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여권이 아닙니다!

새로운 도전에서 깨달은 과정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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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실패


영양사인 내가 왜 40대에 다시 칼을 잡았을까?


10년 전이었다. 전문지 기자 생활을 하며 새벽반으로 요리학원을 다니던 것이. 그땐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오전 6시, 새벽반을 등록해 실기 연습을 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기자 생활을 병행하며 요리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무리였다. 역시나 배워야할 메뉴는 30가지 정도였는데 10번 정도 가고 그 뒤로는 가지 못 했다.


그렇게 나의 첫 도전은 생계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엔 너무 이른 시간에 등록을 해서 학원에 가면 수강생이 나 혼자였고, 1:1 수업이 아닌데 마치 1:1 수업처럼 진행이 되서 무척 당황했었다.


피곤한 시간에 강의를 하는 선생님도 마찬가지. 서로 눈치를 보며, 선생님은 내가 언제까지 나올까? 그리고 난 돈을 내고도 눈치를 보며 학원을 다니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새로운 도전


그렇게 10여 년이 지나서 푸드 크리에이터가 되었고, 칼을 다시 잡았다.


끝날 줄 알았던 음식 공부는 오히려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이번에 일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다시 한 번 배웠다. 음식은 아는 것과 만드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초간단이지만 어쨌든 요리는 해야했고, 구독자님들과 콘텐츠를 봐주시는 분들께 객관적으로 신뢰를 드려야했다. 그래서 조리사 자격증을 하나라도 따자! 라는 마음으로 선택한게 일식이었다.



#과정과 의미


페스코 채식과 건강이라는 화두로 선택한 자격증은 수산물과 채소 요리가 많은 일식조리사였다. 허나 날카롭고 긴 사시미, 생선뼈를 잘라내는 데바칼은 다루기가 너무 힘들었다.


한식과 양식으로 기초를 다져온 다른 수강생들에 비해 요리학원의 친절한 강의도 나에겐 너무나 문턱이 높았다. 그래서 주말만 되면 열심히 기본기를 다지듯 사시미와 데바칼을 잡고 집밥을 했다.


그렇게 실기에서 배워나간 메뉴들로 집밥을 만들었고, 점심, 저녁으로 남편이 맛있게 먹어줬다. 실기 시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시험 전날에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포기할까?


너무 긴장 해서 시험장에 들어가자마자 포기하고 나올까?도 생각했었다. 생소한 환경, 요리하기 힘든 분위기. 감독관님들은 왜 나만 주시하는 걸까? 사실 한사람씩 채점을 해야해서 골고루 돌아가며 보셨을텐데. 굉장히 긴장한 나머지 모든 게 신경쓰였고,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떨어져도 다 경험인거지. 무사히 시험만 보고와."


그래. 모두 다 경험인거다. 남편이 던져준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고, 제시간에 요리를 완성만하자는 일념으로 버틴 것 같다.



#과정과 의미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70대 수강생 분과 함께 다녔다. 취업을 취해, 취미로, 그냥 자격증을 따고 싶어서. 각자의 사연으로 학원에 오게된 사람들.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은 용기와 힘을 얻었다.


과정은 역시 어렵다. 모든 게 그렇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


요리학원을 다니는 내내 포기할까? 라는 속삭임이 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사시미를 들 때마다, 바리바라 싸들고간 요리도구들을 챙겨 지하철을 타고 올 때까지.


무거운 짐덩이엔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도 가득 들어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노력에 노력을 더하게 된건 더 배우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자격증 하나가 인생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다.


구독자님들, 도와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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