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요즘은 술을 억지로 권하는 문화가 많이 없어졌다고 들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첫 소주는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마셨다.
빨간 플라스틱 컵에 가득 따라주는 걸 받았다. 나중에 헤아려 보니 소주 3분의 2병쯤 되는 양이었다.
여대니까 조금은 봐주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예외가 없는 자리였다. 위에서 내려온 순서대로 돌았고, 다들 마시고 있었고, 나는 못 마시겠다는 말을 끝내 문장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냥 우물거리다 받아 마셨다.
그리고 토하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날 두 가지를 알았다.
나는 취하면 자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술에 약하다는 것.
술을 좋아하는 아빠와 한 잔도 못 마시는 엄마 중에서 나는 엄마 쪽이었다. 지금도 술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이해하진 못한다.
그 뒤로 학교에서는 나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엄살이 아니라는 게 증명됐으니까. 증명 방식이 그것뿐이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지만, 아무튼 다행이었다.
1화에서 주량이 맥주 한 잔, 소주 반 잔이라고 썼는데 그 숫자를 알게 된 게 그날이다.
조인트 MT라는 게 있었다.
과 대 과로 붙어서 함께 가는 1박 2일. 우리 과 동기가 상대 학교의 누군가와 사귀고 있어서 성사된 자리였다.
우리 쪽 여섯, 저쪽 여섯.
상대는 어느 공대의 ROTC였다.
처음 한 시간은 좋았다.
MT라는 건 우리에게 늘 짐과의 싸움이었다. 술이며 물이며 고기며 무거운 것들을 여자들끼리 낑낑대며 여러차례 옮기는 게 당연했는데, 그날은 수월했다. 말끝마다 존댓말이 붙었고, 누구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친구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돌이켜 보면 그 한 시간이 제일 이상하다.
그렇게 젠틀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뜻이니까.
두 바퀴쯤 돌았을 때 게임이 시작됐다.
손목 때리기를 아실지 모르겠다. 게임을 하다 진 사람이 손목을 내밀고 이긴 사람이 손가락 두 개를 모아 때린다. 횟수가 정해져 있긴 하지만 원래 이건 시늉하는 게임이다. 아무도 세게 때리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한다. 나는 그때까지 이게 손이 닿을 구실이 필요한 스무 살들이 만들어낸 명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날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소리가 달라졌다.
딱.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을 때 친구의 손목은 이미 붉었다. 두 번째에 자국이 남았고 세 번째에 친구가 손을 뺐다.
친구가 울었다. 소리를 낸 건 아니고 그냥 눈물이 났다.
그가 말했다.
"아직 두 번 남았는데요."
농담이 아니었다.
웃지도 않았다.
그게 제일 무서웠다.
물론 그는 원론적인 규칙을 말하고 있었고, 규칙대로 하자는 사람에게 뭐라고 해야 하는지 우리는 몰랐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주선자들이 끼어들었다. 한쪽은 말렸고 한쪽은 분위기 깨지 말자고 했다. 그러다 둘이 싸웠다. 우리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자리는 그렇게 파했다. 1박 2일 일정이었는데 우리는 그냥 택시를 불러 집으로 왔다. 오는 동안 아무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친구는 손목을 소매로 덮고 있었다.
며칠 뒤 사과가 왔다. 때린 사람이 아니라 주선자를 통해서.
죄송하다고, 걔가 술이 좀 그렇다고, 원래는 안 그러는 애라고 했다.
원래 안 그러는 사람은 취해도 안 그런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