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불편한 감정을 밀어내지 않았더니, 위로가 돌아왔다.
“요즘은 남편이 그렇게 밉지가 않아.”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말했다.
나는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진짜?”
예전의 그녀를 생각하면 꽤 놀라운 말이었다.
남편은 목회자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목회자의 아내로 살면서, 스스로에게 지켜야 할 규칙을 아주 많이 만들어 놓고 있었다.
좋은 아내여야 한다
남편을 잘 보필해야 한다
화를 내면 안 된다
짜증을 내는 것도 좋지 않다
내가 조금 더 참고, 내가 조금 더 하면 된다
그녀는 정말 그렇게 살았다.
화를 삼켰고 짜증을 눌렀고, 힘들다는 말 대신 몸을 움직였다.
이상할 정도로 많이 움직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만들었고 몸이 아픈데도 쉬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밖으로 나가지 못한 화가 방향을 틀어, 자꾸 자기 자신을 향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말했다.
“좋은 사람이라고 화까지 없는 건 아니잖아.”
사랑이 크다고 미움이 없는 건 아니다.
좋은 사람이라고 화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늘 참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쓴 사람일수록, 밖으로 꺼내지 못한 감정까지 안에서 혼자 처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안에 품고 사는 화가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다.
누구는 밖으로 터뜨리고
누구는 술을 마시고
누구는 엉뚱한 곳에 풀고
또 누구는 자기 자신을 들들 볶는다
그녀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다.
큰 일탈도 없었다.
대신 너무 착실하게 자신을 희생했다.
남을 공격하지 않는 대신, 자신을 몰아붙이는 쪽을 택한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전에도 그녀에게 말한 적이 있다.
“꼭 남편한테 화를 내라는 게 아니야. 혼자 차 안에서라도 말해봐. ‘나 진짜 화나!’ 하고. 욕을 해도 좋고 소리를 질러도 좋고. 적어도 내가 화났다는 건 스스로가 알아줘야 하지 않을까?”
나중에 들으니 그것조차 어렵다고 했다.
혼자 있을 때조차 화를 내는 게 안 된다고 했다.
그녀에게 화는 나쁜 감정이었다.
미움도 나빴고 짜증도 나빴다.
사랑은 좋은 것
배려도 좋은 것
인내도 좋은 것
그럼 화는?
미움은?
질투는?
짜증은?
나쁜 것이니 얼른 없애야 할 것.
나는 그게 마음에 걸렸다.
감정도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이라면 어떨까.
기쁨이 찾아오면 문을 활짝 열고 차를 내주면서,
화가 찾아오면 “너는 꼴 보기 싫으니 나가” 하고 문밖에 세워둘 수 있을까.
사랑은 내 마음이고
미움은 내 마음이 아닐까.
행복은 내 것이고
분노는 남의 것일까.
아무리 밀어내도 내 안에서 일어난 마음이라면, 결국 내 마음이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가 얼마 전 일을 들려주었다.
그날은 짐이 많았다.
집은 4층이었다.
남편은 아이들과 먼저 집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남편이 다시 내려오겠거니 했다.
안 내려왔다.
결국 그녀가 짐을 들었다.
4층까지 한 번.
다시 내려왔다.
또 들고 4층까지 두 번.
그리고 세 번째.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고 했다.
겨우 마지막 짐까지 옮기고 방문을 열었는데, 남편은 아이들과 누워 있었다.
심지어 장난까지 쳤다.
“쉿. 자는 척해.”
그 순간 20년 동안 눌러놓았던 것이 한꺼번에 솟구쳤다.
참아온 시간만큼 거칠고 뜨거웠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다음부터는 자기도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평생 눌러두었던 화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아이들도 있었고 남편도 있었다.
목소리는 커졌고, 말은 쏟아졌다.
그녀는 한참을 퍼붓고 나서 주방으로 나왔다.
아마 본인도 놀랐을 것이다.
늘 참고 삼키고, 괜찮은 척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잠시 뒤 남편이 따라왔다.
“당신 왜 그래?”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편이 또 물었다.
“괜찮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그녀가 당황했다.
결혼한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 긴 시간 동안 남편이 자신의 감정을 저렇게 물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왜 화를 내느냐가 아니라
왜 그러느냐고.
그만하라는 말이 아니라
괜찮으냐고.
그녀는 너무 어색해서 얼른 말했다고 했다.
“응. 괜찮아.”
그리고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가 자꾸 그녀 안에서 되감겼다.
“괜찮아?”
그리고 남편이 전보다 덜 미워졌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나 방금 생각난 게 있어.”
“뭔데?”
“남편이 왜 처음으로 그렇게 물었는지 알 것 같아.”
잠깐 뜸을 들였다.
“선생님이 처음으로 진짜 마음을 보여줘서 그런 것 같아.”
물론 화를 마구 쏟아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까지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도 없다.
그날 그녀의 분노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평생 거의 화를 내보지 않은 사람의 첫 분노 표현은 서툴렀고 너무 거칠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화를 내라’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앞의 이야기다.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을
내가 먼저 인정하는 것.
나는 지금 섭섭하구나
억울하구나
미워하고 있구나
짜증이 나는구나
그 마음을 ‘나쁜 감정’이라고 얼른 치워버리지 않고
“그래. 너도 내 마음이구나.”
하고 한번 봐주는 것.
그녀는 그날 남편에게 화를 내기 전에, 어쩌면 처음으로 자기 안의 화 편에 서주었는지도 모른다.
평생 사랑과 인내와 희생만 귀하게 대접하고 분노와 짜증과 미움은 천덕꾸러기처럼 밀어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밀어낼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밀어내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한 순서로 일이 일어났다.
그녀가 자기 마음을 무시하지 않은 날
남편도 그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괜찮아?”
내가 내 마음의 존재를 인정하자
상대도 그 마음이 거기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본 것 같았다.
내 안의 불편한 감정까지 내 것으로 받아들인 순간
그 감정을 품고 있는 나라는 사람도 누군가에게 위로받았다.
우리는 자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사랑해야 하고
용서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 마음에 어떻게 사랑만 있을까.
사랑도 나고
미움도 나다.
다정함도 나고
분노도 나다.
고운 마음만 골라서 ‘이게 나야’라고 말하면
남은 절반의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진심으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좋은 마음만 보여주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안에 올라오는 마음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
마음에 들지 않는 감정에게도 잠시 자리를 내어주고
“네가 왜 왔는지 한번 들어볼게.”
말해주는 것.
그것이 나 자신에게 진심인 일이 아닐까.
진심이 언제나 예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화가 나 있고
억울해하고
질투하고
미워한다.
그래도 그것까지 나다.
그날 그녀가 처음으로 자기 마음을 외면하지 않았을 때
남편도 처음으로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20년이 다 되어서야
그녀가 어쩌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건넸다.
“괜찮아?”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위로받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버리지 않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