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에서 산 3,000원 고글

글로벌 디플레이션 풀장착 완

by플랑시



발단은 엘리베이터 안 낙서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에 있는 안전경고 스티커에 손글씨로 써둔 낙서, 210동 1.2 라인 같은 표시말이다. 택배기사나 배달기사가 헷갈리지 않으려고 서로 공유하는 암호 아닌 암호를 찾아 눈알을 굴렸다. 아까 확인하고 들어왔지만 검증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검은 마커로 써둔 글씨가 어디있담, 고글을 빼서 이마빡 위로 얹었다.


‘오케이 5-6호 라인 맞음.’


이번엔 지금 들고있는게 아까 픽업한 연어포케인지 처음 넣어둔 닭가슴살 샐러드인지 또 헷갈렸다. 다배차에 비슷한 메뉴가 걸리면 늘 긴장됐다. 고개를 숙이자 당근마켓에서 3만원주고 산 정품이라 믿고있는 오클리 고글이 헬멧에서 힘없이 빠져 바닥을 굴렀다.




사실 꼭 써야하는건 아니었다. 자외선으로부터 그 정도로 각막을 지키고 싶다기보단 눈을 가리면서 덜 주눅들고 싶어서 쓰는거. 특히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 우리아파트안에서 꼭 필요한 아이템이 고글이었다.

자기 전 누워서 멍하니 앱테크 보물상자를 누르다 알리익스프레스에 들어갔다. 평소였으면 뒤로가기를 딱딱 누르면서 100포인트를 빨리 채우고 빠졌을 타이밍에 photochromic glass를 검색하고 있었다. 변색렌즈 들어간 고글이 이만원짜리도 있고 만이천구백원도 있어서 옵션장난질인가 의심하던 와중에 3,150원짜리? 이건뭐야. 대충 요즘 다들 쓰는 일안식 알 큰 스타일 고글이었다. 들어가보니 정말 그 가격이었고, 변색렌즈도 맞았다. 사진리뷰를 보니 기능이 아주 뻥은 아닌듯해보여 일단 담았다. 여분 자전거 튜브 하나 넣고 여름에 쓸 수 있는 UV마스크 하나 담으니 만원이 되지 않았다. 속는 셈 치고 결제한 물건은 나와의카톡 에 써둔 통관부호를 찾는 데 걸린 시간정도만큼 빨리 집앞에 도착해 있었다.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냥이라는데 이런 걸 써도 되려나? 자전거 동호인 시절 변색고글은 족히 20만원은 넘는 고가의 아이템이었다. 루디프로젝트가 제일 알아줬고 오클리나 우벡스정도가 있었는데, 대충 반투명 봉투에 담겨온 삼천원짜리놈도 대충 그 사이 어딘가 디자인을 베낀 건지 멋스러웠다.


“이거 PC(Polycarbonate)인가? 생각보다 가볍고 유연한데?”


반신반의 속에 쓰고 나간 투명한 안경이 시커멓게 변한걸 셀피모드를 켜서 확인하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늘 옷까지 등산복브랜드니 아주 산악회 대장 느낌난다... 어차피 막 굴리는 용도인데 올여름만 쓰고 버린다 해도 손해는 아닌듯한 기분이었다.





세개 무료배송에 중독된게 분명했다. 매일 바꿔 써야 냄새가 안날거라고 믿고 주문한 마스크와 팔토시는 피부상태로 봐선 UV차단여부는 좀 애매했지만 없는 것보다야 나았다. 천원인데 스마트폰 터치가 된다는 장갑도 주문하고 벌크포장이라고 가격이 확 내려간 가품일지도 모를 타이어도 담았다. 생활용품까진 손을 뻗치지 않으려 했지만 짤짤이 무료배송 개수를 채우기 위해서 아이가 노래노래를 불러댄 플라스틱 활도 담았다. 등에 멜 수 있는 화살통에 점수판까지 포함인데 이 가격이면 이거 알리가 비행기 유류할증료 마이너스겠다. 오는 속도를 보면 어플상 트래커는 거짓말이고 사실 이천이나 군포쯤에 창고 빌려서 재고를 쌓아둔 거 아닌가 의심할 정도이기도 했다.


저녁식사 이후 아이를 불러 깜짝 선물이라고 주섬주섬 꺼낸 어른 팔길이만 한 양궁세트에 모자(母子)의 눈이 동시에 동그랗게 커졌다. 아이는 팔짝거리며 선물을 낚아채서 그 자리에서 포장을 뜯는데 아내의 묵직한 시선이 느껴졌다.


