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며 컴퓨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시동 디스켓을 넣어 컴퓨터를 켜면 BASIC을 실행했고 그 안에서 간단한 프로그램 언어를 배웠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 프로그래밍은 중요하지 않았다. 컴퓨터 학원을 다니는 가장 큰 혜택은 당연히 게임이었다. 수업 전에 미리 가면 마음껏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고, 수업이 마친 뒤에도 남아서 게임을 하다가 돌아갈 수 있었다. 명목상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예습하거나 복습하는 자습 시간이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시간에 게임을 했다.
학원이 위치한 상가 건물 1층에는 PC 게임을 복사해 주는 컴퓨터 가게가 있었다. 단 돈 1000원이면 새로운 게임을 빈 디스켓에 담아 올 수 있었다. 어느 날, 학원 친구가 새로 나온 게임을 카피해 왔다며 잔뜩 들뜬 모습으로 학원에 들어왔다. 모두 친구의 자리로 모였다. 게임을 켜자 검을 든 야만 전사가 화면에 표시되었다. 오 재미있어 보인다! 비주얼 만으로도 남자아이들은 흥분했다. 그리고 게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시끌벅적하던 교실은 조용해졌다. 하나 둘 자기 자리로 돌아가 다른 게임을 했다. 기대가 큰 만큼 순식간에 식어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다양했다. 우선 비주얼은 좋았지만,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알 수 없었다. 대충 이것저것 누르다 보니 앞으로 달려가기는 하는데 멈추는 방법을 몰랐다. 멋지게 검을 휘둘러야 하는데 키보드를 하나씩 다 눌러봐도 캐릭터는 이동만 할 뿐이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것은 게임을 카피해 온 당사자와 나, 단 둘이었다.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수업 시간이 되었다.
다음 날 학원에 온 친구는 더 이상 바바리안을 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궁금했다. 저렇게 멋진 그래픽을 만들어두고 잘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든다고?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상가 1층 컴퓨터 가게로 내려가서 1,000원을 내밀었다. 학원에서 보지 못한 게임 중에서 무난해 보이는 게임을 카피했는데,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다. 게임이 담긴 디스켓을 들고 바바리안을 가진 친구에게 내밀었다. 이 게임 줄 테니까 바바리안은 나 줘. 바바리안을 카피해 오면 될 일인데, 왜 그리 했는지 모르겠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때부터 한동안 나의 바바리안 연구가 시작되었다. 키보드를 하나씩 눌러보며 화면에서 달라지는 것이 없는지 확인했다. 치밀한 관찰 끝에 드디어 조작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심각할 정도로 귀찮은 형태였지만 아무튼 게임을 진행할 수는 있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후, 학원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내가 멋진 것을 보여 줄게! 그리고 바바리안 게임을 시작했다. 바로 뒤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이들은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다. 뿌듯했다.
나의 플레이를 집중해서 보던 한 친구가 갑자기 외쳤다. 움직이는 방법, 나도 알았어! 설마. 그렇게 쉽게 눈치챌 수 없을 텐데? 다른 친구들이 해보라고 목소리를 모으는 바람에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과연 친구는 조작법을 이해했다. 조금은 어색하지만 제대로 캐릭터를 움직였다. 다른 친구들에게 방법을 알려주려고 입을 여는 친구에게 황급히 말했다. 바바리안 한 장 카피해 줄 테니까 가르쳐 주지 마! 그 한마디 때문에 나는 학원 친구들 사이에서 찌질한 이미지를 갖게 되고 말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찌질한 학원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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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의 30가지 메모리 -1988
바바리안. PC. 사이그노시스.
1987년에 최초 개발 되었지만, MS-DOS 버전으로 이식된 것은 1988년이네요. 조작 방식이 굉장히 독특한데요, 화면 하단의 동작 아이콘을 선택하면 해당 동작을 실행합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당시에 마우스가 없었다는 점인데요, 커서를 움직여 선택하는 방식으로 액션 게임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충격이었지요. 지금 보면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당시 기준으로 그래픽과 사운드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게임입니다. 심지어 음성까지 나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