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깐 콜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사거리에 서있으면 시야에 들어오는 오토바이들과 전기자전거 사이에서 전업러와 부업러가 구별되기 시작했다. 낮시간 오토바이면 거의 전업러, 이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인 셈이었다. 폰을 두세 개 붙인 노트북만한 판때기를 들고 있으면 배/쿠 하청업체 혹은 배달대행사 소속 전업러인게 확실했다. 전기자전거 중에선 장비 수준으로 부업러와 고인물 전업러를 구분했다. 다(多)배차를 수행할 수 있는 커다란 배달통과 보조배터리들이 주렁주렁 연결된 자석식 폰케이스는 기본값이고 자연스럽게 좌회전 신호에 껴서 차도로 넘어가는 해탈한 표정 같은 게 확신의 근거였다. 반면 오후 일곱 시 이후 배낭에 핸드폰 하나만 달랑 챙겨서 뚫어져라 폰을 보고있는 헬멧도 안 쓴 운동복 아저씨면 이제 막 부업으로서의 배달맛을 보러 나온 뜨내기였다.
낮시간엔 노인과 여성 라이더가 종종 눈에 띄었다. 배달노동자의 이미지로 오랜 시간 각인되어 있던 오토바이에 취한 어딘가 양스러운 미성년자들은 평일 낮시간에는 되려 보이지 않았다. 노인들은 주로 50cc급 오래된 스쿠터나 20세기 배달 상징같은 버건디-아이보리 조합의 시티100 오토바이를 탔다. 폰 화면을 슬쩍 보면 나와 같은 배/쿠 어플. 지역별로 있는 대행사 소속이 아닌 프리로 소일거리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버거킹에서 만난 노인 라이더도 그런 부류였다. 프랜차이즈 햄버거집들은 전표가 팔뚝만큼 긴데 글씨는 깨알만 해서 초창기엔 픽업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버거집중에선 버거킹이 Delivery의 약자로 추정되는 [D000] 같은 별도 번호체계를 갖추고 있어 바로 픽업이 되니 개중에는 선녀가 따로 없었다. 숫자와 영문 6자리 조합인 쿠팡번호를 찾지 않아도 영수증 상단에 적힌 D로 시작하는 자체 번호를 보고 픽업하면 그만이었다. 온라인 게임인 수요가 많은 문정역 버거킹에 비해 주택가 한가운데인 옆 지점은 점심이 덜 붐볐지만 와퍼 반값 행사 때문인지 픽업존에 봉지가 그득그득했다.
입구에서부터 시야에 들어온 왜소한 노인이 직원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윈드실드가 뿌예진 옛날 디자인 헬멧에 뭔가 배달라이더스럽지 않은 평상복차림인 할아버지가 뭐라뭐라 하는 웅얼거림은 들리지 않았다. 통통 튀는 아이돌 음악과 튀김기에서 울린듯한 알람이 기름냄새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구석 픽업존에 와서 전표를 잡고 들여다봤다. 가장자리에 푸른빛이 도는 눈동자가 느릿느릿 움직였다. 시커먼 옷 일변도인 라이더들이 까마귀 떼처럼 몰려와 하나씩 봉지를 채갔다. 내 버거세트를 담고 나서 그의 폰을 힐끗 보니 쿠팡 전표번호가 화면의 반을 채웠다. 해상도를 최저로 낮춘 건지 글자가 화면을 온통 잡아먹고 있었다. 다가가서 말없이 스크롤을 내렸다. D067이 맨 아래 나타났다.
“ D067 저기 오른쪽 밑에 거 저거 가져가시면 돼요.”
괜한 오지랖을 부리긴 싫었는데, 뒤돌아 매장을 나오면서 후회 비슷한 게 밀려들었다.
‘저 할배 운전은 할 수 있나?’
장년층 이상의 라이더들은 대부분 넉살이 좋아보였다. 매장이나 엘리베이터에서 스몰토크를 원하는 사람도 많았다. 약간씩 오지라퍼면서 또 불만제기는 적극적이라 조리대기가 길어지면 취소하고 나가는 젊은 라이더들과 달리 식당 직원에게 클레임도 많이 했다. 처음 배달할 시기, 배달전문점 근처에서 서성이는 내게 가게 문가에 서있던 나이 든 라이더가 주문번호를 물어보고 봉지를 집어준 적이 있었다. 담배냄새 섞인 체취가 밀려들었다. 그때 쿠팡은 뒷 네자리로 읽는다는 걸 배웠다. 최대한 거리를 두고 싶었으므로 대화는 지양했다.
배민이 생긴 후 이 판에 들어온 젊은 다수의 라이더들은 운전이나 인지기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나이든 신규 유입자들에게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뉴비인 내입장에선 그분들이 진짜 오래전 고인물인지 신규유입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숙련이라기보단 적응에 가까운 시스템에서 그들은 그냥 나이든 사람들일 뿐이었다. 온라인 공간의 특성상 웹에서 험한 말들이 오간다면, 오프인 길 위에서는 째리는 눈빛과 팍 하고 당기는 스로틀에서 나온 배기음이 감정을 드러냈다.
