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같은 상처를 가진 우리가 서로에게서 본 것

by쭈쓰빵빵

장사를 해도 자기 손님은 따로 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내놓아도 모든 사람이 내 손님이 되는 것은 아니고, 별다른 설명 없이도 자꾸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마음까지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 이상하리만큼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들을 것 같은 사람.

회사에 나와 참 잘 통하는 후배가 한 명 있다.
우연히 MBTI도 같다. 둘 다 INFJ다.


MBTI가 사람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겠지만, 생각이 많고 사람의 마음에 예민하며 상처를 쉽게 흘려보내지 못하는 점이 꽤 닮았다.

무엇보다 우리는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받은 상처.
사랑하면서도 미웠고, 미워하면서도 완전히 놓을 수 없었던 마음.

그래서인지 그 친구와 이야기하다 보면 평소 회사에서는 꺼내지 않던 이야기까지 술술 나오곤 한다.

누구에게 상처받았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차마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던 것들까지.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 혼자 걱정한다.
'아, 내가 또 너무 많이 떠들었나?'
세상에 완벽한 비밀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그 친구 앞에서는 자꾸 마음이 열린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닿지 않는 마음이 어떤 사람에게는 몇 마디만으로 전해지니까.

어쩌면 사람에게도 자기 손님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얼마 전, 그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 그 친구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린다. 자기 일이 아니어도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먼저 나선다.
그러니 찾는 사람도 많고, 일을 잘한다는 인정도 받는다.

물론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는다.
오해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힘들다고 털어놓다가도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또 손을 내민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했다.

나와 비슷하게 상처에 예민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못했다.

회사에서도 굳이 앞에 나서거나 일을 만드는 편이 아니다.

주어진 일을 하고 필요한 만큼만 사람들과 어울린다.
상처받을 일이 생기면 맞서기보다 한발 물러서는 쪽을 택할 때가 많다.


게다가 그 친구만 할 때의 나는 지금의 그녀와는 영 딴판이었다.
슬롯생활을 야무지게 한 것도 아니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산 것도 아니다.
맨 정신으로 미래를 고민하기보다 술을 퍼마시며 신세 한탄을 하느라 바빴다.

그러니 그 후배를 볼 때마다 감탄할 수밖에.
'나는 저 나이에 저렇게 못했는데.'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도 저렇게 다르게 살아갈 수 있구나.

상처받으면서도 자기 몫을 해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나를 전혀 다르게 보고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성향에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이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

'나도 저렇게 멋있게 나이 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친구의 지금을 보고 있었고, 그 친구는 내가 지나온 시간 끝에 서 있는 지금의 나를 보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친구의 능력과 적극성을 부러워했고, 그 친구는 내게서 적당히 힘을 빼고 살아가는 여유를 보았다.


그런데 그 친구가 본 나의 모습은 사실 내가 상처를 덜 받기 위해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다.


사람들에게 덜 상처받고 싶어서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웠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수없이 아파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평가가 곧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흔들리는 모습만 보겠지만, 내가 보는 그 친구는 상처받고도 다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다.


그건 내가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이다.


우리는 닮았지만 상처를 대하는 방식은 달랐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한발 물러섰고, 그 친구는 상처받으면서도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 쪽이 더 잘 살아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오며 서로 다른 것을 배웠을 뿐이다.


그날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작 서로에게서 발견한 것은 상처가 아니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서 다시 사람에게 다가가는 용기를 보았고, 그 친구는 내게서 나를 지키며 살아가는 단단함을 보았다.


나는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자주 흔들리는 사람인지 잘 안다. 그 친구도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서로의 눈에는 그 부족함보다 잘 살아내고 있는 모습이 먼저 보였다.


남의 삶에서는 지금의 모습을 보지만, 내 삶에서는 그 자리에 오기까지의 서툼과 실패를 모두 기억하기 때문일까.


어쩌면 우리는 자신을 너무 잘 안다는 이유로,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나는 그 친구의 눈을 빌려 내가 살아온 시간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