“이거 어디서 샀어?”
“어 그 천원마트라고 세개사면 무배 5일배송이야, 되게 편해 이거랑 나 뭐 필요한거 해서 만원도 안돼.”
“또 알리야? 장난감 거기서 사지 말라고 했잖아. 미세플라스틱에 무슨 유해물질 있는지 어떻게 알고 애 걸 사.”
“야 이거 키즈노트사진에 있던 거랑 똑같더만. 니가 네이버에서 뭐 사는것도 다 중국거야. 뭐 다른것같아? 다 같은 공장꺼라고. 그리고 뭐 이런 사출물 딱딱한 건 가소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뭐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뭐라하냐.”
“너는 그럼 뭐 다 알아? 이런거 사기전에 말이라도 하고 했어? 왜 맨날 맘대로야. 앞으론 절대 사지마.”


소곤대면서 서로 눈썹을 일그러뜨리는 와중에 아이는 종이로 어설픈 투구까지 만들어 쓰고 와서 자기를 좀 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과장되게 얼굴을 풀며 포즈를 취하는 꼬마장군을 사진에 담았고, 아내도 웃음을 지으며 유리에 쏘면 안 된다고 다급히 활시위를 막았다.




도서관에서 돌아오고는 거실매트에서 진짜 몸에 나쁠 것 같은 냄새가 나는 백악기 공룡들과 자석블럭을 대충 벽쪽으로 치우고 드러누웠다. 드디어 무릎이 나갔나 보다. 굽힐 때마다 아팠다. 정말 나가기 싫다. 손에집힌 EVA 폼 비행기를 벽 쪽으로 세게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비행기 조종석에서 나온 빨강 파랑 불빛이 경광등처럼 번뜩여서 어둑하고 뜨끈한 거실벽면을 채웠다. 구직현황을 한 번도 먼저 물어보지 않는 우리집 가장은 나에게 벌라고도 하지 않고 씀씀이도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눈치만 보고 가시를 세운건 나였을까, 무시당한다고 느껴서 괜히 발끈한 거였나? 벌떡 일어나 팬티부터 신발까지 합성섬유로 온몸을 감싸고 그 위로 알리산 아이템을 풀장착하고 배민부터 켰다.


“같은 공장, 같은 공장…”


베트남 출장 때 하롱베이는 안가냐고 구시렁대는 생산팀 계장들을 달래며 거래처 과장이 데려간 짝퉁시장에서 산 10년 넘은 나이키 티를 오늘도 입고 있었다. 나염처리된 로고는 애저녁에 홀라당 날라갔지만 목도 안늘어나고 올도 풀리지 않았다. 글로만 들어본 미싱기가 수백 대 늘어선 공장을 보여주는 협력사 한국인 사장이 베트남 인건비가 올라서 이제 이것도 다 캄보디아로 빠진다고 했던게 한참 전인데, 공장을 맡는 나라와 소비를 맡는 나라가 분업화된 세상을 흐린눈으로 보고 있었다. 고구마소주로 취한 저녁자리에서는 그 한국인사장의 비서 겸 공장장으로 보이는 베트남 사람에게 어설픈 영어로 우리 쪽 사람들이 무례하게 군건 아니었냐고 사과했던 기억이 스쳤다.




이과출신이 아닌 문돌이 입사동기들은 절반정도가 중문과출신이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 동부연안에 얼른 공장을 지어돌리면 팍팍 돈을 버는 속도전 시대, 회사 아저씨들은 그곳이 주재원자리도 매출실적도 승진도 둥둥 떠다니는 엘도라도인 것처럼 빨리 HSK부터 따라고 쪼아댔다. 낮은 등급만 따놔도 일단 그쪽 발령가능한 흐름만 타면 빠이주(白酒) 마시면서 KTV에서 실전으로 금방 는다고. 무섭게 늘어나는 라인과 생산성이 누군가에겐 기회고, 소비자에겐 물건값을 낮춰주는 만유인력이었을까.


