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대 씨는 배운 대로 했을 뿐이다.
인명과 지명, 상호는 모두 가상의 이름입니다. 매 회차 첫 번째 이야기는 제가 여러 온라인 게임에서 겪은 실화이며, 두 번째 이야기는 빌런의 사연을 지어낸 픽션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독자님의 사연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채팅으로 고객 상담하는 것과 전화로 고객 상담하는 것. 둘 중 뭐가 더 고될지 종종 고객응대일하는 사람들끼리 의견을 나누곤 한다. 사실 고객의 무례함이 함께라면 어느 쪽이든 감정이 쑥대밭으로 바뀌는 공통점이 있지만, 전화 상담과 달리 채팅상담은 무례함이 휘발되지 않고 계속 눈앞에 아른아른거린다는 점에서 상당히 찝찝하고 수위에 따라 역하기도 하다. 물류창고에서 일할 무렵, 채팅으로 고객을 한참 응대하고 있다가 흐름이 끊겼다.
뭔가 하다 만 느낌을 싫어하는 나는 점심시간 전에 하던 응대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랜선 너머 고객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입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결국 고객은 대화하다 말고 몇 분째 말이 없었고 나는 그대로 식사를 하러 갔다. 오전에 어떤 고객을 응대했네, 그 사람이 이랬네 저랬네 얘기도 한참 나누고 어제 본 예능 얘기도 하면서 점심시간을 보냈다.
매일매일 찾아오는 점심시간은 왜 그리 빨리 가는지. 그래도 그 한 시간이나마 알차게 보내고 싶어서 카페도 가고, 커피를 손에 든 채 수다도 떨며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보냈다. 야무지게 양치까지 하고 나서 다시 업무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아까 그 고객은 언제 답변을 보내주려나 생각하며 진행 중이던 채팅창을 다시 열었다가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고객은 내가 점심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보내고 있는 사이 그제야 용무가 끝났는지 내가 한참 수다를 떨고 있을 시간에 이것저것 질문을 써둔 상태였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타이밍에 한참 동안 답변을 못 받아서 기분이 언짢았던 것일까. 마지막엔 한 마디를 덧붙여놓았다.
- 저기요. 벙어리세요?
화가 나서였을까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렇게 무식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심지어 '벙어리'라는 표현 자체도 옳지 않다고 해서 요새는 '벙어리장갑'의 명칭을 '손 모아 장갑'으로 바꿔 부르자고 하는 추세가 아닌가. 저 단어가 들어갈 자리엔 온갖 비하적인 표현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라 처세술도 부족해서였을지 한 번 꿈틀도 못해보고 죄송하다고 하며 답변을 이어갔던 게 지금 생각해도 못내 아쉽다. 무식한 사람 같으니. 만약 진짜로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채팅상담일을 하는 거면 대체 그 말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한 걸까?
함성대 씨는 오늘도 한 사람의 기분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출근하는 순간부터 오로지 한 명만 바라보고 한 명의 목소리에만 귀를 쫑긋하고 있었다. 대리님 대리님 하며 자신을 부르고 뭔가 물어보는 다른 직원들의 목소리는 그저 소음일 뿐이다. 그들이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 아무리 기분 좋게 유지되고 있어도 한 순간에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사장의 언행에 촉이 곤두세워지는 것이었다. 오전은 조용히 지나가려나 생각하던 찰나였다.
"야!! 다 들어와!!!"
여기에서 '다'는 전 직원이 아니었다. 자신을 포함해서 4 총사가 있었다. 사장은 관리자 라인들에게만 폭언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쪼르르 사장실로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폭언이 이어지며, 한 번에 답변하기도 어려운 것들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정답이 있긴 한 건지 알 수 없는 난해한 질문들. 겨우 더듬더듬 뭔가 대답하면 불호령이 떨어지고,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가만히 있으면 여지없이 "야, 벙어리냐? 벙어리야?"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물류 문제 때문에 관련 업체를 속된 말로 쪼아야 하는 상황이 왔다. 사장의 요구사항을 업체에 전달해야 했기에 대화를 이어가던 중 또다시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 함성대!!" 또 뭘 잘못한 걸까. 아니 잘못한 게 없을지도 모른다. 그딴 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그의 목소리는 매번 성대 씨를 스프링 튀어 오르듯 벌떡 일어서서 빠릿빠릿 움직이게 만들었다. 점심시간이 거의 다 돼 갈 때까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듣고 나와서 상담을 이어가려고 하니 밥이라도 먹으러 간 건지 답변이 없었다. 안 좋은 건 금방 배우게 되는 법인가, 성대 씨는 배알이 꼴리는 느낌이 들며 괜스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상담사에게 화가 치밀었다. 누군 밥 먹을 줄 몰라서 이러고 있는 줄 아나. 누군 점심시간에 이렇게 채팅창만 쳐다보며 업무 하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아나. 상담 마무리는 해놓고 밥을 먹으러 가야지. 하며 부정적인 감정이 꼬리를 물던 중 대답 없는 채팅창에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써버렸다.
- 저기요?
- 저기요 벙어리세요?
쓰고 나니 속이 시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나쁘지만도 않고 기이한 기분이었다. 대체 이놈의 물류회사에선 언제 답변이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