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세상의 자조

"온라인 게임 다니세요"라고 말리는 라이더들

by플랑시


“30도 넘으면 나가지마.”


아내가 출근하면서 남기고 간 말을 이해하는데 한참 걸렸다. 붙어버린 달걀후라이를 긁어대느라 소리가 섞였다. 내겐 계란만한 대안이 없는데 아이는 프라이는 질린 얼굴이었다. 해가 든 지 얼마 안된 거실은 밤동안 식지 않아 아직 뜨근했다. 씻고 잠만 잤는데도 머리가 잔뜩 떡졌다. 파스냄새와 땀냄새가 제멋대로 섞여서 악취가 됐는지 7시쯤 아빠를 외치며 달려온 아이는 안기다 말고 으엑! 하며 도로 자기방으로 뛰어갔다. 거실창으로 내려다본 사거리에는 출근길 차량행렬 사이로 전동휠체어에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이어붙인 노인이 뉘엿뉘엿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9시땡 출근한 도서관 3층 에어컨은 서늘할 정도로 빵빵해서 사무실 같았다. 그간 회사에선 가디건을 겹쳐입고도 냉방병스런 콧물을 달고 살았는데 올여름은 이 짧은 냉탕이후 바로 열탕으로 뛰어들어서 열사병을 걱정해야 했다. 누가 냉온욕 좋다그랬냐. 미리 얼려둔 물통은 자전거에 꽂아두면 응결된 수증기로 땀을 뻘뻘 흘리다가 한시간만에 미지근해졌다. 신호대기 중엔 지자체에서 마련해둔 그늘막을 찾아갔다가 점심시간 인파에 그늘 밖으로 밀려났다. 틈나는 대로 머리와 팔토시에 물을 뿌렸다.


낮에도 재활용품을 줍는 노인들이 가끔 보였다. 작은 짐수레나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걸로봐선 리어카로 활동하는 폐지 메인스트림에 미치지 못하는 틈새시장 같아 보였다. 이더위에 왜저러시는지. 콜이 끊기면 가까운 그늘을 찾아가서 배달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나온다고 뭔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마치 시황분석이라도 하는척하는 무의미한 스크롤이었다. ‘어디 동네엔 점심미션이 나왔네’, ‘쿠팡이 부스터라는 새 단가개념을 도입했는데 이거 실제론 뻥단가네’ 따위의 떡밥을 뒤적거렸다.


[폐지줍는 어르신] 제목을 눌렀다. 이 날씨에 폐지 줍는 거 너무 힘들텐데 그게 돈이 되나, 도보배달이라도 하면 훨씬 나을 거란 내용의 글에 댓글이 꽤 달렸다. 킬로당 70원인데 지자체랑 뭔가 등록하면 지원금조로 얼마 나온다는 중립기어 모드 설명, 그런 사람들이 배달하면 스마트폰 사용도 어렵고 전표번호 잘못봐서 오배송 난다는 비난, 그분들 알고보면 동네 꼬마빌딩 건물주니 니 처지나 걱정하란 말들이 달렸다.


밑으로 내리다 보면 어제의 수익인증글이 몇 개 있었다. 하나씩 튀어나오는 이바닥 떠야 한다는 글이나 노가다vs.배달, 소기업vs.배달 같은 어그로 글에는 라이더 각자의 기구한 사연달린 긴 댓글들이 수십 개씩 달렸다. 대부분은 다른 필드에서 이 바닥으로 흘러와 의도했든 아니든 눌러앉은 사람들이었다. “단가 좋던 시절은 끝났고 개나소나 들어오니 배달판은 망했다.”같은 자조와 “그건 니가 열심히 사계절 길 위에서 시간을 녹여보지도 않고 하는 소리다.”라는 반박, 그대로 인용하면 좋소기업가서 쥐꼬리월급에 이상한 사람스트레스 받고 갑질당하느니 이게 훨씬 자유롭고 좋다는 프레카리아트 찬양까지 다양했다. 전업으론 안되고 부업으론 좋다는 부업러들의 참전까지 이어지면서 흥한 글들을 여러 개 찾아보면서 도달한 커뮤의 결론은 “그냥 (좋은)온라인 게임 다니세요.”였다. 구구절절한 사연속에서 피어나는 ‘아 옛날이여.’ 같은 회한의 파편들이 곳곳에 박혀있었다.




