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끝에 닿는 배달 한 봉지
"하여간 엄살들은.”
배달러들은 허구한날 “또 끝집” 배달이라고 징징거렸다. 확증편향이야 뭐야. 오피스텔 복도 끝이나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꼭대기층은 사이언스라고 하루에 한번꼴로 글이 올라오면 댓글로 동조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아주 자랑이다 그래.
8월 폭염경보 속에서 땀흘리며 고백하건대, 그들이 옳았다. ㄷ자 복도를 꺾어 달리면서 문에 붙은 1410호를 보면서 하는 말인데, 1419호는 저 창문 앞 끝집이 확실하다. 또 끝집이다. 오늘 내가 한 20건 중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꼭대기층 두개포함 5개가 끝집이었다. 끝에서 두 번째 집 한건까지 포함하면 6개. 30%가 끝집인게 말이 되나?
오늘 첫 콜은 빌라 5층이었다. 1층은 초록색 우레탄 발라둔 주차장인 필로티구조로 2층부터 5층까지가 집이고, 여기가 6층 옥탑세대가 있다면 끝집이 아니겠지만 어쨌든 탑층이었다. 이제는 현관밖에서도 안다. 창 너머 공간감만 봐도 여기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인터폰도 오랜만에 보는 화면 없는 2열짜리 자물쇠비슷한 길쭉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인터폰만 봐도 엘리베이터가 없음은 알 수 있었다. 계단은 좁고 곡률 심하고 가파른게 GOP 중동부전선 뺨때렸다. 해를 잔뜩 먹은 까만 가방과 밀착된 등이 벌써 뜨거워서 가방은 대충 1층현관에 벗어두고 봉지만 하나 들고 올라갔다.
얼른 본진으로 넘어가야 했다. 이런 날씨엔 대형 오피 엘리베이터가 가장 시원했다. 땀에 쩔은채 인터폰과 개폐장치 달린 유리 자동문을 덜컹거리며 지날땐 우선 냉기샤워를 1차로 하는데 그게 미슐랭식당(안가봄) 전채요리만큼 별미였다. 반대로 구축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온실느낌으로다가 제일 덥기도 한데, 음 우리집이 그랬다. 시원한 엘리베이터에 벽에 기대서 목욕탕 거울만한 반대쪽에 달린 기다란 LCD를 멍하니 봤다. 배민페스타 쿠폰을 뿌린다고 복주머니가 펑펑 터지며 피자와 치킨이 튀어나왔다. 광고 밑으로는 날짜와 시간이 상태표시줄마냥 달려있었다. 35도씨, 쨍한 해 모양이었다. 오피스텔들은 겉으로는 다 네모지게 그놈이 그놈같이 생긴 건물들이지만 내부구조는 제각각이라 기억속에 잘 구조화되지 않았다. A/B/C로 입구를 딱 끊어놓는 데는 그나마 편했는데, 입구는 여러 갠데 올라가면 복도가 이어져서 거대한 미로가 되는 오피스텔은 어떤 진입로를 택할지 매번 동전던지기처럼 고르곤했다. 잘못 찍어서 한참 돌아갈 때면 여지없이 시불거렸다.
믿을건 평면도뿐. 가끔씩 평면도를 사진으로 찍어놓고 폰 갤러리를 뒤적거리기도 했지만 이건 도저히 머릿속에 남지 않아서 매번 엘리베이터 홀 주변 비상대피도를 찾고자 했다. 빨간점으로 표시된 내 위치로부터 어디쪽인지 빨리 체크. 나와 같은 고생을 한 배달러들이 많았는지, 매직펜으로 엘리베이터 위치를 여러 번 동그라미로 휘감아둔 곳도 있었다. 그래서 632호는 어디여? 이게 바로 딱 될 공간지각력이었으면 두 번 봤던 싸트도 붙었겠지. 삼성 갔으면 지금쯤 동탄살면서 PS 세고 있을까 혹은 벌써 못 버티고 나왔으려나. 공상만 공전하면서 굳이 손가락으로 더듬거리며 방향을 잡았다.
