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차 상식적인 게 좋지 않겠어요?

진경주 씨는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by오싹
인명과 지명, 상호는 모두 가상의 이름입니다. 매 회차 첫 번째 이야기는 제가 여러 온라인 게임에서 겪은 실화이며, 두 번째 이야기는 빌런의 사연을 지어낸 픽션입니다.


피차 상식적인 게 좋지 않겠어요?

상식이라는 단어, 좋아한다. 그것이 있는 사람의 좋은 점 보다 없는 사람의 피곤한 점을 더 많이 느껴봤기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세상의 모든 사소한 것들이 누군가의 노력으로 세팅되어 고마운 줄 모르고 잔잔하고 당연스레 순간순간을 영위하게 되듯, 상식을 가진 사람들도 관계를 그렇게 무탈하게 흘러가도록 돕는다. 적정선의 상식을 지니고 있으면 특정 분야에서의 지적인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럼 그 지식을 모르고 있던 사람에게는 생각의 폭을 확장하게 해 주겠지. 그뿐인가, 여러 과목에 대한 상식에 국한된 게 아니라, 태도에도 상식의 선이 존재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서 가지고 있어야 할 태도에 대한 상식이 있다면 자신이 아는 걸 상대가 모르더라도 무안을 느끼지 않도록 포용하며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레 진행되면 '상식적인 대우'라는 배려를 받은 사람은 그게 배려인지도 모른 채 기분 좋은 여운만을 가지고 그날의 대화를 회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구성원 중 누구 하나라도 어떤 분야에서든 상식 이하라면 긍정의 상황이 그저 스르륵 평온하게 지나가는 것과 달리 족족 가시 걸린 것처럼 불편감을 줄 것이다.


주제를 꺼내봤자 듣는 태도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면 지루해하고 본인이 늘 하던 소재로만 대화하고 싶어 할 것이고, 오히려 여러 사람이 자신과의 대화를 마뜩잖게 여기는 것에 대해 비난할 수도 있다. 반대로 주제를 꺼내는 사람이 배려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다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하대하고, 계몽적인 태도에 빠져서 다수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상식적인 사람을 좋아하고,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어서 고군분투하곤 한다.


여러 실패를 거듭하며, 나의 상식선에서 평온할 수 있는 사람들하고만 소통하고 살면 삐걱대다가도 서로 맞추어가며 즐거울 수 있겠지만 돈을 벌어야만 하는 이상, 소통과정이 늘 계산대로 되거나 평온할 수만은 없다. CCTV에 담긴 비상식적 인간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오는 '히든아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온갖 자영업자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말 그대로 못 배우고 무식한 인간들이 나온다.


눈앞에 사람이 없을 때에는 그 공간과 연관된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의식하며 행동하는 게 상식이다. 그게 지켜지지 않는 대표적인 예가 무인상점, 또는 인터넷 댓글창이라고 생각한다. 지켜보고 비용을 결제해 주는 사장님이나 직원이 자리에 없더라도 '슬롯적 약속'으로 묶여 개개인의 양심을 믿고 운영하는 무인상점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거나(이게 귀여운 수준이라니) 내부 구조물을 파손하며 엉망으로 만드는 괴물 같은 사람들. 또는 각종 댓글창에서 상대의 유명세와 상관없이 제 앞에 놓인 키보드가 권력이 된 듯 가르치려 들고, 조롱하고 비아냥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다.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나마 사람인 척이라도 하던 인간들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를 말이다. 길에 경찰이나 CCTV가 없더라도, 법조항을 외고 있지 않더라도, 이걸 나중에 치우거나 밟을 사람이 겪을 곤혹스러움을 생각하면 바닥에 가래침이나 껌을 뱉지 않아야 하는 게 상식이다. 상식이라는 단어는 최소한 '나만 위한 것' 또는 '나만 아는 것'이 아니다. 흔히 쓰이는 가치관의 단어일수록 사람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자유' '상식' '사랑' 등등 제각각의 해석으로 얼룩덜룩해지는 낱말이 참 다양도 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8시간의 근무시간 내내 글로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응대해야 하고, 그중 6시간은 전화도 함께 응대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만의 기준을 상식인 것처럼 들이대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앞서 말한 무례함과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내 앞에 사람이 뻔히 서 있고, 다른 사람들이 목격하고 있고, 그걸 담고 있는 감시 카메라가 있더라도 내 기분이 긁히면 즉시 폭력성을 드러내는 유형,

보는 이가 당장 눈앞에 없고 목격자라고는 카메라뿐일 때 안하무인인 본성을 드러내는 유형,

상대방이 그저 랜선을 타고 모니터 너머에 있을 뿐 실체에 대해 깊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며 바카라임 없는 손가락질을 하는 유형


앞에서는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를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봤는데, 내 업무 중 채팅창으로 하는 응대는 세 번째 유형이 가장 가깝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경우는 슬픈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상대에게 급을 나누어 대한다는 것이다.