찜닭집 벽엔 브랜드를 알 수 없는 TV가 달려있었다. 화면변화없이 요즘가요가 나오는 채널을 튼 라디오 역할이었다. 65인치쯤 되나 저 정도면. 저리 쓸거면 오버스펙같은데. 가끔씩 친구따라 코스트코를 가면 TV가 볼 때마다 커지고 싸져서 신기할 따름이었다. 삼성 엘지 너머 뒷쪽에 있는 100만원 언더 화면들을 멍하니 보다 보면 하나 사볼까 싶을 정도로, 이건 색이나 선명도도 괜찮은 것 같은데, OEM? 네이버스토어에 65인치를 검색했다. 잠깐 상상 속에서 벽걸이설치까지 갔다 현실로 뒤로가기를 누르는 중에 뉴스에 국내 석유화학 생산라인 구조조정 기사가 떴다. 한동안 일부러 잊고 지냈는데 진짜로 했네. 중국이 석유화학 최대수입국에서 수출국이 되는 동안 나포함 다들 몰랐던 건지 모른 척했던 건지, 길다면 길고 찰나면 찰나인 게 변색렌즈 밝아지는 속도만큼 스무드했다. 너무도 투명해진 고글만큼 선명하게 계속 어려운 업계가 내 일상생활을 뿌옇게 보이게 했다. 10년 위기론 속에서 외쳐대던 고부가화와 스페셜티가 막상 까보니 허울 좋은 구호에 불과했던 거라면, 나는 나대로 스페셜티 전환은 하나도 안했다. 더위가 좀 꺾이니 이젠 삼천원대 콜도 멸종위기였다.





입간판을 보고 새로 발견한 천원빵집은 편의점빵처럼 비닐봉지로 포장한 빵이 다양했다. 오피스텔 1층 매장 임대료가 감당되나? 길가 아니라 안쪽이라 그런가 생각보다 매장이 컸다. 일단 기본가격인 천원짜리를 두 개 집어서 나왔다. 콜을 기다리면서 한입 크게 물었는데, 냄새가 이상했다. 상한맛은 아닌데 역한 느낌도 살짝 있고…… 대체 뭐지? 소비기한부터 확인했다.

“ 뭐야 한참 남았네, 아니 뭐야, 엄청 많이 남은 건데?”

이질적인 맛의 비밀은 숫자가 아니라 글자에 있었다. 시큼한 초코빵은 SHANGDONG FUDAN FOOD CO., LTD, 공업용 유지냄새가 나는 크림빵은 ANHUI PROVINCE TONGDACHU FOOD CO., LTD에서 온 제품이었다. 이게 뱃삯 빼고도 천원에 팔려면 대체 얼마에 만든 건가. 배고픔도 이겨내지 못한 벽이 있었다. 일단 봉지를 접어 반쯤 남은 빵을 가방옆에 꽂아두고 이어가기로 했다. 또 배고파지면 그땐 재도전하려고 버리지는 못했다.





초역세권 다이소는 평일 낮에도 바글바글했다. 매장은 큰데 물건들이 작으니 제품이 정말 다양해 보여서 매번 사려는 걸 찾기도 전에 계획에 없던 물건이 사고싶어질 정도였다. 벌써 단열뽁뽁이가 입구에 나와있었다. 안에는 아직 미니선풍기도 파는데 참 빠르다. 아이들 생일은 봄가을에 몰려있어 보였다. 햇살반엔 9월생이 많았다. 포장지는 한롤에 천원이었다. 무지 가볍고 손가락처럼 얇은데 천원이니 은근히 비싸보였다. 이건 오른게 맞는 거겠지? 아님 사이즈를 줄였나? 어떤 영역은 디플레라 쳐도 자본주의는 인플레가 정배란걸 읽지 못한 내가 역시 문제였다. 캐시워크 포인트로 바꾼 다이소 상품권으로 결제했다. 오천원치 채워서 쓸데없는거 사지 않은 나 일단 칭찬하고. 야무지게 아내번호로 현금영수증도 끊었다.


롤이 생각보다 길어서 가방의 가장 긴 대각선을 활용해도 끝이 빼꼼 삐져나왔다. 더현대 지나갈 땐 온 세상이 부자같더니만 다이소만 다니니 온세상이 최선을 다해 빡빡해 보였다. 덜벌고 덜쓰는게 불황인가 많이벌고 많이쓰는 세상이 호황인가, 그저 모르겠다. 오지 않는 면접을 기다리며 어딜 가고 싶은지도 모른 채 돌아갈 수도 없다고 내빼는 나도. 단지 삼천원짜리 콜 하나씩 겨우 쳐내고 삼천원치 물건 사면서 기분 좋은 게 아이러니일 뿐이었다.


근데 반애들 생일선물로 아내가 사둔 네이버출신 클레이가 제일 몸에 나빠보이더만, 옹졸하게 아내에게 받아칠 용기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