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연재를 시작할 무렵 생각했다. 이것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나의 마음에 위안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한 편 한 편 쓰면서 인정해야 했다. 상대가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한, 마음이 괜찮아지지는 않더라.
물론, 이 글의 주인공인 고객들이 제대로 사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 않거나,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어놓고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사과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다 큰 성인이 상대의 감정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나서 갑자기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어색한 일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이 글을 쓰고 싶었다. 어느 순간엔 도통 위안이 되지 않아서 몇 주를 손 놓고 있기도 했고, 공허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마무리하고 싶었다. 끝끝내 인간을 혐오하며 내 안에 욕설과 악다구니만 남기며 끝내고 싶진 않았다. 힘겹게 적어 내려 가고, 억지스럽더라도 '진짜 이런 사연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며 글을 발행했다. 분명한 것은 사람에게 받는 상처 또한 사람에게 치유받는다는 것이다. 만약 인간 혐오만을 품고 '사람은 다 똑같아.' '사람은 바뀌지 않아.'등의 생각을 하며 당연히 타인에게 환멸을 느꼈다면 우연히 스치며 나를 위로해 줄 사람들에게도 선입견을 가지지 않았겠는가.
나는 이 일을 다른 사람의 욕받이 하기 위한, 쓰레기통 감정인게 당연한 업무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정보로 도움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일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업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몇몇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사람을 대할 때 내가 받고 싶은 태도로 상대를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 관계에서든, 슬롯적으로 약한 어떤 존재를 대할 때든 비슷한 생각을 한다. '나와 스친 당신(너)만이라도'라는 생각.
상대가 선을 지켜주기만 한다면 난 그 마음가짐이 유지되는 편이다.
6월 어느 날 나의 그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고객의 반응은 지금도 기운이 나게 해주는 내용이었다. 대기업 제품도 써보고 여러 고객센터 이용해 봤지만, 최고였다고, 친절하게 꼼꼼하게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통화가 끝날 무렵 말씀해 주셨고 그때 약간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 지키려고 마음 쓰고 있는 부분에 대해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이렇듯 보람 있고 기쁜 일이니까.
아마 인간에 대해 기대가 없었다면 그 말조차도 무미건조하게 들렸으리라. 그러지 않아서, 그 말을 귀담아듣고, 마음에 담아둘 수 있어서 다행이다. 숨이 시원하게 트이진 않았지만, 틀어막히지 않도록 약간의 숨구멍을 뚫기 위해 이 글을 쓰고, 마무리 지어서 다행이다. 숨구멍이 비록 작고 좁았을지라도, 내 마음에 창호지를 덕지덕지 발라놓지 않고 거기에 자잘한 구멍 몇 개 정도 내두어서 공기가 통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내주신 분들에게도 고마움을 가득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