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는 어디서 어떻게 미래를 물어도 역마살 이야기를 제일 먼저 듣는다.
사주든 점성술이든 타로든 뭐든.
지금도 정기적으로 이민병이 찾아온다. 해외에 나가면 운도 좋고 사람들도 나에게 좀 더 친절하다. 기분 탓이라기엔 한국에서는 잘 못 받는 서비스를 받는다거나, 날씨운이 유독 좋다거나 하는 일이 자주 있다.
아무튼 그렇게 또 한 번 이민병이 도져 어디로든 나가고 싶던 어느 날, 아는 언니가 소개를 주선했다.
조건은 이랬다.
성사되면 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샤넬을 받는다. 결혼하면 미국에,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도시였던 LA로 가서 산다. 정원이 있는 방 세 개짜리 집과 내 차가 준비된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대학원 학비를 대준다.
그리고 주선자는 샤넬 가방을 받는다.
조건이 먼저 나오는 소개는 처음이었다. 앞의 몇 가지는 나를 위해, 마지막 하나는 소개해 준 사람을 위해. 내 얼굴이나 정보는 그쪽으로 전달됐으리라 짐작하지만, 나에게 온 건 사진도 프로필도 아니고 조건의 텍스트뿐이었다.
소개라는 것에 딱히 무게를 두던 때가 아니라 가볍게 나가봤다.
조건이 탐나서라기보다, 그 조건을 거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상대는 핑크색 랄프로렌 옥스퍼드 셔츠를 입고 나와 있었다. 첫 만남에 핑크를 입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중학교부터 대학원까지 LA에서 지냈다고 했다. 말투가 부드럽고 상냥했고, 자리를 살피는 세심함이 있었다. 물컵이 비면 알아챘고, 내 쪽 햇빛을 먼저 봤다. 나도 캐나다에서 몇 년 살았으니 그런 감각이 어디서 오는지는 안다. 나쁜 자리가 아니었다. 그즈음 만나본 사람 중에 나를 사람으로 대하는 쪽에 가까웠다.
사이좋은 가족에 누나가 셋 있는 집의 막내아들이라고 했다.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났고, 누나 있는 집 특유의 배운 매너가 있었고, 가벼운 대화가 즐거웠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슬펐다. 이야기가 이렇게 수월하게 오가는 사람에게, 인간 대 인간으로 좋은 사람에게 왜 그런 조건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야 했는지 어렴풋이 느껴져서.
다만 그때 나에게 만남의 1순위는 무조건 사랑이었다.
설레지 않고
그도 나에게 설렐 리 없는 관계.
누군가의 가족을 속여야 하는 자리.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참 시간이 흘렀고, 나의 이십 대를 돌아보다가 이상한 건 지금의 나인가 싶어졌다.
영주권이 나오고, 집이 있고, 학비가 나온다. 서른 몇을 지나고 보니 그게 그렇게까지 성립 불가능한 조건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까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했을까. 스물 몇의 나는 결혼이 거래가 아니라고 믿었던 걸까, 아니면 거래라는 걸 들켜서 화가 났던 걸까.
둘 다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요즘 더 자주 드는 생각은 이쪽이다.
그때의 내가 지킨 게 정확히 무엇이었나.
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은 사랑으로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리는 시작할 수 없다고. 그런데 그게 정말 내가 고른 신념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프롤로그에 썼듯, 우리 집에는 규칙이 많았다. 몇 시까지 들어와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면 안 되는지. 결혼은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것도 아마 그 목록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줄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는 나를 잘 아는 상태에서 판단해서 거절한 쪽보다, 배운 대로 거절한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몇 해가 지나 주선자였던 언니가 나에게 사과했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둘 다 아는 걸 굳이 말로 꺼내면 다른 일이 되어버리니까.
그 사과를 듣고 나서야 그 표가 다시 떠올랐다. 마지막 줄에 적혀 있던 가방도.
지금의 내가 돌아간다 해도 아마 같은 답을 할 것이다.
다만 이유가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 자리에서 더 많이 잃는 쪽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받을 것들을 받고 내 삶을 살면 됐지만, 그 사람은 그 결혼을 평생 설명하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스물 몇의 나는 그걸 도덕의 문제로만 봤는데, 지금이라면 누군가를 이용하며 산다는 죄바카라감을 끝내 벗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역마살이 강한 사람이다. 최근엔 하다못해 한달에 한 번 당일치기라도 비행기 타고 나가길 권하는 사람이 있었다. 언제고 나가고 싶고, 나가면 즐겁고, 매번 여권을 찢을가 일주일만 더 있을까 고민하며, 종종 이민병이 도지고, 지금도 틈만 나면 어디로 갈지 궁리한다.
그때 나에게 온 표에는 그게 전부 적혀 있었다. 비행기도, 집도, 차도, 학교도.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벌어서, 내 선택으로 어디에 갈지 정하는 쪽이 즐겁다. 그게 한 해를 버티고 일을 하는 원동력이다. 그 원동력을 남의 손에 넘기고, 잘 하지도 못하는 거짓말을 평생 기억하면서 사는 쪽을 나는 택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가 같다고 의미가 같은 건 아니다.
그걸 아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