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나타난 첫 번째 신호는 허리 벨트의 구멍이 한 칸 줄어든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1인치에 가까운 허리둘레가 내 몸에서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삭제됐다. 숨을 참지 않고도 벨트 구멍을 한 칸 더 바짝 당겨 채웠던 순간, 그 상쾌한 느낌을 잊지 못한다.
점차 평소 입던 바지들도 하나둘 품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유행하던 와이드 팬츠 덕분에 마음 놓고 입을 수 있었던 바지가 이제는 간신히 골반에 걸쳐질 수준까지 커졌다. 처음엔 흘러내림을 막으려고 가죽 벨트를 새로 장만했다. 하지만 벨트로 허리를 주름잡아 조여매다 핏이 어색해지는 지경에 이르자, 나는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된 큰 바지들을 헐값으로 중고 마켓에 내보내기 시작했다.
자신을 방치했던 과거의 내가 남긴 흔적들을 떠나보내는 일종의 ‘결별 의식’이었다.
바지를 판 돈으로 한여름용 반바지를 장만했다. 예전 같았으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무릎 위 3부 길이의 짧은 반바지였다. 아무리 무더워도 민망해서 꽁꽁 싸매기 바빴던 내가 맨다리를 드러내고 거리를 활보했다. 올여름이 유독 덜 덥게 느껴진 것은 그 덕분이었던 것 같다. 새로 들인 3부 반바지가 한여름의 쾌적함을 8할쯤은 바카라임져 주었으니까.
돌아보면, 예전에는 외출을 앞두고 옷장 앞에서 한숨을 쉬며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잦았다. 마음에 드는 핏이 나오지 않아 이 옷 저 옷 갈아입다가 지쳐 “입을 옷이 없다”며 새 옷을 사곤 했다. 하지만 옷을 사 모아도 옷장에는 늘 입을 옷이 없었다. 근본적인 문제를 애써 외면한 채, 옷만 탓해왔던 자기 객관화 실패의 대가였다.
몸의 군더더기가 걷히자 옷 입는 스트레스도 함께 걷혔다. 처박아 두었던 예전 옷들이 쑥쑥 들어가기 시작했고, 기본 티셔츠 한 장만 걸쳐도 옷 테가 살아났다. 옷을 사지 않아도 매일 입을 옷이 넘쳐나는 기적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 달콤함도 잠시, 엉뚱한 복병이 고개를 들었다. BMI 지수가 정상 궤도에 안착하고 겉모습이 날렵해지자, 거울 속에서 사소한 결점들이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데 비해 팔뚝에 아직 살이 남았네.’
‘종아리 라인이 더 매끈할 수는 없을까?’
‘여기서 몇 킬로그램을 더 빼야 연예인 같은 실루엣이 나올까?’
‘뼈 말라’라는 기괴한 신조어가 소비되고, 수십 킬로그램을 감량한 이들의 드라마틱한 사진이 쏟아지는 세상. 미디어가 주입한 일률적인 마른 몸의 기준에 나 역시 은연중에 물들어 있었다. 체중계 숫자가 떨어질 때 느꼈던 성취감 이면에는, ‘나도 시류에 걸맞은 체형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얄팍한 도취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건강과 체력의 회복’이라는 본래의 나침반을 잃어버린 채, 타인의 시선과 미적 강박이라는 허영에 빠지고 있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시작한 몸의 리부트가 아니었음에도, 타인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수개월간 쌓아 올린 땀과 성취가 한순간에 초라해 보였다.
미혹됨이 없다는 ‘불혹(不惑)’의 문턱을 넘은 지가 언제인데, 고작 체중 몇 킬로그램 덜어냈다고 세상의 알량한 시선에 중심을 잃어버리다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타인에게 보이는 것에 매몰되면, 필연적으로 결핍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나를 지탱하는 것은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이다. 내 몸의 한계를 이해하고, 건강한 에너지를 채워 넣으며, 스스로 만든 원칙을 제대로 지켜냈다면 그것으로 온전하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아끼는 것보다 앞서는 가치는 없다.
세상이 만들어둔 잣대 위에서 아슬아슬한 비교의 줄타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 위태로운 잣대에서 사뿐히 내려와, 내 두 발로 거칠고 단단한 땅을 딛고 서기로 했다. 내 몸의 진짜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부의 시선에 미혹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나만의 속도로 묵묵히 걸어가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