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인데 잘 보여야 해요?

by라엘리아나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면 모든 게 시스템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다. 회비를 내고, 내 조건을 등록하고 원하는 조건과 비슷한 사람을 횟수만큼 소개받는 구조로 말이다. 가입하기 전까지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그 시스템 안에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변수를 생각 못했다는 것을. 그건 바로 매니저였다.


매니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소개에서 만남까지 모두 매니저가 조율해서 성사되기 때문이다. 원하는 조건에 완전히 부합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사람을 소개해 주었고, 조건이 터무니없이 맞지 않는 사람을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슷한 조건의 여러 회원이 있다면 누구를 소개해줄지 정하는 것은 담당 매니저의 몫이다. 회원들은 내가 원하는 조건의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이성 회원들의 목록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 중 누구를 소개받고 싶은지를 직접 선택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2주에 한 번 담당자가 소개해주는 2~3명의 프로필을 기다려야 했다.


내가 가입한 결혼정보회사의 기본 만남 횟수는 5회였고, 보너스 만남 1회가 있었다. 그리고 '미차감 만남'이 있는데 말 그대로 횟수가 차감되지 않는 만남이다. 보통 상대방은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데, 상대방은 나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먼 경우에 해당한다. 나는 횟수 차감이 없고, 상대만 횟수가 차감되기 때문에 내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제안이다. 그래서인지 매니저는 미차감임을 강조하며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 만남은 단순히 커피 한 잔 마시는 자리가 아니다. 상대는 귀한 만남 1회가 차감되며 나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영 아니다 싶은 사람은 바로 거절했다. 문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럴 때 만날지 말지에 대해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매니저였다. '이번엔 거절했지만 다음에는 더 좋은 소개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괜히 계속 거절하면 소개가 줄어드는 건 아닐까.' '미차감도 앞으로는 안 주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회사에서 그런 기준을 정해놓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횟수 차감을 빨리 시키는 게 목적이라 미차감 만남을 많이 응하는 회원이 고마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정말 영 아닌 경우가 아니라면 만나보는 경우들이 생겼다. 반대로 무조건 매니저 말만 따르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자칫하다간 매니저의 실적을 채워주는 '만남 차감 봇'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니저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단칼로 다 쳐내지 않는, 적당한 조절이 필요하다.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면 소개받은 사람을 만날지 말지만 결정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입해 보니 소개 상대만큼이나 신경 써야 하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담당 매니저였다. 매니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소개도 조금 더 부드럽게 이어지고, 미차감 만남도 조금 더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소개 상대만 신경 써도 모자랄 판에 매니저와의 관계까지 신경 써야 한다니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것 또한 결혼정보회사의 현실이었다.

이전 03화나의 조건이 문장으로 정리되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