실제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앞에 무엇이 있든 상관없이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사람은 저기에 포함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리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막 대해도 된다'라고 판단하는 사람에게 상식 이하의 무례함을 범할 뿐 장소 등의 조건이 조금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6시간 동안 빼곡하게 들어오진 않지만, 많게는 인당 30 콜, 적게는 인당 10 콜대로 들어오는 나의 온라인 게임에서는 전화로 마주하는 기인이 많다. 본인의 비상식을 '자신만의 상식'으로 포장해서는, 역시나 우리를 '이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점찍어두고 무시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전화는 힘이 막강해서 대여섯 콜 친절한 분들과 통화를 해서 다져둔 휴머니즘을 단번에 무너뜨리고 인간에 대한 혐오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게 만든다. 흥미로운 건 그 안에서 한 번 더 급을 나누어서는 1차 통화한 직원에게 온갖 화를 퍼부으며 감정을 조금 식히고는, 전채요리를 접시채로 삭삭 긁어먹고 다음 코스를 기다리며 냅킨으로 입가를 닦는 사람 마냥 '당신의 상급자를 바꿔줘라'라는 요구를 고급지게도 한다는 것이다.


뭐,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언급했듯 아무렇지 않게 사장을 바꾸라는 경우도 있었으니 '당신의 상급자' 정도는 충분히 상식적인 요구사항이고 권리라고 느꼈으리라. 하지만 우리 입장에선 '자신에게만 예외적인 조치를 해주길 바라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미 내가 입사하기 전 세워져 있었고, 우리를 보호해주지는 못하는 정바카라 위에서 위태롭게 내뱉는 안내멘트를 무시하면서 말이다.


그럼 한두 단계 상급자로서 내가 전화를 다시 걸면 그 사이 약간은 매너 있는 사람으로 변하여 요구를 관철시킨다. 그 후부턴 전화를 걸자마자 'ㅇㅇㅇ팀장님 바꿔주세요. 그분과 통화할게요.' 'ㅇㅇㅇ님 통화 가능한가요?' 라며 내게 개별관리 받는 고객인 마냥 행동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진짜 상식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로 푼돈과 관련하여 상식을 운운한다.


"상식적으로 제가 반품비를 왜 내야 해요? 이 물건을 쓰지 않을 자유가 있잖아요?"

"사용하다 파손됐는데 왜 제가 부품을 사야 하죠? 2년 가까이 쓰면서 제가 얼마나 조심히 다뤘는데요. 상식적으로 이 정도면 제품 문제 아닙니까?"

"반품비까진 그렇다 칩시다. 제품의 사용감에 대해서 제가 왜 부품비를 지불해야 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네요? 멀쩡한 제품인지 알려면 청소를 해봐야 하지 않나요?"

"AS를 맡기는데 제가 왜 먼지통을 비워야 하죠? 청소는 고객센터에서 해주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요?"

"그쪽이 나랑 통화하면서, 내 물건이 정상이라고 안내했던 거 인정합니다. 그래도 고객입장에서는 검수를 받아보고 싶어서 맡겼는데 검수 해봐도 정상이니 배송비를 내야 한다고요? 그게 고객을 대하는 그 회사의 상식 기준인가요? 서비스 마인드가 형편없네요."

각기 다른 사람인데도 '상식'을 운운하며 우리의 속을 뒤집는 고객들은 대체로 조근조근하게 '논리적인 톤'을 장착하고 속을 회까닥 뒤집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열하다 보니 점점 모르겠다. 상식이란 대관절 무엇일까?




