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마다 다른 얼굴

[4화]

byChloe

소개팅에 관한 기록을 주로 담고 있지만, 사실 그 시절을 채운 건 '친구들'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좋아하는 걸 '함께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게 좋다. 관심 없는 걸 무리해서 맞춰주는 게 느껴지면 그걸 눈치보고 신경 쓰다가 나도 즐기지 못하게 된다. 혼자 하는 것도 나름 좋아해서 굳이 영업하고 싶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분야마다 친구가 달랐다. 화장품을 좋아하는 코덕 친구들이 있었고, 전시를 같이 보는 친구가 따로 있었고, 패션, 공연, 영화, 바카라, 쇼핑, 사진. 한 사람이 여러 칸에 걸쳐 있으면 운이 좋은 경우여서 더 자주 봤다. 그래도 메인 관심사는 다르기 마련이라, 일주일이 요일마다 다른 얼굴로 채워지곤 했다.


코덕 친구들과는 직구와 해외 화장품 이야기를 했다. 여행 가면 세포라를 털어 와서 서로 선물했다. 궁금하면 일단 사보고, 나보다 어울리는 친구에게 넘기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나중에 해외에 나가 살 때 친구 사귀기가 수월했던 데에는 그 시절 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매장에서 수다 떨다 친해지기도 하고, 어딜 가나 메이크업 좋아하는 사람은 있으니까.

전시나 영화, 공연은 정보 없이 가서 일단 보는 편이다. 좋아지거나 궁금해지면 다시 본다. 그래서 처음 볼 때는 주로 친구가 추천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이걸 좋아할 친구에게 내가 같이 보자고 하는 쪽이었다.

요즘은 전시장이 포토존이라 시끄러운 데도 많지만 그때는 조용히 보는 공간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전시를 볼 때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같이 갔지만 같은 속도로 보지는 않았다. 각자 좋아하는 작품 앞에 오래 머물다가, 다 보고 나와서야 입을 열었다.

나는 그 리듬이 좋았다. 같이 있는데 혼자 있어도 되는 사이, 그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관계가 귀하다는 걸 그즈음 알아가기 시작했다.



사진은 좀 달랐다. 그때 나는 찍는 쪽이 아니라 찍히는 쪽이었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가 너무 많았고,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대신 나는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지 않았다. 아기 때부터 필름을 낭비해가며 나를 찍던 엄마 덕분이다. 그 집에서 받은 것 중에 이건 고마운 쪽에 속한다.

친구 중에 카메라 리뷰 사이트에서 일하게 된 애가 있었다. 새 기종이 들어오면 누군가 앞에 서 있어야 했고, 나는 자주 불려 나갔다. 평일 낮에 합법적으로 노는 기분이 꽤 좋았다. 맛있는 걸 먹는 식대와 소소한 모델비도

좋았고.

그때 찍힌 사진들은 지금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사이트에 올라갔다가 사이트가 사라졌다.


한 가지 서운했던 건 국산 브랜드일수록 한국적인 배경을 싫어했다는 것이다. 고궁이나 인사동 같은 공간들이 드러나는 걸 싫어했고, 전형적인 도시 느낌이라거나 국가색이 드러나지 않는 자연을 선호했다. 왜 한국이라는 걸 지워야 하는지 그때도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은 그걸 아주 전면에 내세우는 걸 보면 재미있는 기분이 든다.


뮤지션과 연이 닿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덕분에 페스티벌이며 콘서트며 뮤지컬을 몇 해 동안 초대로만 봤다. 스무 살 언저리에 누릴 수 있는 호사 중에 그만한 게 없었다고 생각한다. 운 좋게 좋은 캐스팅을 많이 봐서, 공연 보는 눈이 처음부터 높아져 버린 부작용도 있지만 덕분에 지금 하는 일에 손쉽게 적응했던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막연한 취향이 생기던 것이 고등학생때라면, 경험해보고 굳어지게 된 시절은 이때가 아니었나 싶다.




목동으로 이사 가고 나서는 동네 친구들이 생겼다. 학교 친구와 동네 친구는 성격이 다르다. 학교 친구는 같은 시간표를 공유하지만 동네 친구는 같은 밤을 공유한다. 전공에서 친해진 친구들 중에 근처에 사는 애들이 있어서 더 가까워지기도 했다.


늦게까지, 혹은 밤새 놀아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뜻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열 시에 일어나 집에 갔지만, 적어도 돌아온 다음에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서로의 부모님과도 인사하게 됐다. 1화에 적은 경로 중 하나, 친구 부모님이 친척 오빠를 붙여준 그 건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 시절의 기록은 전부 싸이월드에 있었다. 사진을 올리고, 제목을 달고, 그 아래에 노래 가사를 붙였다.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문장들이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의 표현이었다.

친구가 투데이 메인에 걸리는 걸 보고 따라 했다가 덜컥 당첨된 적도 있다. 모르는 온라인 친구가 잔뜩 늘었고, 그걸 보고 소개해달라는 연락도 왔다. 이것도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경로 중 하나다.


요즘 나는 찍는 쪽이다. 디지털도 좋아하지만 여전히 필름 카메라를 자주 들고 다니고, 대부분 사람이 없는 것들을 찍는다. 언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친구라고 부를 사람은 한 손에 꼽는다. 그 시절에 그렇게 많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각자 다른 요일로 흩어졌다.

사이트는 사라졌고, 원본이 들어 있던 외장하드는 잃어버렸다. 꽤 많은 순간이 기억에만 있다.

가끔 그때 찍힌 사진이 한 장쯤 남아 있었으면 싶다. 나는 그 안에서 분명 웃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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