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복많이받으세요
설 연휴는 총 5일이었다. 유치원이 쉬는 날은 배달휴무를 의미하기도 했다. 양가방문은 마쳤다. 점심을 사먹고 커피를 여유롭게 마시고 있으니 이질감이 들었다. 아이는 하루 종일 밖에서 뛰어다녀서인지 평소보다 일찍 곯아떨어졌다. 이때다 싶어 나가려고 눈치를 보니 아내가 어두운데 어딜 가냐고 눈으로 레이저를 쐈다. 누워서 한참을 기다리다 아이와 함께 잠든 아내를 아기방에 두고 밖으로 나왔다.
요즘은 명절 당일만 쉰다더만, 밤거리가 생각보다 고요했다. 젊은 1인가구가 많이 사는 오피스텔촌 상권에는 일부 술집이 영업중이었고, 밥집들은 거의 닫은 듯했다. 하지만 콜은 “매우 많음”이었다. 해외든 고향이든 다녀온 사람들이 현관에 대충 캐리어를 풀고 뭐라도 시키나 보다 했다.
가장 먼저 들어온 콜은 상권 중심가의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최근 뜨는 저가형 커피브랜드인가, 왠지 익숙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여기는 캔으로 커피를 포장해 줘서 음료가 샐 염려도 없었다. 바로 수락. 건물 일층 입구 근처지만 메인상권과는 다른 방향, 지정타 매물 종이가 벽 가득 붙은 부동산 두 개 사이에 낀 작고 긴 직사각형 매장엔 부부로 추정되는 희끗한 남녀가 분주했다. 주문지가 꽤 있어 보였다. 먼 길을 다녀온 사람들이 달달한 무언가를 잔뜩 시켰나 보다. 내게 휴가나 명절 후반부는 늘 그랬다. 연휴내내 배에 기름을 발라도 출근을 앞둔 밤에는 허기가 들었었다. 당떨어진 느낌이라 해야 하나, 내가 그랬으니 남들도 그러려니 했다.
정장도 캐주얼도 아닌 차림의 아저씨는 포스기와 싸우고 있었다. 연휴라 알바가 없어서 땜빵을 온 건가? 그동안 아주머니는 분주히 블렌더를 씻고 냉장고에서 건과일 같은 걸 꺼내고 있었다. 아저씨가 버럭 성질을 냈다. 감압식도 아닌 화면을 꾹꾹 누르다 어디선가 막힌 듯했다. 신나는 목소리로 녹음된 배달의 민족 주문알림이 얄밉게 화를 돋우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힐끗 보고 별 반응이 없었다. 정수리 옆으로 밀려난 집게핀과 헝클어진 헤어를 그대로 둔 채 얼마나 바쁜지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취소할까…?”
운동선수도 아니면서 징크스는 있어서 첫콜은 마수걸이라고 어지간하면 완료했던 터라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달큰한 캬라멜 냄새가 좋았다. 커피하나와 딸기셰이크를 받아들고 나서며 고민하던 말을 뱉었다.
“사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문이 닫히는 동안 블렌더 소리만 위잉위잉 들렸다.
유난한 밤이었다. 자전거도로를 가다 만취한 젊은 사람이 갑자기 길을 막아 사고가 날뻔했다. 겨우 멈추고 화가 올라와서 취한 일행의 비틀대는 사과를 무시하며 다음 콜을 따라갔다. 누런 불빛에 나무 인테리어로 일본 선술집 느낌을 낸 가게는 손님으로 바글거려서 독점의 과실을 열심히 누리고 있었다. 내일 출근할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는 바이브의 청년들이 많았다. 어쩌면 그들의 연휴는 이제 시작된 건가 싶었다. 명절동안 못 쉬었다던가 그런. 누가 봐도 술안주인 메뉴를 배달하면서는 맥주생각이 간절히 났다. 올해는 회사를 안가니 명분도 니즈도 없어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는데. 매일 느지막이 깨는 나도 맥주 한잔이 절실한걸 보니 쉬는 내내 마시고도 다들 술이 고픈 밤인가 했다.
다음 콜은 처음 가보는 가게였다. 상권중심이 아닌 올드타운 주택가에 있어 간편히 지도만 보고 가면 될 줄 알았는데 한참 헤맸다. 간판다운 간판이 없는 배달전문점이었다. 그나마 작은 입간판에도 없는 가게이름이 앱에 떠있는 걸 보니 한 자리에서 서너 개 매장을 띄워둔 샵인샵 방식이었다. 지금 열어둔 특수를 누리는 건가. 식당에는 검은 마스크를 쓰고 검은 모자를 눌러쓴 외국인 직원이 튀김기를 한손으로 잡았다가 바로 옆으로 한걸음 가 뭔가 벌건걸 볶고 있었다. 입구엔 식재료와 포장재 박스가 질서란 게 있나없나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안녕하세요 쿠팡입니다.”
한 두 평 남짓한 좁은 주방에서 혼자서 분주한 젊은이는 인사에 답을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나도 딱히 뭔가 답을 바란 건 아니었다. 이런 가게에는 그런 직원이 많았다. 어딘가 가리고 무언가 눌러쓰고 있는 청년들은 절반정도는 외국인 같았고, 그들에게는 얼굴도 언어도 밖으로 드러내서 유리할 게 없으리란 생각이었다. 사람보다 짐이 차지한 자리가 압도적으로 많은 그런 주방에서는 대부분 혼자서 혹은 두 명이 피크타임을 쳐내느라 늘 바빴다. 찐득하게 생긴 화구의 열기가 내 얼굴까지 전해지는건 입구와 주방사이 테이블이 없는 짧은 거리 때문이거나 혹은 환기가 엉망진창이라 그랬겠지. 소스묻은 아이폰에서 쌩으로 나오는 팝음악만이 이곳에선 팬시한 썸띵이었다.
