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먹고 힘 세져야지!

어쩌다 텃밭 2

by혜솔

초록빛이 빼곡하게 오른 시금치를 보니 마음이 먼저 달콤해진다. 며칠 전부터 시금치를 먹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로리의 얼굴이 떠올라 칼을 쥔 손길에 절로 흥이 난다. 붉은빛이 감도는 시금치 밑동을 톡, 톡 잘라낼 때마다 서글서글한 흙 향이 손등으로 번진다.

시금치는 겨울을 견디며 제 몸에 단맛과 영양을 한껏 모으는 명특한 채소다. 찬 바람 속에서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자란 시금치는 잎이 두꺼워지고, 수분 대신 당도를 높여 스스로를 보호한다. 마트 매대에서 단정하게 묶인 것만 보았을 때는 몰랐던 생명력이 텃밭의 흙 속에서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나는 4월에 씨앗을 뿌렸다. 씨앗을 뿌렸을 때는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고개를 내밀지 무척 궁금했다. 당연히 시중에서 보던 넓적하고 둥근 잎이 흙을 밀고 올라올 줄 알았다. 하지만 촘촘하게 돋아난 첫 싹을 마주한 순간,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흙을 뚫고 나온 잎은 길쭉한 일자 모양으로, 마치 초록색 리본을 가늘게 찢어놓은 듯했다. 시금치는 본래 두 장의 길쭉한 떡잎을 먼저 틔운 뒤, 그 사이로 우리가 아는 본잎을 내미는 식물이었다. 나는 그걸 알리가 없었다.

정성스레 물을 주고 영양제를 챙기며 며칠을 더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가녀린 리본 한가운데에서 부끄러운 듯 둥글고 도톰한 본잎이 고개를 내밀었다. 눈으로 직접 목격한 탄생의 순간은 경이로웠다. 자라나는 과정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면 영영 몰랐을 대지의, 시금치의 비밀이었다.

무성하게 자란 시금치밭엔 시금치 반, 잡초 반이었다. 크게 눈에 거슬리는 것은 손으로 뽑아 버리는데 웬만하면 그냥 놔둔다. 서로 의지하며 자라는 것도 괜찮을 듯해서 게으름을 피우며 합리화한다.

로리는 시금치를 먹으면 만화 속 영웅처럼 힘이 세진다고 믿고 있다. 시금치에 풍부한 철분과 질산염이 근육의 효율을 높여주고 에너지를 낸다는 사실을 아이는 그림바카라을 통해서 알고 있다. 쥐만 한 주먹에 힘을 꽉 주며 알통을 자랑하는 시늉을 할 때면 웃음이 난다. 시금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시금치야, 빨리 자라서 나한테 힘을 줘!" 하고 속삭이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손길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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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입술로 간절한 부탁을 받았으니, 시금치도 허투루 자랄 수 없었을 것이다. 매일 밤낮으로 부지런히 에너지를 모은 초록 잎들이 어느새 식탁 위로 오를 채비를 마쳤다. 고소한 참기름 향을 입고 아이의 입속으로 들어가 든든한 힘이 되어줄 시간이 다가왔다. 시금치를 다 캐어 먹고 나면 그 자리에 또다시 시금치 씨를 뿌리기로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뿌려도 싹이 나오는 시금치를 이젠 잘 알 것 같다.

로리야! 시금치는 안 떨어지게 해 줄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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