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공평하게 말하면 나도 묻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으니까. 인터뷰가 서로 본다는 뜻이라면 그 자리도 인터뷰이긴 했다.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었으니.
그래서 질문은 나한테 남았다. 너는 왜 하고 싶지도 않은 대답을 곧이곧대로 하고 있느냐고.
가르치는 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뭣도 모르고 만나던 그 해를 제외하면, 그때즈음 소개가 제일 많이 들어왔다. 직업이 명확하고, 한 문장으로 설명되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종류의 일이었기 때문이겠지. 주선자들이 나를 소개할 때 쓰는 표현도 대체로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애들 가르치는 참한 아가씨.
이제 미팅이 아니라 소개팅을 할 나이였다. 선개팅이라고 해야 할까. 여러 명이 왁자지껄 모이는 게 아니라 둘이 마주 앉는 자리. 게임도 없고 술도 거의 없었다. 대신 질문들이 있었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되는 동안 받은 질문들은 대체로 이랬던 것 같다.
부모님 두 분 다 키가 어떻게 되세요
아버님은 무슨 일 하세요
부모님께 용돈은 얼마나 드리세요
집은 자가예요, 전세예요
첫 질문의 의도를 알아채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내 키도 아니고 왜.
2세 때문이더라.
생각도 못 했다.
나는 인터뷰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뜯어보면 서로 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묻는 사람도 보이고 답하는 사람도 보인다. 질문을 어떻게 고르느냐에 그 사람이 드러나니까, 사실은 묻는 쪽이 더 많이 드러난다.
면접은 다르다. 한쪽이 주로 본다. 기본적으론 한 쪽이 조금 더 일방적으로 잘 보이고 싶어하는 관계 같은 느낌.
당연한 말이지만 그 자리들은 면접이 아니다. 면접관은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기라도 한지. 그 자리에는 궁금함이 없었다. 미리 정해진 항목이 있었고, 그걸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같은 걸 되물으면 대답이 눈에 띄게 짧아졌다. 아, 뭐 평범하죠. 그러고는 다시 다음 항목으로 넘어갔다.
몇 개의 문장은 지금도 기억한다.
저희 집은 명절에 제사를 안 지내요. 부모님 모시고 2주쯤 해외여행을 가거든요. 좋지 않아요?
나는 하루 고생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2주를 같이 다니는 것보다는. 그리고 그 여행은 그 사람 돈으로 가는 게 아니었다.
저는 어른들한테 잘 못하는데, 우리 엄마한테 저 대신 잘할 것 같아요.
이렇게 칭찬의 형식을 띠고 있을 때도 있었다. 3화에서 농담의 형식에 대해 썼는데, 그것과 같은 종류다. 웃으면서 하는 말에 화를 낼 자리가 없듯이, 칭찬의 모양을 한 말에는 거절할 자리가 없다.
선생님이시니까 애 교육은 잘 시키시겠네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아이의 과외 선생으로 면접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제가 키가 작아서, 크셔서 좋네요.
나는 169.5센티미터다. 내 키를 보며 비슷한 소리를 한 사람이 못해도 열 명은 됐다. 키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면 나 역시 그럴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은 아무도 고려하지 않는 듯했다. 키 큰 사람이 좋다고 말하면 속물 보듯 하던 때라, 나는 그 말을 삼키곤 했다.
그 자리들에서 나는 꽤 성실한 응답자였다.
부모님 키를 말했고, 아버지 직업을 말했고, 용돈 이야기에는 웃으면서 넘어갔다. 불편한데 불편한 티를 내면 안 되는 것처럼 굴었다. 받아치는 건 상상도 못 했고, 표정 관리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제일 싫었다.
그 시절 들은 질문을 다 모아도 거기 없는 게 몇 가지 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물었지만 그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어디 사는지는 물었지만 어디 가보고 싶은지는 묻지 않았다.
부모님이 어떤 분인지는 물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하여는 궁금해 하지 않았다.
항목에 없었으니까,
한편으로는 나도 그들에게 묻지 않았다. 체크리스트 확인하듯 묻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상대가 궁금하지도 않았으니 그냥 빨리 답하고 끝내고 싶었나 싶다. 인터뷰가 서로 본다는 뜻이라면 그 자리도 인터뷰이긴 했다.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었으니.
그래서 나의 질문도 나에게 남았다. 너는 왜 하고 싶지도 않은 대답을 곧이곧대로 하고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