이번에도 조리대기가 길어지면서 멍을 때리다가 갑자기 인사를 고민했다.
‘해피 루나 뉴이어? 해피 홀리데이?’
아시안계 거래처들과 설날 무렵 휴무일정을 공유하면서 하던 인사가 생각났다. 서로가 같이 쉬니 이해하는 문화권의 일치와 차이로 벌어진 기간에 대한 조율이었다. 오른쪽에선 전자레인지가 다 됐다는 삐삐 소리가 30초 간격으로 났다. 놀라울 정도로 무표정인데 너무 바쁜 근무자를 보니 인사도 지랄맞겠다 싶었다. 어차피 한국어도 잘 알 거 아냐, 불필요하게 쓰지 않는 것뿐이지. 당신 나라도 설에는 가족과 함께했나요?
“감사합니다.” 서둘러 나왔다.
지하의 공유주방은 여섯 칸 중 세 개는 공실, 두 개는 쉬고 한 개 매장의 사장님만 근무중이었다. 하얀 형광등 아래서 [장사 잘하는 법] 같은 유투브를 틀어두고 파스타를 볶고 있었다. 나랑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키 큰 남자는 붙임성이 좋았다. 지금 눈오냐고 날씨를 물어본 적도 있고 콜 좀 어떻냐고 시황 토크도 즐겼었다. 혼자만의 친밀감을 느껴 말을 걸어봤다. 사실 몇 번 픽업해 본 나에겐 그가 구면이지만, 하루에도 헬멧 쓴 사람들이 수십명은 오가는 그에겐 내가 초면일 뿐이었다.
“사장님 오늘 쭉 일하셨어요?”
“네 뭐 저는 집이 서울이라… 해야죠”
“주문은 좀 들어와요?”
“저녁부턴 괜찮네요.”
“혼자서 대단하십니다.”
“지금이라도 더 벌어야죠. 쿠팡이시죠?”
만테카레가 끝난 파스타가 반투명 플라스틱통에 담기고 코팅이 반쯤 벗겨진 뜨거운 팬에 떨어진 수돗물이 치익거리며 김을 끓였다.
“감사합니다 싸장님 새해복많이받으세요!”
“기사님도 복받으시고 조심히가십쇼오!”
배달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아이 컨택트를 제대로 했던 이유는 그새 그와 아는사이가 된 기분이 들어서였다. 과장된 끝음 처리같은 업자들 톤으로 서로 한타임 늦은 새해 복을 기원하며 헤어지며 그가 언젠가 지상에서 테이블을 둔 식당을 할 수 있기를 잠깐동안 바랐다.
시간과 수입을 비교하며 이쯤 접고 들어갈까 할때 다시 첫 콜 카페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배달지가 집으로 가는 동선이라 수락을 눌렀다. 이정도 시간이면 다들 마감할 때도 됐다. 일부러 요란하게 인사를 하며 들어가봤다. 빌(Bill)지는 아까보다 좀 빠져 보였지만 여전히 아수라장이었다. 투명한 블렌더 벽면에 뻘건 과일 스무디같은게 그대로 붙어있는데 옆칸에선 다른 걸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저씨는 더이상 화는 내지 않았지만 툴툴거리며 몸을 굽혀 바로 무릎 앞 냉장고를 열었고 냉동과일을 꺼내면서 복잡한 레시피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아줌마는 레시피 설명을 하다가 타박하기도 하면서 이인분의 일을 하는것 같았다. 생긴 지 오래된 브랜드는 아닌데, 저분들은 부모님과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추정나이 플러스 마이너스 5년을 감안해서 대충 상상속 시나리오를 썼다. 퇴직금으로 권리금 작은 데다가 폐업률 낮다는 프랜차이즈를 찾아서 개업한다. 회사들 점심시간으로 바쁜 낮에는 알바를 쓰고 마감은 사장님이 한다. 하루 종일 여기에 붙어있는 그런 그림일까. 조리 대기가 길어지는 만큼 공상도 뻗어나갔다.
배달을 시작한 이후 두 발 남짓한 거리에서 주방을 넘어다보는 시간이 쌓였다. 바쁜 점심 피크 타임은
대부분 활기가 넘쳤다. 아직 출근한지 얼마 안돼서 그런걸까. 항상 화나있는 사람도 있었고, 표정을 잃어버린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무섭게 무난한 얼굴들도 많았다. 내 눈엔 화나있는 사람들보다 무표정한 사람들이 더 지친 모습으로 보였다. 인터넷에 떠노는 [지금 지쳤나요?] 밈이나 [죽겠어요] 짤에서 본 표정. 어디서 또 짤로 흘려 넘기듯 봤던 죽음의 수용 5단계에서 부정과 분노를 지나간 끝자락 같은 모드를 묻힌 얼굴들이었다. 지금 여사장님이 보이는 침묵이 딱 그 모습이었다. 저 사장님들은 이 가맹점을 얼마나 오래할 수 있을까. 며칠 쉬다 배달을 나와서인지 또 오지랖과 잡념만 늘었다. 니걱정이나 해 인마. 긴 연휴였나 보다. 봉지를 담으며 저 부부가 마감까지 대판 싸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엔 진심으로 복을 빌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도망치듯 나오는 와중에도 다시 얼음이 가각가각 갈리는 소리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