쉽지 않았다. 아내는 가운데에서 양어깨를 접었다. 에어컨이 고장나 창문을 열고 달렸다. 냉매를 넣어도 금방 그런댔다. 차박이 로망인 아버지에게 맞을것같아 감가맞은 중고차값만 보고 내가 고른 차였다. 정비성이 엉망이라 에어컨 부속 갈려면 엔진 내리는 공임만 돈백이라고 카센터에서도 차값이나 똔똔인데 굳이 하시겠냐 했단다. 여름엔 이걸 타고 동해안을 돌았단거지? 고속도로에서 머리카락과 볼살을 펄럭거리며 달리는 엄마와 창문을 활짝 연 똥차가 그려져 좀 고치라고 버럭댔다. 바람소리에 묻혀서 목소리를 올려야 했다. 아버지는 몇 년이나 더 운전하겠냐고 답했다. 창문너머 바다냄새가 들어왔다.






아이는 서슴없이 물에 뛰어들었다. 망했다. 수영복은커녕 갈아입을 옷도 안가져왔는데, 감기 걸리겠다. 그나마 해가 아직 뜨거운게 남쪽은 아직 여름인가 싶었다. 아이가 모래성을 쌓는동안 겨우 노점에서 갈아입을 옷을 사왔다. 누나네가 해안에서 가까운 편이라 일단 누나집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처음 가본 누나집은 생각보다 좋았다. 청약에 당첨됐다 했다. 지방이라 그런가 애가 둘이라 그런가. 슬쩍 호노를 보니 실거래는 우리집보다 쌌다. 누나는 계속 냉장고에서 음료며 과자며 내왔다. 내게 이런 큰 주방이 있다면 이렇게 안할텐데, 먹을걸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살고 있었다. 누나는 민망한지 애들이 고학년되면 이렇게 사둬도 금방 사라진다고 했다. 물놀이를 하고 온 애들은 실제로 엄청나게 먹어댔다. 아이는 평소에 우리가 주지않는 미국스런 과자들을 이때다하고 밀어 넣었다. 아버지는 소파에 앉았다가 어느덧 졸고 있었다. 해가 넘어갔다.




“저녁은 시켜먹자, 내가 주문할게.”


간단하게 차려먹자는 누나를 막아섰다. 쿠팡이츠 앱을 다운로드하며 메뉴를 물었다. 다들 딱히 선호가 없어 대충 중국집으로 내가 황급히 결론을 내렸다. 이상하게도 친구건 가족이건 여럿이 모이면 중국음식을 시키고 싶었다. 어릴적 잔치나 좋은날의 이미지가 중식당이면 옛날사람인가.


쿠팡이츠배달파트너 앱에 비해서 쿠팡이츠는 더 복잡했다. 어이없지만 고객으로서 배달앱은 처음이었다. 하나씩 받는 주문에 비해 여러개를 좌라락 펼쳐놓고 고르는 구조라 그런가, 일단 쿠팡아이디와 비번을 찾는 것부터 고역이었다. 꾸물대고 있으니 아내가 나가서 먹는 게 어떤지 물었다. 고집을 부리면서 인증번호를 받고, 새 비번을 넣고 결제용 카드를 등록했다. 누나는 “괜히 돈쓰지마라.”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평점은 다들 4.9였다. 그와중에 쫌스럽게 무료배달을 찾았다. 평점 괜찮고 가게 이미지가 깨끗해 보이는 곳을 한 군데 찾아서 보니 여까지 8만원 이상이면 무료배달이었다. 대충 요리두개에 적당히 볶음밥과 짬뽕과 짜장을 배치했다. 기본짜장면 없이 간짜장부터 시작하니 고급스런 식당일 것 같다는 확신비슷한게 들었다. 그래 간짜장은 면이 분리되어 있으니 잘 안퍼지잖아.




시한폭탄 해체하듯 쫓기며 겨우 주문을 마치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조카가 와서 닌텐도를 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래 한 번인데. 아이는 벽 한쪽을 채운 커다란 TV로 마리오카트라는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버스광고판에서나 보이던 그 마리오가 버섯을 던지며 달리고 있으니 침이 흐르는걸 잊을 정도였다. 고개와 손이 카트의 진행방향대로 기울다가 나중엔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면서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아들, 내가 올라갈까?”
“에이 무슨, 계실 방도 없어요 좁아 좁아.”
“엄마는 늘 스탠바이다. 그냥 엄마가 멀리 있어 미안하다. 언제든 일생기면 불러라.”


어머니는 아이가 입학하면 어떻게 등하교를 할지 물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이제는 서울에 살지 않는것도 미안하다니 미안한것도 많다. 나는 돈도 못보내면서 두 분 생활 걱정이나 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지금 집을 팔고 어딘가 시골로 가려는 현실성 없어 보이는 계획을 말했다. 나는 그걸로 배당주 박으시면 내 밑에 달린 건보 피부양자도 날아간다고 일갈했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어떻고, 지금도 두달마다 대학병원 가야 되는 사람이 그게 말이되냐구요. 어머니는 이제 이사는 그만하고 싶은 얼굴이었다. 지금집에 살면서 주택연금을 받으면 어떨지 클로드와 계산을 돌렸다. 주택연금에 국민연금에 기초연금을 더해도 빠듯한데 돈 안 버는 누나에게 좀 도우라 할 수도 없고, 해결방안은 없으면서 골똘하기만 했다. 그와중에 누나는 내가 휴직중이란 사실을 뒤늦게 듣고 잘했다고 건강부터 챙기란다. 그간 바쁘게 지냈는데 좀 쉬어가는 것도 필요하지 않냐고 했다.





‘당신들은 참 속도 좋다.’