일요일 새벽엔 오래전 같이 자전거 타던 지인과 양재천에서 만났다. 83년생 아들둘아빠는 최근에 팀장을 달고 전임자가 두고 간 똥들을 치우느라 요즘 야근에 시달린다 했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팀원이 수두룩 빽빽한데, 그들을 쳐내는 것도 역할인 듯했다. 대치동 재건축 조합원인 그에게 사업 진척현황을 들으며 이번엔 진짜로 이주하는구나 싶었다. 양재천은 아침 러너가 많고, 조경이나 시설, 혹은 시민들에게서 부내가 났다. 타워팰리스 근처에서 돌아서 다시 대치유수지 방향으로 천천히 달렸다. 살이 더 빠졌다고 걱정하는 그에게 주 6일 유산소하니 살찔 틈이 없다고 웃어 보였다. 은마아파트가 보이는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그는 세이렌오더로 커피와 함께 빵까지 넉넉하게 미리 시켜놓았다. 조심스레 근황을 묻는 그에게 빵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답했다.

“아직 면접도 한번 못 갔어요. 제가 문제가 있나봐요. 한 이십개쯤 떨어졌네요. ”
“요즘 반도체말고 어디 사람 뽑는 데가 있겠니, 그거는 계속하고?”
“네 이게 저도 루틴이라..돈도 그렇고 일단 주중엔 꾸준히 돌리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도 큰 수입 아니면 그보다 자격증이나 좀 확실한게 낫지 않을까? 나도 아직 공인중개사 2차 걸고있긴해 흐흐”
“네 해야죠..복직 옵션도 고려하고...”
“그래 잘린것도 아니고, 건강만 잘 챙겨.”

카스테라가 얹힌것 같아서 남은 커피를 한번에 빨아먹었다. 며칠 전 동창과의 카톡방이 생각났다. 투닥거리다 날이 선 대답을 한 나에게 그는 날이 더워서 네가 예민해졌다고, 여름엔 배달 그거 좀 쉬라고 했다. “그거”란 말에 긁히고 성질을 버럭 냈었는데, 방금 들은 점잖은 조언은 나와 가장 비슷한 세상을 사는 월급쟁이 아저씨가 한 말이라 더 무거웠다. 그도 재건축 분담금을 생각하면 최대한 버틸 사람이므로. 퇴직 시점에 우리 자산 차이가 이만큼 벌어질 거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아 내가 더 싫어졌다.




추위보다는 더위가 그래도 버틸만했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를 벗어나면 건물 그늘에 가서 목을 축이고 습관적으로 앱 몇 개를 열었다. 배민-쿠팡-MTS-당근-카톡-네이버카페. 쪄죽겠는데도 성수기는 아직 오지 않았는지 콜이 툭툭 끊겼다. 짤짤이 보물상자 앱테크하러 매일 들어가는 당근마켓의 알고리즘은 100건부터 보너스 세게 준다는, 아무것도 없이 성실함만 갖고 오라는 일대 라이더모집 광고를 자꾸 띄웠다. 완료건별 체증식 인센티브 아래는 ‘수락률 90% 달성시’라는 글자가 작게 달려있었다. AI가 만든 질주하는 오토바이 모습이 역동적인 게 꽤 고퀄이었다. 하루 몇건에 며칠근무면 대략 월 매출 얼마, 리스비 보험료 수수료 떼면 얼마 남겠네 라는 계산이 나왔다.

집에 와선 구글링을 하다가 디시인사이드 배달갤러리로 흘러들어갔다. 네이버가 온건한 오버그라운드라면 디시인사이드 온갖 쌍욕이 난무하는 언더그라운드였다. 8할은 비속어인 디시의 글들을 보면서는 왠지 모를 공포감마저 들었다. 우선 여기선 배달종사자를 무조건 딸배라고 불렀다. 하나씩 보기 힘들 것 같아 [개념글]이라고 해둔 시트를 눌러 추천을 많이 받은 인기글들을 읽었다.


