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혜 씨는 세상 물정을 몰랐다
인명과 지명, 상호는 모두 가상의 이름입니다. 매 회차 첫 번째 이야기는 제가 여러 온라인 게임에서 겪은 실화이며, 두 번째 이야기는 빌런의 사연을 지어낸 픽션입니다.
살다 보면, 아니 살다 보면이라는 표현보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이 일을 하면서 느끼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돈을 벌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자조였다. 특정 마켓의 경우 혜택으로 ㅇㅇ마켓에서 구매 후 반품 시 무료 반품이 가능하다며 고객을 끌어모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품목에 따라 천차만별의 반품비가 바카라정되어 있다. 그게 수십, 수백만 원을 넘나들지는 않지만 적게는 몇 천 원에서 많게는 몇 만 원까지 바카라정되어 있다. 내가 일하는 회사 품목도 그렇다. 많은 경우 4만 원까지 바카라정되어 있는 반품비. 하지만 그것에 대해 나는 의구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배송비도 마찬가지다. 무료배송이 되는 곳이 있으면 좋지만, 내게 마침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그 물건 구매 시 배송비가 붙는다면, 그것은 지불해야 할 비용이었지 흥정을 시도하는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일부 고객들은 달랐다. 깎아주거나, 안 받고 싶다는 속내를 꽤나 시원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고객들의 개인정보 일부가 보이는 우리 입장에선 꽤나 좋은 집에 거주하시면서도 3,000원 배송비 또는 몇 만 원 반품비에 절절매는 상황이 아이러니해 보이면서도, '아 이렇게 아껴야 돈을 버는 건가..!' 하는 웃지 못할 교훈을 얻게 되기도 했다.
다른 고객의 주문 건을 입력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감사합니다. 클린짱입니다." 라고 늘 하던 인사를 하며 예의 있게 대했으나 돌아오는 여성의 목소리는 비아냥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 알겠고요. 제 전화번호 뜨죠? 검색해 보세요. 제가 어이가 없어서 전화했어요."
다른 상담사에게 불친절한 응대를 경험하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수리 맡긴 제품을 기껏 받았는데 똑같은 증상이 다시 나타난 걸까. 예측할 수 없는 상태로 연락처를 검색했다. 반품 접수를 한 고객이었다. 부품 하나와 제품 하나를 구매한 고객. 부품과 제품이 각각 배송된 탓에 배송비도 각각 바카라정되었다. 반품접수 이력 외에 특이사항이 메모되어있지는 않았던 지라, 반품비 에누리를 원하는 고객이라는 직감을 갖고 통화를 이어갔다. 고객의 태도는 시종일관 불량했다. 오래간만에 순수한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왜 나만 친절해야 하지?'
하지만 그 생각을 오래 붙들 여유는 없었다. 그저 빨리 이 고객과의 전화를 종료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화는 지루한 패턴을 이어가고 있었다.
반품비를 납부해주셔야 한다 > 못하겠다. 납득 못한다. > 상세페이지에도 기재되어 있는 비용이다 > 알 바 아니다. 다는 못 내니 깎아줘라 > 저희 권한이 아니다. > 그럼 나는 못한다 > 납부해주셔야 한다 > 나는 납득 못한다.
대체 다 큰 성인에게 당신이 구매한 물품에 대한 반품비를 납부해야 한다는 걸 내가 어디부터 가르쳐서 납득시킨단 말인가. 급기야 그 고객은 말했다.
"소보원에 신고할 거예요. 아니면 제가 그냥 카드회사에 이 돈 환불해 달라고 요청할 거예요. 반품비 안 낸 상태로 전액 환불해 달라고 할 거예요."
"고객님, 소보원에 신고하시는 건 자유롭게 하셔도 되지만.."
"네, 그러니까 신고할 거라고요."
