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건이 문장으로 정리되던 순간

by라엘리아나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하기 위한 본격적인 절차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신원 확인을 위한 서류 제출이었다.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졸업증명서 등은 결정사에서 알아서 발급했고 재직증명서와 소득증빙자료는 내가 직접 준비해야 했다. 평소 같으면 아무 감정 없이 떼었을 서류들인데, 그날은 기분이 조금 묘했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현재의 조건이 종이 몇 장으로 정리되어 평가받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진짜 난관은 서류가 아니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데이터폼' 작성이었다. 열어보니 말 그대로 나를 하나의 데이터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직업과 학력, 키와 체형은 물론이고, 주택 형태와 자가 여부까지 입력했다. 부모님의 직업과 나이, 형제자매 정보도 빠짐없이 적어 내려갔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사실을 적으면 그만이었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를 표현하는 단어 5개를 선택하세요.'

화면에는 '유머 있다', '세련됐다', '다정하다', '활발하다' 같은 형용사들이 빼곡했다. 나는 그 수많은 단어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한 사람을 다섯 단어로 설명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게다가 상대에게 바라는 성격도 똑같이 다섯 개만 골라야 했다. 이상형은 훨씬 입체적인데, 체크박스는 너무 평면적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끝에 체크를 마쳤더니,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소개와 희망 상대를 직접 쓰는 주관식 칸이었다.


나는 온라인카지노에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이 정도야 금방 쓰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오만이었다. 너무 길면 읽기 싫을 것 같고, 너무 짧으면 성의 없어 보일 것 같아서 어느 정도의 길이로 써야 할지부터 고민이 됐다. 게다가 자기소개는 은근히 나를 어필해야 했고, 희망 상대는 솔직하면서도 너무 까다로운 사람처럼 보이면 안 됐다. 한 줄 한 줄 적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희망 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을수록 매칭 대상이 줄어든다는 사실도 신경이 쓰였다.


'이렇게 쓰면 너무 까다로워 보일까?'

'조금 더 열려 있는 사람처럼 써야 하나?'

모니터 앞에서 문장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던 순간, 먼저 가입했던 친구에게 SOS를 보냈다. 친구는 내 고민을 듣더니 웃으며 말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처럼 잘 써도 사진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끝이야."

하하하, 맞다. 이곳은 온라인카지노가 아니다. 결정사는 문장으로 승부하는 곳이 아니라, 첫인상으로 문이 열리는 곳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미사여구를 덜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담백하게 적었다. 그렇게 데이터폼을 완성했다.


마지막 관문은 가장 중요하다고 했던 프로필 사진이었다. 잘 나온 사진이어야 했지만, 너무 과하게 보정하면 안 됐다. 그렇다고 실물보다 못 나온 사진을 올릴 수도 없었다. 매니저는 사진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스튜디오 촬영을 권했다. 여자는 외모를, 남자는 경제력을 조금 더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행히 나는 친구와 함께 찍어둔 프로필 사진이 있어서 그 사진을 제출했다. 드디어 내 삶의 이력과 조건, 그리고 외모가 하나의 프로필로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그때만 해도 기대 반, 설렘 반이었다.

프로필 한 장 완성했을 뿐인데 이미 결혼에 한 걸음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프로필이 내 인생에 어떤 파도를 몰고 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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