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를 좋아하게 된 이유
초2 때, 응급실에 실려갔다.
장꼬임으로. 아직도 그 아픔을 잊지 못한다. 오른쪽 옆구리가 너무 아파서 다리를 구부릴 수도, 몸을 펼 수도 없는 상태. 그대로 응급실에 실려가 장꼬임(?)이라는 이상한 진단을 받았다.
장이 꿀렁꿀렁 움직이는 연동운동이 멈추면서 그대로 꼬여버린 것.

"저절로 펴지지 않는다면 수술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나의 장은 겁을 먹었는지, 다행히도 2시간만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변비인생 사십 여년
어릴 때부터 변비가 심했던 난, 장의 운동성이 꽤나 떨어지는 아이였다.
변을 보려면 보통 2~3일. 어쩔 때는 일주일 동안이나 화장실을 가지 않은 적도 있었고, 친척집에 가거나 어디를 놀러가도 큰일을 보러 화장실은 절대 갈 수 없었다.
왜 이런 걸까? 위의 소화력은 돌도 씹어 먹을 정도로 왕성한데. 심지어 여태까지 체하거나 토했던 일은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그러나 이것들이 장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세상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유전인가? 엄마는 소화력이 많이 떨어지시고, 변비 증상도 나와 많이 비슷했다. 허나 아버지는 소화력이 좋으시고 매일 쾌변을 하셨다.
그렇다, 나의 위는 아버지를. 장은 어머니를 닮은 것이다. 반반치킨도 아니고.
고기 반, 채소 반
어렸을 때 어머니는 고기 한점 먹을 때 무조건 채소도 같이 먹으라고 주문하셨다.
고기 한점을 먹었다면 다음엔 채소 한점. 나물이나 김치 어느것이라도 좋았다. 아니면 둘을 동량으로 곁들여 먹는다던지, 고기 반찬이나 구이엔 채소나 쌈을 항상 같이 먹어야했다.

처음엔 당연히 고기에만 젓가락이 갔다. 어머니의 잔소리에 입을 쭈삣쭈삣거리며 한껏 나온 입을 하고 밥을 먹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채소를 곁들이는 식습관으로 바뀌면서 서서히 채소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딸의 변비인생을 안타까워하시면서 이 고통을 물려준 어머니의 고육지바카라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의무적인 듯. 아니 오히려 입맛이 당겨서 채소를 찾는다. 어머니께 참 감사한일이다.
살기 위해 먹었던 채소의 맛
무조건 채소를 곁들이는 식습관으로부터 나의 입맛은 서서히 채소들의 맛을 알아갔다. 아삭아삭 싱싱한 오이. 과즙이 풍부한 토마토. 딱딱하면서도 약간은 알싸한 무의 맛.
물론, 어머니의 양념은 내가 채소를 더 좋아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것이었다.

오래오래 씹을 수록 단맛이 나는 당근, 파프리카, 살짝 데친 양배추 등등.
봄마다 나오는 향긋한 나물은 꽃놀이 만큼 즐거운 즐길거리가 됐다. 여름엔 더위를 식히기 위해 꼭 신선한 제철채소로 밥상을 차린다. 가을에는 성숙한 맛, 제철버섯들의 향기는 꼭 즐겨야한다.
모두 맛을 알아갈 수록 친숙하고 정겨워졌다.
변비의 여왕을 만나다.
결혼을 하고나서는 변비의 여왕이신 시어머님을 만났다. 역시나, 나와 비슷하게 단신이셨던 어머님은 '단신들은 변비가 심한가?'라는 의문을 안겨주시며, 섬유질 가득한 반찬도 안겨주셨다.

다음날 바로 쾌변월드로 직행하는 미역줄기의 황홀함. 팽이버섯의 향연. 온갖 나물들의 축제. 나물 없이 밥을 못 먹는 나는, 변비 여왕님의 고단수 비법을 마스터하며 무수리로 살아가는 중이다. (남편은 아버님을 닮아서 쾌변남이다. 좋겟다.)
이제는 내 몸과 입맛이 채소를 원한다. 나의 밥상에서 채소는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쾌변의 여왕이 되고 싶다.

변비약 PPL 들어오는 거 아니죠? 저 변비약도 먹어 봤으나...부작용만 심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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