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적률 599%가 만든 수직 이동
비마트는 처음이었다. 똥짐이 많으니 거른다는 글들을 보고 최대한 멀리했지만 우두커니 시급까면서 멈춰있을 수 없으니 일단 받았다. 스마트폰으로 [분 단위 초신선 장보기]를 한다는 캐치프레이즈의 비마트는 장보기 컨셉답게 한봉지에 대충 1-2kg 나가는 음식배달건보다 훨씬 크고 무거웠다. 2,300원 기본단가인데 2리터 생수 여섯 개 들이가 포함되어 있다면 파국이다. 달걀처럼 깨지기 쉬운 물건도 리스크였다. 이삼천원 벌려다가 이삼만원 토해낼 수는 없지 않겠나.
앱 하단의 수락 카운트다운을 보면서 빠르게 금액과 메뉴와 위치를 훑었다. 생수없고 계란없고 과자랑 라면이랑 음료수랑 냉동식품이다. 지도상 핀 위치는 픽업지와 배달지가 똑같이 찍혀있다. 엘베타고 수직으로만 올리면 되니 시간도 다리도 안털릴거란 생각이었다.
“0m짜리 배달은 뭐야? 오케이 고.”
비마트는 코로나때 망했다는 지하 롤러스케이트장 자리에 있었다. 깨진 마룻바닥 위로는 청테이프가 붙어있고 빼곡히 신발 사이즈가 적혀있는 스케이트 대여장 너머로 비마트가는길 입간판이 놓여있었다. 구경하며 들어가다 이빨 빠진 마루에 신발이 껴서 발목을 접질렸다. 두꺼운 PVC제 비닐커튼을 밀고 들어가니 오래된 냉장고냄새가 났다. 상한 냄새까지는 아닌데 쿰쿰하면서 비릿한, 청과시장과는 또 다른 냄새가 냉기와 어울려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50인치 정도 되는 이름모를 브랜드 TV가 상황판처럼 준비완료/준비 중으로 4자리 숫자를 띄우고 있고 옆으로 등받이 없는 간이 의자가 다섯 개 일직선으로 놓여있었다. 3면을 채운 어디서 주워온 거 같은 허연 랙에는 QR코드 붙은 전표가 길게 달린 흰 봉지들이 놓여있고 천 가림막으로 대충 막은 곳 안으로는 마트라 할만한 창고가 펼쳐져 있었다. 높은 BPM의 댄스음악이 은은하게 노동요로 흘러나오면서 높은 천장에 부딪히는 동안 에어팟으로 귀를 틀어막고 큰 마스크를 쓴 패킹 직원이 나와 말없이 봉지를 놓고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단시간에 만들었다는 확신이 드는 가벽 파티션에는 배달플랫폼노동조합과 라이더유니온의 광고지들이 비마트 측에서 붙인 공지사항을 둘러싸고 있었다. 붙인지 좀 돼 보이는 습기먹은 종이의 질감이 눅눅했다. 배민의 로드러너 서비스 도입을 반대하는 QR서명운동과 유상종합보험 의무화를 외치는 국회 앞 단체사진이 보였다. 폰 두세개가 붙어있는 딱판을 든 라이더들은 헬멧을 쓴채로 숫자가 가득한 대행사 전투콜창이나 스포츠 뉴스가 떠있는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봉지를 들고 나온 회색모자 여자가 익숙했는데, 마스크를 벗은 얼굴을 보고 순간적으로 턱을 당기고 버프를 끌어올렸다. 가영이엄마잖아. 어제도 놀이터에서 본 같은반 학부모를 만날 줄 몰랐다. 만난건 아니고 나만 봤지만 말이다. 이웃이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다. 고개숙인채 폰만 만지작거렸다. 우아한형제들의 비마트 캡틴 채용공고가 링크드인 어플에 남아있었다. 슬그머니 공고 저장내역을 지웠다.
앱에 표시된 시간에 딱 맞게 내 봉지가 나왔다. 식당에 비해 훨씬 쩌스트하게 돌아갔다. 숫자 끝자리로 구분된 랙에서 금방 QR코드를 찾았다.
‘생각보다 너무 큰데?’
라면이 컵라면이라 번들팩 포장이 길었고, 과자봉지들은 내 예상보다 빵빵해서 배달가방이 닫히지 않았다. 일단 들고 지상으로 나왔다. 오피스텔들은 반듯하게 같은 높이로 나란히 스카이라인을 만들고 있었다. 바퀴 트레드가 보일 듯 낮게 하강하는 비행기들 때문에 고도제한이 타이트했나 보다. 호갱노노로 찾아보니 높이만 같은 게 아니라 용적률도 599%로 맞춰 놨다.
한 손에 봉지를 한손엔 핸드폰을 들고 배달지를 찾아 걸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투명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서 몇걸음 걸으니 해당 동 그 라인 입구였다. 고객메시지에 써둔 공동현관 비번을 누르고 얼마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가 복도를 수십 걸음 걸으니 끝이었다. 딱 타고 탁 들어가서 따닥 놓고 끝이면 음, 땡큐네.
“근데 이걸 왜 굳이 시켜서 먹지?”