진경주 씨는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경주 씨는 메모광이다. 아주 사소한 감정의 변화도, 소소한 하루의 일과도 지출 및 수입도 빼곡히 적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남들이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할 때 '가꾸' 즉 가계부 꾸미기를 한다. '이건 안돼!' '참아!' '굿' '현명해' 등등 지출에 대해 평가하는 스티커부터 여러 표정의 스티커를 친구들이 경주 씨에게 주곤 한다.


"너 가계부 꾸밀 때 쓰라고 샀어. 딱 보자마자 네 생각나더라-"

그럼 경주 씨는 고맙게 받으면서도 한 마디 던진다.

"야! 그렇다고 이걸 돈 주고 샀어? 못 산다. 정말!"


이런 그녀이다 보니 물건을 하나 살 때도 극한의 효율을 따지며 한참을 비교한다. 얼마 전 라이브 방송에서 호스트들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청소기가 있기에 핸드폰으로는 라이브를 시청하고 컴퓨터로는 비슷한 가격대의 청소기들을 비교하며 한참을 고민했다. 라이브 방송은 1시간 동안만 진행되었다. 살 거면 그 안에 선택해야 한다.


A회사는 자동 먼지비움은 되는데 구성품이 너무 적고, B회사는 광고는 여기저기 나왔지만 그에 비해 후기에서는 내구성이 좋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지금 라이브에 나오는 클린짱 업체 청소기는 먼지비움도 되고 구성품도 알차보였다. 가격은 회사들 모두 큰 차이는 없었기에 라이브에서 얼마나 많은 테스트를 해주는지가 중요했다. 까짓 거 벽에 팍팍 부딪히는 것도 보여주고 좀 더 격하게 여러 테스트를 해주길 바랐지만, 가성비 모델로 구매해서 지금 쓰고 있는 가벼운 청소기보다는 기능도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러 조건도 듣고, 채팅으로 궁금한 점도 물어보다가 라이브 방송 종료를 10분 정도 남기고 청소기를 구매했다.


기다리던 청소기가 이틀 뒤 도착했다. 생각보다 훨씬 커다란 청소기였다. 그래도 먼지비움이 되니까 편리하긴 하겠지 생각하며 청소기를 조립 후 돌려보았다. 당황스러웠다. 이전에 쓰던 것과 비교했을 때 너무 무거운 것이 아닌가. 호스트들은 다 근육질이기라도 한 건가 이걸 어떻게 그렇게 가뿐하게 들고 사용했을까.


그녀는 설명서를 보며 고객센터 번호를 바로 찾았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반품의사를 밝혔다. 사유를 묻는 상담사의 질문에 무게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무게는 상세페이지에 기재가 되어있는 정보이기 때문에, 변심으로 분류가 된다는 것이 아닌가. 아주 잘들 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심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거슬렸다. 신중하지 않게 손바닥 뒤집듯 의견을 바꾸었다는 느낌이었다. 고객에게 아무렇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막상 직접 들으니 상상보다 훨씬 더 안 좋은 기분이었다. 심지어 반품비를 내라니. 제품이 무게가 나가다 보니 반품비는 또 왜 그리 비싸단 말인가.


"저기요. 새 물건 써보지도 않고 들자마자 고객이 팔이 아파서 못 쓰겠다는데 반품비 안내가 그렇게 급하세요? 그리고 벼언심??"

경주 씨는 불만을 조목조목 빠짐없이 말했다. 들어봐야 뻔한 변명을 상담사가 늘어놓자 그녀는 틈을 주지 않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켰다. 고객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되찾고 싶었다. 반품비를 오롯이 그들의 요구대로 주는 건, 자신의 자존심과, 신중한 소비를 하기 위해 한 시간가량 진행된 고민, 그간 후회 없는 소비를 하려고 강박적으로 노력해 온 자신의 삶을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결국 상담사는 편도 배송비라도 부탁드린다며 꼬리를 내렸다. 해주려면 해줄 수 있는 것을 안 해주려 버텼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변심이라는 표현에 대한 사과를 받지 못한 게 내심 아까웠지만, 그래도 반품비를 절반 깎은 건 자신의 감정과 노력한 시간에 대한 소소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욕 한 마디 없이 이렇게 원하는 바를 얻고, 제품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깔끔히 포장해서 보내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스스로가 기특했다. 경주 씨는 믿었다. 전화받은 직원도 깔끔하게 보낸 제품 상태를 확인한다면 그래도 선은 지키는 사람으로 자신을 판단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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