엘리베이터 벽면을 채운 공지엔 [하수관역류로 인한 이물질 투입금지], [화재위험으로 인한 지하주차장 출장세차 금지], [주거용 오피스텔 에어비앤비 운영은 불법입니다], [실내흡연 금지] 등 하지말란 것들 사이에 시스템 에어컨 지정업체에서 수리하라는 광고 하나 끼어있었다. 이건 어딜가나 비슷했다. 아파트라고 민원의 성격이 다르겠냐만 이곳들은 조금은 결이나 빈도가 다른 게 아닌가 싶었다. 건물당 세대수가 많아서 그런지 엘리베이터 밖에도 가장 크게 자주 강조된 이슈는 층간소음과 벽간소음이었다. 말그대로 발+망치그림으로 소음을 묘사한 카툰과 화난표정이 퍽 웃기기도 한데, 반복해서 보다보니 좀 섬뜩해졌다. 저번에는 못봤던 그 밑에 누가 손글씨로 댓글처럼 달아둔 문장이 생겼다.
“조용히좀 삽시다.”
무섭게 조용한데, 늦은 점심엔 바퀴 한마리도 걷지 않는 것 같은 깨끗하고 조용한 복도에서 우웅거리는 엘리베이터 구동음만 울렸다. 다음 콜의 음식조리완료 알림이 들어왔다. 김치찜 한 봉지와 연어포케 한통 남아있는 가방을 내려놓고 쌩초록 서브웨이 종이봉투만 꺼내들었다. 어둑하고 고요한 복도를 달렸다. 반질반질한 바닥은 방금 닦았는지 수분감이 남았다. 러닝화 밑창이 삑삑거리는 마찰음을 냈다. 결승전 삼은 저 끝 비상창을 보고 눈으로 입으로 632호의 위치를 계산하며 긴 동굴을 뛰었다. 끝집 고객은 너무 바쁜사람인가 쇼핑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문앞에는 생수 페트들이 한 개씩 빼먹기 좋게 6개들이 큰 병과 20개들이 작은병으로 착착 쌓여있었다. 옆엔 등기가 온 건지 우체국 스티커 바코드가 있어 서브웨이는 그 뒤로 대충 놓고 완료사진을 찍었다. 건너편 집엔 런드리고 옷장옆으로 작은 택배상자가 두 개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다음 오피스텔은 건설사 브랜드를 알 수 없는 좀 더 작은 건물이었다. 입구가 하나뿐이라 찾기 쉬웠다. 하지만 들어가서는 가장 혼란스러웠다. 조명이 다른 곳 대비 어둑한게 틈입자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중심의 엘리베이터로부터 배달지까지 복도는 C자로 연결된 모습이었다. ㅁ자의 완전한 고리는 아니라 어디 방향으로 돌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 작은 건물인데 뱅뱅 도는 느낌 끝에 찾은 배달지는 거리상으론 특별할 게 없지만 동선상으론 가장 먼 곳이었다. 이건 끝집 카운트 6건에 넣진 않았다.
복도를 걷다보면 건축가들이 정말 대단하단 생각을 했다. 한정된 땅에서 주어진 용적률 상한을 지키면서 이렇게 세대를 많이 만들 수도 있구나 싶었다. 빛과 바람을 넣을 창문도 하나씩 다 달아주면서 말이다. 이번에는 메가커피 대량주문이었다. 거리대비 수입이 좋았다. 벤티사이즈 8잔을 어깨에 얹으니 헉소리가 나왔다. 사무실이 아닌데 대량 커피 주문이면 열에 아홉은 인테리어 공사중이었다. 캐리어 두개를 가방에 꽉 채워 넣으니 쏟아질 염려는 줄었지만 무게로는 중국집 10만원짜리 같았다. 커피가 샐까 싶어 오리 같은 꼴로 위아래 진폭을 줄이는 걸음으로 복도를 지났다. 문이 열려있는 곳을 보고 쉽게 찾아갔다. 음료를 내려놓고 집안을 슬쩍 봤다. 현관에서 직선으로 뻗은 창으로 8차선 대로가 보였다. 짐이 없어서인가, 볕이 잘 드는 시간이라 쾌적해 보였다. 빨간 벽돌빌라에 자취하던 20대엔 이런데 사는 친구들이 멋져보였다. 교차로 내려다보는 야경같은게 괜스레 어반라이프 같고.
