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가 없던 날에 대하여

by라엘리아나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남을 하고 나면 은근히 기다려지는 전화가 있다.

“남성분 어떠셨어요?” 하고 묻는 매니저의 전화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전화대신 상대가 어땠냐는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알았다. 매니저에게 전화가 오는 날은 상대가 애프터 의사를 밝힌 것이고, 문자가 오는 날은 상대가 애프터 의사가 없다는 의미였다. 틀린 날도 한두 번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랬다.


남자들이 애프터 여부는 만남에서 대충 예상되기는 했다. 그런데 대화도 나쁘지 않았고, 분위기도 크게 어색하지 않았는데 안 오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에서 애프터가 오기도 했다.


몇 번 만나보니 사람 마음이라는 게 생각보다 잘 보이지 않았다. 특히, 슬롯생활을 어느 정도 해본 사람들끼리 만나서 그런지 속마음이 크게 티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긴 슬롯생활로 인해 상대방에게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법을 조금씩 잃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얼굴에 티가 꽤 났던 거 같은데 이제는 적당히 웃고, 적당히 맞장구치고, 적당히 예의를 지킨다.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감추는데 능숙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 역시 슬롯생활을 꽤 했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내 마음을 전부 보여주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상대방의 속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내가 사람을 못 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서로가 그렇게 살아온 시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정보회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입한 것이고, 소개까지 받았으니 웬만하면 한두 번은 더 만나보려고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조금 마음에 안 들어도 한 번 더 만나볼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거라서 더 신중한 것 같았다.


오히려 연애라면 그냥 한 번 더 만나보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결혼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생각해야 할 게 많아진다. 성격은 어떤지, 생활방식은 맞는지, 가치관은 비슷한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람과 정말 결혼을 생각할 수 있는지. 그러다 보니 한 번 더 만나는 것조차 가볍게 결정하기 어려운 것 같다.


처음에는 ‘결혼정보회사인데 왜 애프터가 쉽지 않을까?’ 싶었는데,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조금 이해가 됐다. 물론 애프터가 없던 날에는 조금 아쉽긴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내가 별로였나?’ 생각하게 됐다. 집에 돌아와서 그날 했던 말을 하나씩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 말을 괜히 했나?’, ‘조금 더 웃었어야 했나?’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됐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애프터가 없었다고 해서 내가 별로인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과 내가 안 맞았을 뿐이라고.


애프터가 없는 날은 조금 아쉽고, 조금 신경 쓰였지만 다음날이 되면 생각보다 별일 없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한 번 그날의 만남을 복기해 보긴 했다. 나를 한 번 돌아보면 다음번에는 좀 더 나은 만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혼자인 게 미스터리지만, 뭐 언젠가는 만나겠지. 오늘도 스스로에게 희망고문을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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