누나는 포기한거잖아. 짜장면은 왜이렇게 안오는거야 대체. 폰을 검지로 탁탁 쳤다. 메뉴가 많아서 조리가 늦은건가 했는데 식당이 얼마나 밀렸는지는 모르겠고 일단 지금은 픽업중으로 보였다. 식당위치인 검은 동그라미 옆으로 라이더를 표시하는 파란 동그라미가 겹쳤다. 두바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저게 자전거여 오토여 뭐야.’


전기자전거도 아닌 두다리로 배달하는 주제에 내 라이더가 자전거 같아 보이니 기분이 팍 상했다. 그때부턴 앱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파란 동그라미는 식당 근처 아파트단지에 들어갔다. 초단거리 배차면 자전건가보네. 근데 여기까지 보낸다고? 짜증과 호기심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주를 벌이는 와중에도 축척을 알수없는 지도 위에서 동그라미는 느릿느릿 움직였다. 한참동안 첫배달지에 있던 동그라미가 누나집 근처까지 직선으로 오는게 보였다. 신호는 잘 받네. 간식을 한참 먹었으니 다들 배는 안 고플 거야. 아이들은 마리오와 달리고 있고, 엄마는 비번과 건강상식과 명언같은게 섞인 메모장앱에 뭐를 빼곡히 적고 있다. 다들 대화도 기다림도 지쳤는지 폰을 보고 있었다. 자전거인지 오토바이인지 모를 라이더도 이제 집앞 사거리까지 왔다.


다 왔던 동그라미가 좌회전하더니 앞단지로 들어갔다. 아 왜 내가 3배차 그것도 마지막인데! 혹시 동시수행(배민-쿠팡 콜을 같이 진행) 아냐? 고개를 들어 표정들을 살폈다. 두번째집은 공동현관을 안 열어주기라도 하냐, 천룡인아파트라 입구에서 신분증을 요구하냐, 높이도 엄청 높고 외관만 봐도 비싸 보이긴 했다. 한참동안 동그라미가 움직이지 않았다.


[주문이 거의 도착했습니다.]
[음식을 받고 맛있는 시간 보내세요!]


시계에 알림이 떴다. 두번째 완료를 쳤나 보다. 5분 후인가 인터폰이 울렸다. 헬멧을 보니 오토바이었다. 오토바이인걸 보니 더 뒷골너머 혈압이 솟구쳤다. 오토가 이렇게 느려도 되나하는 악다구니였다. 진실은 한집배달을 선택하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올해 내내 3배차를 수없이 소화했으면서 이것도 모르고 시킨 내가 모지리다. 근데 알고리즘은 최적화라며, 데이터 기반의 혁신이 소비자효용이라며.






탕수육은 랩에 구멍을 뚫어놨지만 배달통 안에서 스팀샤워를 하고 눅눅해졌다. 간짜장은 한 덩어리로 떡이 되어있었다. 배달부로 픽업할 땐 손이 데일정도인 소스들도 미지근했다. 급하게 랩을 찢고 소스를 힘주어 비비자 아내가 어깨에 손을 짚었다. 말없이 눈으로 “너 왜그래.” 했다. 쿠팡에 클레임을 걸고 싶어서 이츠앱을 열었다, 스크린샷 찍어둔 아까 화면에 써있는 도착예정시간과 1분 차이였다. 중간에 예상시간이 한번 바뀐건가? 이해가 안됐다. 나혼자 씩씩거리느라 식사를 망쳤다. 가족들은 내 눈치를 보느라였는지 원래 무던한 건지 맛있게 먹고 있었다. 저염식을 해야 하는 아버지의 일탈메뉴인 짜장면은 퍼져도 그에겐 최애인가, 한덩어리가 된 면을 벌써 숭덩숭덩 잘라먹고 춘장에 비벼진 양파를 집어드시고 있었다.


밖이 깜깜했다. 아버지는 혈당스파이크에 또 졸다가 깨서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내게 네이버 마이박스(클라우드)가 이상해졌다고 폰을 건넸다. 시간이 너무 많은 아버지는 넷플릭스와 유투브를 TV로 순회하고 나면 저녁에 마이박스에 들어가 젊은날의 여행사진들을 다시 돌곤 했다. 정말로 자동올리기로 된 최근사진만 몇 장 있었다. 아버지는 벽을보며 깊은숨을 쉬었다. 이건 복구해야한다. 한참을 폰을 들고 씨름했다. 네이버 고객센터에 문의를 남겨야 하나, 역시나 시스템엔 오류가 없었다. 뒤적거리다 상단을 보니 어머니 아이디로 잘못 로그인했던 거였다. 다시 아버지 아이디로 로그인을 해내니 모든 사진이 잘 있었다. 그럼 그렇지. 뒤로가기를 눌러 앱 목록을 보다가 숨이 막혔다. 가장 최근에 설치된 앱은 “쿠팡이츠배달파트너”였다. 배달도 시킬 줄 모르는 양반이 배달앱을 깐건 아닐 거고, 대체 왜. 광고를 잘못 눌러서 설치가 된건가, 혹시 정말 알바를 찾는거라면?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그냥 길게 눌러 앱을 삭제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나도, 엄마도 지금은 웃고떠들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답없는 현금흐름 계산을 돌리고 있는지 알 수도 멈출수도 없었다. 귀경 편은 내일 아침 기차였다. 수십년간 어느 방향이든 올라가고 싶기만 했는데, 지금은 내려온 이들이 부러워서 또 열이 뻗쳤다.




애들은 이제 그만하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지 마리오카트 전코스를 돌리고 있었다. 아들은 역주행을 하면서 꼴찌만 하고 있는대도 좋다고 계속 조이스틱을 쥐고 허공에 흔들어댔다. 동공을 가득 채운 허둥대는 자동차 따윈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이,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 하얀 유치를 다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