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래터 하우스
오락실에서 무시무시한 게임을 발견했다. 배경부터 기괴한데, 다양한 괴물들이 나왔고 주먹으로 때리면 퍽퍽 터져 버렸다. 심지어 칼을 휘두르면 몸이 동강 나기까지 했다. 마스크를 쓴 주인공은 누더기를 입고 있었다. 벽에 매달려 고문당하고 있는 괴물이 바닥에 고이는 액체를 뱉기도 했다. 새끼 에일리언 같은 괴물들도 나왔다. 이 무시무시한 게임의 제목은 스플래터 하우스였다. 나는 처음 본 순간부터 강렬한 이미지에 푹 빠져 버렸다.
부유한 어린 시절에 함께 살았던 가정부 누나는 영화를 좋아했다. 그래서 가끔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서 보곤 했는데, 당연히 대부분 아이가 보면 안 되는 것들이었다. 누나가 영화를 보다가 잠든 어느 날, 나는 끔찍한 공포 영화를 만났다. 당시 제목은 ‘악마의 손’ (the hand). 이 작품을 보고 나서 한동안 매일 겁에 질린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길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손만 봐도 무서웠고, 손이 숨어있을 만한 좁은 공간도 경계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공포는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게 마련이다. 악마의 손이 잊혀진 뒤에 남은 것은 오싹함과 공포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가 봐서는 안 되는 공포 영화를 찾았고 잔인한 것들을 선호하게 되었다. 피가 터지는 자극적인 모습도, 오컬트 요소가 담긴 불길한 설정도 모두 공포를 느끼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악마의 손’만큼 나를 무섭게 만드는 것을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만나게 된 것이 스플래터 하우스였던 것이다.
내내 기대했다. 이 게임은 과연 나를 무섭게 해 줄 것인가? 오랜만에 어릴 때 그 느낌을 찾아줄 것인가? 일단, 이 게임은 상당히 어려웠다. 하지만 어려움에서 오는 공포나 불안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요소였다. 게임이란 하면 할수록 잘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니 말이다. 결국 이 게임도 익숙해지면서 처음에 기대했던 호러의 느낌은 사라졌다. 그저 콘셉트가 살짝 기괴한, 혹은 무서워 보이는 것을 소재로 하는 보통 게임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이 게임을 다르게 보게 된 계기는 영화였다. ‘13일의 금요일’ 시리즈를 보기 시작하면서 하키 마스크를 쓴 제이슨을 만났다. 나에게는 게임이 먼저였기에 곧바로 스플래터 하우스가 떠올랐다. 영화에서는 온갖 사람들을 해치는 살인마 제이슨이었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여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괴물들과 싸운다. 이 갭에서 짜릿함이 느껴졌다.
내가 살인마 제이슨을 조작하고 있다니. 그 괴물이 목숨 걸고 구하려는 여자는 대체 어떤 존재인 걸까? 연인의 정체에 대해 온갖 으스스한 상상이 들었다. 게임 자체는 무섭지 않았지만, 어쩐지 스토리의 뒤에 무시무시한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스플래터 하우스의 주인공과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은 전혀 다른 존재이다. 하키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점만 동일하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이 둘을 동일한 존재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또 다른 동기부여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 또한 게임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위해 13일의 금요일을 오마주 했던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개발자의 의도대로 게임을 제대로 즐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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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의 30가지 메모리 -1988
스플래터하우스. AC. 남코.
호러 콘셉트의 액션 게임으로 고어한 연출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절망적인 호러의 상황을 콘셉트로 하고 있기에 높은 난도도 각광받는 요소가 되었지요. 맨 주먹보다 무기를 사용했을 때의 연출과 쾌감이 강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키 마스크를 쓰기 때문에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의 제이슨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도 그랬고 주변에서도 13일의 금요일 게임이라는 말을 종종 했으니까요. 이후 시리즈가 전개되며 스토리가 점점 더 깊어졌지만, 첫 작품은 심플한 스플래터 무비의 시나리오 형식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