1층엔 귀퉁이에 CU도 있고 입구 바로옆에 GS 슈퍼도 있는데, 저게 싼가, 쿠폰을 뿌렸나, 바쁜가, 안시켜봤으니 알 턱이 없고 모르는 사람이니 사정도 알길이 없었다. 이 동네는 거대한 식빵을 동그란 호떡누르개로 한번 푹 눌러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 안에 창문마다 한집씩 살고 있고, 일층엔 식당과 술집이 있고 그 앞 조경수 아래서 사원증 맨 비지니스캐주얼의 남자 무리와 슬리퍼차림의 젊은이들이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 슬세권으로 상점이 다 갖춰진 구획이었다. 건물 틈 사이로는 오토바이와 카지노바이크가 지나는 바쁘고 빠른 동네였다. 저놈의 보라색 공유킥보드는 길을 기가막히게 막아요 꼭. 오늘도 저걸 피하다 하마터면 사람치는줄 알았다.
이번건 정말 급한 주문이었는지 비마트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고 가벼웠다. 메뉴를 보니 화장품이었다. 바닥을 살피며 꺼진 롤러장 네온사인 안으로 달렸다. 고글을 쓴 채로 들어갔는데 가영이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오피라 엘리베이터 대기 포함 5분컷으로 마무리했다.
딸깍 한 번이면 30분만에 오는 비마트가 성업하기 좋은 위치겠거니 했다.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주변을 계속 돌고 있으니 비마트 입장에서도 콜을 꼽기 쉬운 동네.
서울이나 한국의 도시 어디라고 다르겠냐만 너무 찌부됐고, 너무 복작대고 너무 편해보여서 기괴한 동네를 매일같이 돌고 있었다. 이 판에 들어온 이상 나도 빨대를 아무렇게나 꽂진 않았다. 그만큼 거리당 건수와 수입이 나오는 효율적인 공간이니까, 짬이 쌓이니 이 안에서만 뱅뱅 도는게 내게도 최적이었다. 집 근처에 이런 어장이 있다는 사실자체로 배달꾼중에는 운이 좋았다. 배민과 쿠팡을 돌려가며 타는것도 수요와 상권이 부족한 지방도시에선 어려운 일이라 했다.
다음 픽업지인 가든파이브에 도착하니 방음벽이 높은 외곽순환고속도로가 보였다. 집을 알아볼때 저기 밖으론 나가지 말아야지 하면서 고집을 부리던 기준선이었다. 서울 동남쪽으로 들어오는 관문인 이 땅은 비닐하우스와 무허가 건축물을 밀고 만든 필지에 법원에 구치소를 넣고 지식산업센터까지 한방에 넣어서 공공기관과 사무지구와 주거와 상권을 다 완성해 버린 곳이었다. 원래는 그린벨트였겠지? 이 지역 배달생태계는 밀도와 속도와 비용이 아다리가 맞았다. 강남과 중구 다음으로 탑티어라는 배달구역이니 뭐 이게 삼위일체라고 해야 하나, 홀리할 정도네.
그렇다면 배경 역할을 하는 웅장한 식빵들은 요새, 포문 많이 박힌 요새라고 부르고 싶었다. 네모난 법원과 검찰청이 성의 메인빌딩이고 주변을 감은 건물들이 단단한 형세를 흐트러짐 없이 잡고있어 매일 보는데도 기가 죽었다. 시부야 스크램블을 닮은 점심시간 사거리는 횡단보도가 그어진 십(十) 자모양보다 최단거리인 X자로 건너는 사람이 더 많았다. 차와 오토바이와 자전거와 보행자는 수없이 많은 진출입구 사이에서 서로를 언제 박아도 이상하지 않을 기세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공간을 침범하면서도 균형을 이루고 계속 흘러 다녔다.
툭 하고 시키면 톡 놓고 가는 편리한 세상인데, 하이엔드는 아닌 고퀄리티의 서비스를 다른 곳보다 적당히 싸게 해주는게 우리나라의 소구점인지, 그 현장에서 땀나게 뛰면서 논평이나 남기는 내 꼴이 뭐람.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에 나온 외국인 출연자들이 감탄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당연한 곳 서울. 여태껏 회사에서 Q/C/D (Quality/Cost/Delivery)를 귀에 박히도록 들으며 일했다. 그간 C를 쥐어짜던 생활을 했다면 지금은 반대입장에서 “싸게(C)”와 “빠르게(D)”를 담당하다 보니 갑자기 건방지게도 억울하단 마음이 튀어나왔다.
‘이거 나 빼고 다 합의한건가?’
이 정도면 묵시적인게 아니라 명시적으로 전국민이 어셉트한 수준 아닌가 싶었다. 세시반쯤 되니 쿠팡 유배지 아니면 비마트콜만 들어왔다. 곧 집에가야하는데 또 거절을 치려니 손이 망설였다. 이번 비마트도 3만얼마짜리에 무거운거 없으니 대충 해봄직한 사이즈다. 어차피 여기 녹봉을 받고 사는 주제에 이쯤에서 합의해야만 했다. 벌집모양으로 깜빡이는 주문집중지역으로 달리다 보니 어느덧 다시 비마트가 있는 하비오 오피스텔 앞이었다. 비마트 주문만 여러건 픽업한 전업라이더들은 80리터는 족히 돼 보이는 배달통에 커다란 봉지들을 쑤셔박고 뚜껑을 연 채 스로틀을 만지작 거렸다. 멀리 송파대로쪽 초록불이 들어오자마자 이쪽 신호는 째면서 동시에 사거리 너머로 흩어졌다. 빨간불도 중앙선도 방향도 없는 블랙이글스의 에어쇼같이 오토바이 궤적들이 뻗어갔다.
저 너머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착각이 들었다.
“아 거 대충 여기 싸인하시고 마무리하세요.”
어디서 봄직한 OCN 영화에서 깡패역할 신스틸러가 귀에 때려박는 대사랄까.
젖은 손가락을 티셔츠에 한번 닦고 3만원짜리 비마트 1km에 2,600원 콜 수락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