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인간의 협업, 그 가능성에 대하여

by이고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조직 내에서 가장 AI를 불신하는 완고한 보수주의자 중 한 사람이었다. 거대언어모델(LLM)이 아무리 비약적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 내면의 미묘한 흐름과 감정을 온전히 복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교한 프롬프트 몇 줄로 사람의 고유한 사유를 100% 완벽하게 빚어낼 수는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초창기에는 특히 더 생성형 AI의 결과물을 극도로 꺼렸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한 논리와 유려한 문장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한 단계만 깊이 들어가 보면 핵심을 비켜서 있거나 날카로운 지점을 놓친 채 뻔한 소리만 늘어놓는 경우가 잦았다. 그야말로 ‘영혼’이 없었다. 그렇기에 AI가 생산한 공허한 텍스트를 신뢰할 수 없었다. 그건 ‘가짜 텍스트’라고 여겼다.


그런 나의 철벽에 균열이 생긴 것은 ‘윤문’ 작업에서 AI의 능력을 목격한 후다. 전 온라인 게임의 한 팀원이 유독 군더더기 없이 매끄러운 글을 써왔길래 비결을 물었더니, AI에 마지막 퇴고를 맡겼다고 털어놓았다. ‘문법적 오류나 오타를 걸러내는 일 정도는 AI에게 시켜도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나는 초안을 쓰고 몇 차례 수정한 뒤,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기 위한 윤문의 미션을 AI에게 조금씩 맡기기 시작했다.


생각을 조금 더 열게 된 결정적인 전기는 정부의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바카라임 연구원으로 업무를 수행할 때 찾아왔다.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하기에 앞서, 방대한 국내외 문헌을 선제적으로 조사해 동향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과업이었다.


기존 방식대로라면 연구원 몇몇이 수십 편의 논문과 보고서를 눈으로 훑으며 한 땀 한 땀 핵심 키워드를 추출해야 했다. 하지만 AI를 투입하자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규칙과 논리를 부여하고 프롬프트를 설계하자, AI는 수백 편의 문헌 속에서 핵심 개념과 트렌드 키워드를 순식간에 추려냈다. 속도만 빠른 게 아니었다. 이후 진행된 전문가 자문에서도 “키워드 도출의 깊이와 정밀도가 신뢰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계적인 작업과 대규모 데이터 분석에서 AI가 인간을 압도할 수 있음을 피부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기술이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우월함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봐온 SF 영화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A.I.>나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 로봇>과 같은 영화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에 중요한 가치를 두었다. ‘영혼’ 없는 기계 따위는 절대 넘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차원적인 영역. 난 사람들이 그 자부심을 이야기하는 고전적 방식에 감동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생각을 근원적으로 돌아보게 된 계기가 있다. 항상 논픽션만 써오던 내가 픽션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창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내 고정관념이 산산조각이 났다. 습작으로 제출한 작품에서 나는 AI를 소재로 삼았고, 늘 그래왔듯 인간 존재의 고유성과 가치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결말을 맺었다. 그런데 내 글을 읽은 기성 작가 선생님께서 담담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이제 이런 이야기는 너무 식상하지 않나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클래식은 영원하다고 생각했던 믿음이 무너져 내렸다. ‘유일성과 유한성을 지닌 인간은 결국 승리자’는 식의 서사는 이미 너무 낡고 고루한 프레임이 되어버렸다는 지적.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기술의 파도 앞에서, 대중이 진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승리 선언이라는 납작한 서사가 아니라는 진단. 기술과 공생하고 협업하며 한계를 돌파하고, 인간 스스로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가에 대한 해답이 이제는 더 궁금해지는 시대가 되었다는 분석이었다.


식상한 관점은 시야를 가로막고 새로운 진보의 길을 차단한다. 당연하다고 믿어온 오랜 상식을 의심하고 바닥부터 뒤집어볼 때, 비로소 다음 문이 열린다.


그 후, 나는 오랜 편견을 완전히 내려놓기로 했다. AI를 나와 경쟁하는 대체재가 아니라,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데려다 줄 ‘유능한 파트너’로 대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협업을 내 몸에 대입했고, AI의 데이터 분석과 냉정한 제안을 바탕으로 묵묵히 땀을 흘렸다. 그 결과 마흔에 무너져 내렸던 체력과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값진 선물을 얻을 수 있었다.


돌아보면 조직에서도 AI를 가장 탁월하게 쓰는 이들은 젊은 세대만큼이나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유연한 리더들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수용성, 기성 방식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유연함이 결국 그들을 더 멀리 나아가게 만드는 것 같았다. AI와 공생한다는 것은 단순히 프롬프트 몇 줄을 더 잘 다룰 줄 안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쌓아온 과거의 편견을 깨고, 새로운 지평을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지적 유연성. 바로 그걸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