배달대행사 소속 전업 라이더들과 나 같은 커넥터들이 받는 콜은 가게배차/AI배차로 구분되어 있어 직접적으로 같은 콜에 대해 경쟁하진 않는다지만, 나를 포함해서 똥단가를 “빼주는” 사람들로 인해 단가의 하향평준화가 일어나는 상황에 지사소속이든 프리든 전업라이더들은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엔 막연히 철가방 시절인 식당소속 배달부만 떠올려 왔다. 배달대행업이란 게 생긴 이후, 배민이라는 주문대행 플래폼이 생긴 이후로 이 시장이 연간 40조짜리 마켓으로 크는 동안 끊임없는 수싸움의 역사가 있었다는 걸 이걸저걸 찾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격자식으로 정비된 오피스텔위주의 상권에서는 여성 라이더들도 종종 있었다. 몇 년 전엔 보지 못했던, 전업으로 보이는 사람도 제법 시야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부업으로 잠깐 타는 것 같은 이미지의 아주머니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이들은 주로 바퀴가 작은 느린 전기 자전거를 타고 인도로 다녔다. 중심가 공개공지에서 둘셋씩 모여 구석에 붙어 전자담배를 피울 때도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 보였다. 거친 도로에서 마찰을 피하고 싶은 걸까, 마스크로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머리카락도 히잡비슷한 버프로 숨겨 성별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2026년 배달판에서 가장 시끄러운 존재는 외국인 라이더였다. 주로 일할 수 없는 비자인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명의를 도용해서 배달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대행사 사장이 수수료를 많이 남겨먹는다는 말이 온라인에서 시끌했다. 비대면 업무특성상 지도만 볼 줄 알면 된다는 식으로 꼬시는 지사장때문에 워킹비자없는 외노자가 업계에 밀려들어와 생태계에 위협이 된다고 했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일부 지역에서만 있는 일인가 했는데, 비마트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자막없이 중국 사극 숏폼 영상을 보는 라이더를 스쳐 지나가고서는 실감이 났다.
명의도용에 무보험이 많아 불법과 안전문제로도 확장되는 이슈에 라이더들은 가장 크게 분노했다. 사고라도 나면 보험처리도 불가능하니 지뢰를 밟는거랬다. 맞지 위험하지. 근데 그건 명분 같고 화는 결국 밥그릇에서 온 거 아닌가? 플랫폼이 싸게 똥콜을 빼는 목적으로 이 상황을 묵인하고 있고 일부 대행사가 중간마진을 편취하기 위해 활용한다는 주장도 힘을 받았다. 여기저기 떼먹는 놈이 있다는게 어쩌면 모든 노동자에게 참고 넘길 수 없는 역린일 테니.
외래종이 기존의 생태계를 망치는 이유는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또한 '자연적 질서'로 받아들여지는 곳이 시장이었다. 참개구리가 죽든 청개구리가 죽든 황소개구리가 죽든 시간이 지난 후엔 현실이 새로운 균형이 되는게 자연이니까. 뭐 그럼 쪼매난게 요만큼 벌어가는 나는 무당개구리정도 되냐. 저렴함이 핵심 가치인 세계에서는 어떤 당위성도 설 자리가 없었다. 당위성이란 각자의 위치에서 제각기의 입장으로 재단하기 마련이니 저 위에서 알고리즘이 짠 규칙만이 이곳에선 공식적인 당위였다.
배달라이더들의 커뮤니티에서는 밥그릇을 뺏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성토가 강한 어조로 표출되는 듯했다. 격양된 언어들 너머로 흐릿하게 공포가 보이기도 했다. 올해 초 자전거를 세우고 픽업을 들어가거나 공동현관을 누를 때마다 뒤에서 느껴지는 뻑쩍지근한 라이더들의 시선에는 신기함 말고도 이상하게 생긴 개구리를 보는 경계심도 일부 있었을 터. 플랫폼들은 밥그릇을 쥐고 흔들기 때문에 직접 팰 수는 없는 존재였다. 앞에 보이는 상대에겐 주먹을 뻗어도 내가 서있는 케이지를 부술 망치는 없었다. 판을 깰 수 없다면 판에서 밀려 나오지 않도록 버티는 게 최선이었다.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바이럴로 큰 비용없이 프리랜서 배달러들을 키운 배민,쿠팡, 요기요같은 배달중개플랫폼 들은 기존의 배달대행사 시장을 잠식해 갔지만 완전히 죽일 필요는 없었다. 기본적인 수요를 365일 일정하게 대응하는 목적으로 지역별 배달대행사를 하청으로 두고 돌렸다. 그리고 수요가 늘 때는 핸드폰 앱에 미션과 프로모션을 띄우고 프리랜서 라이더들이 출근하게 한다. 지금 내가 이걸 쓰다 말고 정말 간만에 들어온 미션을 준비하러 짐을 싸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면 늘 문제는 누가 그 똥콜을 뒤집어쓰느냐였다. 외국인이든 도자킥(도보 자전거 킥보드)이든 플플이든, 결국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콜 단가를 서로의 탓으로 떠넘기려는 게 이 판 싸움의 8할이었다.
플플이(배민/쿠팡플러스 대행사 소속)와 일반(프리랜서: 배민/쿠팡 Ai배차)은 매일같이 온라인에서 뭐가 낫니 나쁘니 토론이 이어졌다. 일대(일반대행) 시절 그리워하는 고인물의 참전까지 더해지면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서로간의 견제가 첨예할수록 수급의 안정성이 공고해지는 구조로 보였다.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한 이전투구라지만, 배달판에 있다 보니 여기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어떤 전지적 ‘평형’이 개입하는 순간은 평면 그래프가 3차원 그림으로 바뀌는 느낌이었다. 구조가 조금만 복잡해지면 머리에 포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기하학에 약하지 않았다면 SKY를 갔으려나, 그럼 지금 여기 서있지는 않았을까? 퍽이나.
이 바닥의 구조를 찾는 건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염없는 빨간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도 스쳐가는 라이더들을 바라볼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일을 오래 한다고 해서 더 알 것 같지도 않았다. 잡념은 시야만 좁히고 사고위험만 높일 거니까. 사실 이 길 위의 모든 배달러들에게 꼭 필요한 오늘의 진짜 목표는 안라무복, 즉 무사귀가였다.
내가 깐 콜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요즘 말마따나 내게는 그저 [알빠노]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