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명을 지나, 나에게

좋아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로 사는 일

by쭈쓰빵빵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 두려웠다.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백 명이라고 해보자.

아흔아홉 명이 좋았다고 해도
단 한 명이 나를 비난하면
나는 아마 그 한 명의 말만 들고 집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아흔아홉 개의 좋은 말은 흐릿해지고
딱 하나의 찌푸린 얼굴만 또렷하게 남으면서.

'역시 나는 나서면 안 돼.'

그러고는 다시 굴속으로 숨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꽤 잘 안다.

칭찬 열 마디보다 비난 한마디가 오래 남고,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보다
나를 싫어한다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이유를 묻는 사람.

그러니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나 같은 사람에게 꽤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조금 덜 아플 수 있다면?

나 때문에 자기 삶을 한 번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면?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던 사람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조금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다면?

그 한 사람 때문에라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일이
어쩌면 나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산법을 바꿨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쉰 명이고
싫어하는 사람이 쉰 명이라면,

싫어하는 쉰 명을 보지 말고
좋아해 주는 쉰 명을 보며 가자.

내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을 보고 가자.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용기가 났다.

그런데 어젯밤, 술을 한잔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왜 나는 자꾸 반쪽만 데리고 가려고 하지?

나를 좋아하는 쉰 명만 내 사람이고
나를 싫어하는 쉰 명은 왜 없는 사람처럼 해야 하지?

어차피 나를 좋아할 사람은
내가 조금 실수해도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미워할 사람은
내가 아무리 진심을 다하고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나를 미워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은
내가 노력한 만큼 정확히 돌아오는 계산기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그냥 백 명을 다 두면 어떨까.

쉰 명은 내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나머지 쉰 명은 나를 욕한다.

"쟤는 왜 저래?"

"나는 쟤 별로야."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그날 그 사람에게는
누군가를 미워할 일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잔뜩 쌓인 화를 꺼내놓을 대상이 필요했을 수도 있고,
친구와 내 욕을 한바탕 하면서
조금 속이 풀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도 내 쓰임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화를 꺼내놓을 대상이 되고.

물론 누군가의 화풀이를
기꺼이 받아주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고 해서
그것까지 내가 실패한 삶의 증거로 삼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좋아하든 미워하든
어떤 식으로든 백 명의 마음을 한 번 지나갈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생각이 거기까지 가자
한 사람이 더 보였다.

나였다.

나는 늘 백 명의 마음만 계산했다.

몇 명이 나를 좋아하는지,
몇 명이 나를 싫어하는지.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면
내가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고,

싫어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내 값이 갑자기 떨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나는 누구 한 사람의 평가로
가격이 매겨지는 존재가 아닌데.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내 가치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내 가치가 깎이는 것도 아닌데.

백 사람이 나를 보면
어쩌면 백 개의 내가 생길 것이다.

좋은 사람.
불편한 사람.
용기 있는 사람.
잘난 척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별로인 사람.

참 이상하다.

나는 분명 한 사람인데
누구의 눈에 비치느냐에 따라
이렇게나 다른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진짜 나는 누구일까.

백 명이 말하는 나를 모두 합치면
그게 온전한 나일까.

아니면 가장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모습이
진짜 나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그들이 보는 나는
그들의 눈에 비친 나일뿐이다.

그들의 경험과 감정,
각자가 살아온 시간만큼
서로 다른 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그 수많은 눈에 비친 나를
진짜 나라고 믿으며 살았다.

누군가의 칭찬에 나를 올려놓고
누군가의 비난에 나를 끌어내렸다.

정작 내가 누구인지는
나에게 묻지 않았다.

이제는 백 명의 눈을 통해
백 가지의 나를 만나더라도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나를 찾고 싶다.

누군가의 평가에 따라
내 값이 오르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모든 평가를 지나서도
여전히 나로 남아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의 평가를 무시하며 살겠다는 뜻은 아니다.

비난을 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아마 여전히 상처받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괜히 나섰다며 밤새 이불킥을 할지도 모른다.

술이 깨고 나면
어젯밤의 이 장대한 깨달음이
그저 취중 객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한 번쯤은 기억해 두고 싶다.

누군가의 칭찬도
누군가의 비난도
나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

흔들린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내가 정말 두려워했던 건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의 눈에 비친 나를
나조차 싫어하게 되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제는
누군가 나를 미워하더라도
그 사람을 따라 나까지 나를 미워하지는 말아야겠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더라도
그 사람의 칭찬에 기대어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지 말아야겠다.

나는 그 모든 평가 이전에도 나였고
그 모든 평가 이후에도 나일 테니까.

언젠가 내가 사람들 앞에 서게 된다면
좋아하는 사람만 데리고 가지는 말아야겠다.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사람이 되더라도.

그렇게 백 명의 마음을 지나
마지막에는 내 마음에도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내가 아니라
내 눈으로 바라본 나를 믿을 수 있으면 좋겠다.


백 명을 지나 마침내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