어떤 집인지 궁금해 네이버부동산에서 매물을 눌러봤다. 내부사진과 구조를 하나씩 넘긴 후엔 가장 중요한 가격도 평형별로 봤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호갱노노 후기를 스크롤하며 읽었다. 호노는 현재 사는 사람은 최대한 좋게 쓰고 나간 사람은 가감없이 까는 곳이니 아웃라이어들을 패스한다고 감안하며 봐도 좋은말이 많긴 했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는 부동산의 금언처럼, 소음이야긴 많지만 입지를 좋게들 썼다. 강남권 출퇴근 편하고, 지하철 가깝고, 송파IC가깝고, 주변상권 많다는 말 사이로 내 기준 베스트 댓글은 이거였다.
“저도 사는동안은 조용했어요. 참 좋은동네에 좋은 집인것 같음. 물론 가격을 감안했을 때임.”
길건너 아파트를 한번 들렀다가 이번엔 이 지역에선 가장 외곽에 위치한 오피스텔 콜을 잡았다. 방사형으로 복도가 뻗는 불가사리 다리같은 건물이었다. 또 끝집이냐고 구시렁거리며 걸어가 짐을 내려놨다. 그래도 복도는 시원했다. 에어컨을 트는 것 같진 않지만 해가 많이 들지 않으니 열을 안받은 것으로 보였다. 불이 나면 소방관이 진입할만한 끝창을 내다봤다. 건물단위로도 여기가 끝집이라 뷰가 트였다. 고속도로와 주변 녹지를 눈으로 훑었다. 성남시와의 시 경계, 그 건너로는 강남구와의 경계.
표면상으론 맹모삼천지교를 표방한 어머니의 의지로ㅡ실상은 서울에 몇 없는 친구하나가 강하게 당겨서ㅡ목동 옆동네인 신정동으로 이사왔던 Y2K, 우리가족은 전세만기마다 시 경계를 향해 서쪽으로 이사했다. 고등학생땐 김포공항 근처에서 살았는데 뒷산너머로 군부대 사격훈련 소리가 났다. 표지판에 선명한 부천을 보면서 어린날엔 밀려났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중심부와 주변부는 감으로 늘 정하는 비교급 같았다. 이 오피스텔로 왈가왈부할거없이 여기서 10분 거리인 우리집도 넓게 보면 서울의 끝집이었다. 평당 단가로 따지자면 밑도끝도없지만, 가격으로도 송파구에서 제일 싼 아파트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친구들이 강남3구라고 드립을 칠때마다 느낀 감정은 으스대고싶은 마음보다 달랑달랑 매달려있는 절벽끝 같은 불안이었다.
왜 자꾸 끝집이냐는 반복되는 질문에 대한 배달부들의 답은 “당연하지.”였다. 시간과 체력이 가용자원인 입장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도 있지만, 시키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시스템과 편의가 공간적 제약을 커버해주는 세상이니까 건별로 나눠도 각각의 오더는 합리적 이유든 사연이든 있겠지.
“끝집이 있으니 배달부도 먹고살지 않냐.”
이 말은 경험적 통찰이 담긴 것인지 득도한듯한 말투가 건조한 짧은 글에서도 느껴졌다. 여기 사는 사람은 어쩌면 강남이나 잠실에 출근해야 해서 시간을 위해 지하철 앞 공간을 가성비 있게 확보하면서 다른것들은 하나씩 양보한 셈이라고 쳐야 할지, 삼천원 벌려고 이만원짜리 하나 놓고 가면서 몇달째 뭐가 이리 궁금증도 거부감도 많은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은 나 자신이었다.
‘그런데 왜 그게 당연하지?’
내 바퀴와 발로 거리를 메꾸고 있는 공간이 이름모를 그 집 사람을 방안에 가두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근거는 방금 이 집 몇번은 왔다는 느낌, 일련의 데자부였다. 반복적인 걸음과 완료처리에서 비롯된 가설이 그 집 철문 너머를 노크하지만 타인의 삶을 훔쳐볼 수는 없고. 내게는 어떤 상상 속 의문이 치워지지 않는 배수관 머리카락처럼 반쯤 막혀있었다. 오늘 너무 오피 콜만 탔나, 왜이렇게 지치는지 폰에 쌓인 걸음수를 체크했다. 아직 겨우 7천걸음이었다. 마음으로만 먼 거리였나? 완료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천천히 달렸다. 엘리베이터까진 실제로 30초정도 걸렸다. 문열리는 소리와 봉지가 끌리는 소리, 쿵 하고 닫히는 소리, 삐빅하는 도어락 소리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