네 마음대로 하라는 말이 속에서 치밀었다. 그럼에도,
"고객님 이걸 납부해 주시면 고객님도 환불처리받으시고 소모적인 대화를 더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협조해 주실 수 없으실까요.."라고 말했고, 돌아오는 답은 그럴 생각 당연히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더니 "저 지금 애 픽업 갔다가 마트도 가야 하는데 이 귀한 시간에 계속 이 통화를 해야겠어요?"라고 내뱉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소보원 발언을 반복했다. 반복에는 반복으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난 그녀에게 마치 보험광고 마지막에 쏟아내듯 들려주는 멘트처럼 빠르게 반품비에 대해 다시 한번 고지하고 상담 종료하겠다는 말을 했고 그녀는 아무 대꾸 없이 전화를 끊었다.
어떤 엄마일까. 그저 집에선 알뜰하고 생활력 있는 엄마이자 아내인 걸까.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민혜 씨를 볼 때면 남편은 늘 말했다. 어디 내놓기 불안하다고, 어쩜 세상 돌아가는 걸 그렇게 모르냐고. 그러다 보니 남편은 늘 그녀 대신 이것저것 척척 해주었다. 그녀는 그저 아이 교육과 집안일에만 신경 쓰면 되는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보란 듯이 부정하고 싶었다. 그가 청소기를 조만간 바꿔야겠다고 지나가듯 했던 말을 기억했다. 기계에 대해서도 잘 아는 남편인지라 직접 알아보면 어련히 가성비 좋은 제품을 샀을 테지만 자신이 직접 골라서 좋은 제품을 남편 앞에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었다. 유튜브도 조금 검색해 보고 AI에게도 물어보면서 검색하다 '클린짱' 제품이 눈에 들어왔다. 후기 몇 개를 슥슥 보고 '이거다' 싶었던 그녀는 구매하기 버튼을 눌렀다. 며칠 뒤 물건을 받았을 때 그녀는 당황했다. 청소기를 놓으려고 했던 자리는 터무니없이 좁았고, 제품을 억지로 놓으려면 가구들을 조금씩 옮겨야 했다. 그러면 어딘가 위화감이 들 것 같았다. 성능은 확인해 볼 것도 없이 반품을 결심했다. 겨우겨우 사이트에서 반품을 접수했고 다음날 물건은 수거해 갔는데 문자 안내가 왔다. 반품비가 4만 원이 넘는다는 게 아닌가. 민혜 씨는 지금까지 무료반품 무료배송으로 유명했던 사이트만 이용해 오다가 처음으로 다른 마켓에서 구매를 한 것이었다. 다른 뜻은 없었다. 그저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사이트를 선택했다. 원래 이용하던 사이트에서 샀더라면 무료반품이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속이 쓰렸다.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따져 묻기로 했다. A사이트에선 무료반품이고 B사이트에선 유료반품인 건 고객을 혼란에 빠뜨리는 방식이라고 어필하고 싶었다.
건방지게도 상담사는 상세페이지를 운운하며 이미 기재가 되어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걸 다 읽어야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길고 긴 상세페이지를 읽는 게 내 의무이기라도 하다는 건가. 자신이 큰 맘먹고 바카라정된 반품비의 일부라도 내겠다고 했는데 부득부득 본래 청구한 반품비를 그대로 납부해야 환불을 받을 수 있다니 강도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었다.
가뜩이나 "그러게 그냥 두지 왜 시키지도 않았는데 청소기를 샀어."라는 남편의 구박에 화딱지가 나는데, 장사꾼들이 반품비로 배 불리려고 이렇게 짜증을 돋우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민혜 씨는 똑 부러진 해답을 떠올렸다. 소보원. 소비자의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으니까. 그래도 전화 너머의 상담사는 꿈쩍도 않고 제 할 말만 했다. 카드회사는 대기업이니까 고객의 사정을 더 잘 들어주리라. 더 이상 중소기업 직원과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던 민혜 씨는 마치 자신을 포기하듯 "상담 종료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불쾌한 전화를 대꾸도 없이 끊고, 아이들을 픽업하러 갈 준비를 했다. 고객 무서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