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시

프롤로그

byChloe

통금은 열한 시였다.


대학교 1학년 때 집은 인천, 학교는 태릉이었다. 1호선을 끝에서 끝까지 탔다. 왕복 세 시간, 환승 놓치면 네 시간. 그러니까 열한 시 통금은 실제로는 열 시 통금이었다. 아홉 시 반부터 시계를 봤고, 열 시가 되면 일어났다. 그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있든.


2학년에 목동으로 이사했다. 같은 해에 통금도 열두 시로 늘었다. 두 개가 동시에 좋아졌으니 뭔가 나아졌어야 하는데, 목동에서 태릉도 서울 끝에서 끝이었다.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여유 있게 도착해야 했고, 그래서 나는 계속 열 시에 일어났다. 대신 약속 장소를 점점 홍대 쪽으로 잡았다. 가까우니까.


그래서 나는 술자리의 끝을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늘 내가 가방을 챙긴 다음이었다. 다음 날 물어보면 다들 어제 진짜 재밌었다고, 네가 없어서 아쉬웠다고 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집에 이 계산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아주 가까이 한 명 있었다.


남동생.

걔는 통금이 없었다.




엄마에게는 살고 싶었던 삶이 있었고, 내가 그 삶을 대신 살아주기를 바랐다.


문제는 내가 아빠를 닮았다는 거였다. 엄마와 아빠는 정반대인 사람들인데 나는 하필 반대편을 닮았다. 딸에게서 자기를 보고 싶은 사람이 자꾸 남편의 얼굴을 보게 되어서였는지, 나에게는 타협이 안 되는 규칙이 자꾸 늘었다.


엄마 버전의 사랑은 나를 무결점으로 만드는 일이었던 것 같다. 남이 내 흠을 찾기 전에 엄마가 먼저 찾아서 알려주는 것. 프렌즈에서 모니카에게 유독 마음이 갔던 것도 그래서였다. 누구보다 빠르게 딸의 단점을 말해주는 엄마.


덕분에 나는 아주 착한 애가 되었다. 정확히는, 착해 보이는 법을 익힌 애가 되었다. 어떤 방에 들어가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부터 계산했고, 싫은 소리를 웃으면서 넘기는 기술도 그때 익혔다.


이 기술이 나중에 나에게 어떤 사람들을 데려오는지는 차차 이야기하겠다.


연애는 당연히 터부였다.

그런데 몇 년 뒤, 남자를 만나지 못하게 하던 그 엄마가 묻기 시작했다. 왜 결혼을 안 하니.


이 문장 하나로 설명되는 집이 이 나라에 꽤 많다는 건 한참 뒤에 알았다.


이 바카라은 그 사이의 기록이다.


열 시에 일어나야 하는 애가 1학년 한 해에만 미팅을 오십 번 나갔다. 결혼을 조건표로 제안받은 적이 있다. 만난 지 한 시간 만에 부모님 키를 물어본 사람이 있었고, 첫 자리에서 나와의 미래를 혼자 다 그려놓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스물아홉의 어느 밤에는 인공눈물을 넣고 대성통곡을 했다. 그날 나는 풀려났다.


웃긴 이야기도 있고 아닌 이야기도 있다.


결국 스무 살 언저리의 인간관계와, 내 성격이 만들어지던 시기의 이야기다.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열 시가 되어도 이제 나는 일어나지 않는다.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