“딸배가 병신직업인 이유.” “틀딸배 특” “ㅈ소 인생이 그래도 낫다.” “일대는 범죄집단임” 같은 제목을 몇 개 클릭했다. 대부분 팩트폭행을 가장한 그냥 언어폭력이었지만 내용 자체로는 공감가는 글도 있었다.

저렇게 쉴새없이 욕을 뱉어대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일 걸까. 배달판에는 진입장벽이 없었고, 배달러들은 슬롯보장이랄 게 없다. 배달판에서 폐지노인을 보는 시선이나 사무직들이 배달을 보는 시선이 겹쳐졌다. 시선이 위로 향하든 아래로 향하든 사람들이 희구하는 것들은 결국 “망함”으로부터의 도망. 안정성이라 표현하는, 내 말로는 “지대”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나이먹고 언제까지 배달할 거냐는 질문 속에는 얼마를 벌든 간에, 아니 그 얼마를 벌어서 나를 지켜줄 해자를 쌓고싶어하는 배달판의 엑싯 열망이 담겼다. 빚을 갚기 위해서, 혹은 시드를 모으기 위해서 떠날 동력을 모아야 하는 절박함이 하루 12시간이나 주 7일을 녹이는 열정의 연료였다. 내일모레 정산해주는 배민이나 금요일마다 정산해주는 쿠팡도 그렇지만, 한 달짜리 월급이 주는 숨 쉴 틈을 얼른 영속적인 가치로 바꿔두는 일에 다들 열심인걸까. 벌이의 시간지평을 늘리다가 레이스가 끝나면 결국 요양병원 천장 석고보드를 멍하니 보면서 끝나는거 아닌가.




오후 세시의 아지랑이만큼 상념도 일렁거렸다. 하원시간을 맞추려면 얼른 쌀 씻고 장보러 가야 했다.
우유두개 번들세트와 달걀 30개들이 한판과 천도복숭아 한봉지를 담았다. 점심무렵 들어온 이틀 전 배민 열건짜리 정산이 오늘 장보기 금액보다 커서 다행이었다. 용적률 꽉찬 낡은 아파트와 소비기한이 급격히 당겨진 정규직 간판, 남부끄러워 티는 못내면서 속으로는 이악물고 평생 내가 쌓던 성채는 한해두해 풍화되어 끝없는 수리를 필요로 했다. 오늘도 성벽을 고칠 작은 돌멩이를 주워 담으러 성밖을 돌았다. 들어와 보니 바지 뒷주머니에 허연 소금 부스러기만 남았다.




9시 넘어 아이방에 셋이 누우니 자리가 꽉 찼다. 암막커튼이 들어온 바람에 밀려 둥실거렸다. 아내는 아이의 다리를 잡고 쭉쭉이 체조라고 마사지를 했다. 아이가 간지럽다고 높은 목소리로 웃어댔다. 아파트 복도가 울려서 조용히 시키길 두세 번, 금방 잠들어버렸다. 늘 이렇게 까무룩 자는건 참 효자다 싶었다. 혹시 먼저 잠든건 나였나? 어둠속에서 눈을 뜨고 조용히 우리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오늘 진짜 피곤하네.”
“오늘도 나갔어?”
“응. 잠깐 했어 그냥.”

“더우면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다 진짜 큰일 나.”

“나 이거라도 루틴대로 할게. 이직도 열심히 알아보고 있어. 이것도 안하면 내가 진짜 무너질거 같아. 조심해서 할게.”
“.....진짜 조심해야해. 우리애 고아 만들지마.”



아내는 나와달리 밤눈도 밝았다. 얼마간 조용한 나를 관찰하다가 굳은 내 표정을 바로 읽고 오늘 있던 웃긴 에피소드를 늘어놓았다. 내가 천장만 보며 누워있는 사이 엉금엉금 기어가더니 내 종아리를 쥐고 문질문질하다가, 발목을 잡고 “쭉쭉이!” 하면서 장난을 쳤다. 눈을 감고 웃고있으니 꿈도 없는 깊은 잠 속으로 바로 빠져들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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