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육감이라는 게 이런 걸까?
내가 그 말을 가장 크게 실감했던 건 그의 잠수이별 때문이었다. 그의 고질적인 연락 문제로 처음 그와 투닥거렸던 때였다. 주말에는 여행을 가기로 해서 여행 가서 잘 풀리겠지 싶어, 함께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 나한테 연락하지 않을 것 같다.’
너무 기분이 이상해서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는 받지 않았다. 몇 번이고 다시 전화를 걸고 카톡도 보냈지만 연락이 없었다. 그때 알았다. 내 육감이 현실이 됐다는 걸.
아주 잠깐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연애 초반에도 비슷한 일이 한 번 있었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약속을 펑크 냈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그의 말을 믿었는데 또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사람은 역시 쉽게 변하지 않나 보다.
며칠이 지나 카톡의 숫자 1이 사라졌고, 연락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끝내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쯤 시간이 흘렀을 때, 내가 먼저 카톡을 보냈다. 재회를 바라는 내용도 용서하겠다는 내용도 아니었다. 그저 이 관계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이별인데 굳이 마무리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정리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그것마저 무시했다. 그때서야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과 헤어진 게 잘된 건지도 모르겠다.’
잠수이별이라는 최악의 방법으로 관계를 끝낸 것도 모자라, 마지막으로 손을 내민 사람의 연락까지 무시하는 사람이라니. 연인 사이를 떠나서 생각해도 좋은 사람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을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했다니...
나 자신도 반성하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 남자를 만날 때 무엇을 봐야 할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잠수이별을 택한 사람에게 굳이 또 연락을 해서 상처받고 있는 나를 보며 왜 이러나 싶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제대로 마무리를 짓고 싶어서 연락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내가 그에게 진짜 원하던 것은 정리가 아닌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던 거였음을.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
그걸 깨닫고 나서야 나는 그의 잠수이별에 더 이상 이유를 찾지 않게 됐다. 이렇게 기본적인 것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잠수이별의 이유를 찾아서 뭐 하겠는가. 사실 그에게 다시 연락하기 전까지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나 자신을 자바카라했던 시간도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 생각마저 홀가분하게 털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과 이별 후, 내 이상형도 조금 바뀌었다.
의리 있는 사람
의리는 남자들끼리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연인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도 의리는 꽤 중요한 덕목이라는 걸 알게 됐다. 좋을 때만 함께하는 게 아니라 관계가 어려워졌을 때도 상대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 헤어지더라도 최소한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 어쩌다 보니 잠수이별을 겪고 나서 내 이상형이 ‘의리 있는 남자’가 됐다. 조금 이상한 전개인 것 같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