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미팅에 나가는 것도 그 연장이었던 것 같다. 남자를 만나러 갔다기보다 친구들과 어딘가에 가는 일이었다.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나누는 뒷얘기가 자리보다 재밌었다.
1학년 한 해동안 미팅과 소개팅을 오십 번쯤 나갔다.
만날 때마다 센 건 아니고,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 주말마다 뭘 했더라 하고 떠올리다가 알았다. 매주 있었다. 헤아려보니 대충 그쯤이었고, 알고 나서 조금 놀랐다.
많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경로가 많았다.
친구라 부를 사람을 한 손에 꼽는 지금 돌이켜 보면 신기하리만큼, 그때는 아는 사람이 많았나 보다. 들어오던 경로를 적어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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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친구, 선배
동아리
고등학교 친구 (여고였으므로 이쪽도 전부 여자)
친구의 남자친구의 친구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에 친구들과 올린 사진을 보고 소개해달라고 한 사람
친구 부모님이 나를 보고 친척 오빠를 붙여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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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줄이 제일 웃기고 제일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하필 얼굴이 유일하게 내 취향이어서 안 만날 수가 없었다.
어른들이 나를 좋아했다. 이유는 알고 있다. 내가 잘 웃어서다.
프롤로그에서 착해 보이는 법을 익혔다고 썼는데, 그 기술이 처음으로 실적을 낸 게 이 무렵이다. 어른 앞에서 반달처럼 휘는 눈을 하고 앉아 있는 스무 살은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상대의 취향을 읽고 작은 걸 챙기는 것도 잘했다. 그것도 엄마에게서 온 능력이다. 세심하고 예민한 사람 밑에서 자라면 눈치가 는다. 남의 표정에서 정보를 읽어내는 일은 그 집에서 생존에 필요한 기술이었고, 밖에 나오니 그게 장점이라고 불렸다.
그러니까 나는 소개하기 좋은 애였다. 남자들이 보기에 어땠는지는 모르겠고, 정확히 말하면 여자들이 보기에 괜찮은 타입이었다. 소개는 대부분 여자들이 한다. 그게 오십 번의 진짜 이유다.
1학년 때는 들어오는 걸 거절하지 않았다. 거절할 이유를 딱히 몰랐다.
아니, 그것도 정확하지 않다. 열한 시에 불려 들어가야만 하는 애가 할 수 있는 반항이 그것뿐이었다. 굳이 빠져서 까탈스러운 애로 보이는 것도 싫었다. 나만 모르는 재밌는 이야기가 생기는 건 더 싫었고.
2학년부터는 스무 번 아래로 줄었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
장소는 매번 달랐지만 결국 홍대 아니면 대학로였다. 맥주 파는 집, 열 명 안팎, 자기소개가 한 바퀴 돈 다음에는 게임.
이미지 게임, 베스킨라빈스 서른한 개. 이름만 다르고 결국 누군가 마시게 되는 구조다.
내 주량은 맥주 한 잔, 소주 반 잔이다. 그래서 나는 게임을 아주 잘하게 되었다. 재능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걸리면 죽는다는 각오로 임하면 사람은 는다.
그렇게 게임에서 살아남은 애가 열 시가 되면 일어났다. 1호선을 타야 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의 재미는 남자 쪽에 있지 않았다.
나는 여자 친구들과 훨씬 많이 놀았다. 화장품 얘기만 하는 친구들이 따로 있었고, 전시를 같이 보는 친구, 공연을 가는 친구, 영화, 바카라, 쇼핑, 사진. 분야마다 사람이 달랐다. 그때는 찍는 쪽이 아니라 찍히는 쪽이었다. 나중에 카메라 리뷰 사이트에서 일하게 되는 친구가 있어서 모델도 했다. 뮤지션과 연이 닿는 친구들 덕에 페스티벌이며 콘서트며 뮤지컬을 초대로만 본 시절도 있었다.
미팅에 나가는 것도 그 연장이었던 것 같다. 남자를 만나러 갔다기보다 친구들과 어딘가에 가는 일이었다.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나누는 뒷얘기가 자리보다 재밌었다.
그리고 처음 겪는 자유이기도 했다. 열한 시 통금이 있는 집에서 자란 애에게, 시끄러운 맥주집에 앉아 처음 보는 사람 열 명과 게임을 하는 저녁이나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은 칵테일 바에서의 대화는 그 자체로 사건이었다. 앞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사실 부차적이었다.
오십 번을 나갔고, 대부분은 기억에 없다.
기억에 남은 건 몇 번뿐이다. 그리고 그 몇 번은, 좋아서 남은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