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건네는 다정한 안부

어쩌다, 텃밭 1

by혜솔

이틀 동안 비가 내리더니 텃밭은 몰라보게 무성해졌다.

날마다 물조리개를 채워 채소들의 목을 축여주는 일은 10평 남짓한 공간이라 해도 꽤나 고된 노동이다. 수도와의 거리가 멀어 물통을 하나씩 밭 앞에 두고 물을 가득 채워두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길을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날이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물 주기에서 해방되었다는 편안함보다는, 텃밭의 진짜 주인공들이 비로소 자연의 물줄기로 목을 축였다는 안도감 덕분이다.


작년, 처음 텃밭을 시작할 때가 떠오른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흙을 만지던 아이, 로리와 함께 식물을 돌보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 지렁이는 땅을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 숨을 쉬게 해주는 거래. 할머니는 지렁이를 무서워하지?"

풀을 뽑고 벌레를 잡는 수고로움 속에서 아이는 지구와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조잘거리며 함께 자란 채소로 겨울 김장까지 끝냈을 때의 뿌듯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올해 역시 당연하게 이어질 줄 알았던 주말농장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쉬움이 컸다.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새로운 농장을 찾을 수 없어 상심하던 차에, 우연히 지금의 텃밭을 알게 되었다. 기적처럼 딱 한 자리 남아 있던 마지막 분양 칸이 거짓말처럼 품에 안겼다. 운이 좋았다.

작년의 경험을 나침반 삼아 기운차게 시작한 두 번째 텃밭. 흙을 고르고 씨를 뿌린 뒤 모종을 심는 모든 순간이 행복으로 채워졌다.


나는 쌈 채소를 가득 심었다. 수확의 기쁨보다 나누어 먹는 재미가 더 큰 행복임을 지난 일 년 동안 배웠기 때문이다. 아랫집과 옆집, 그리고 로리 외할머니댁 식탁까지 풍성하게 채우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게 심었다.

물통을 채워두어야 하는 수고로움은 여전하지만, 대지를 적신 이틀간의 단비는 밭을 푸른 채소들로 가득 채워놓았다. 싱그러운 생명력 앞에 서니 힘겨움은 눈 녹듯 사라진다. 주섬주섬 몇 잎씩 정성스레 따다 보니 어느새 장바구니가 묵직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싱싱한 초록이 가득 담긴 봉지를 옆집 문고리에 가만히 걸어두었다. 문을 열었을 때 마주할 이웃의 환한 미소가 벌써부터 마음에 번진다. 다정한 초록의 안부로 시작하는 이 계절이 무탈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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