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의 마음으로 나만의 채식 찾아가기
"비건은 싫어! 그냥 싫어! 무조건 싫어!"
내가 하루 한 끼 비건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남편이 보인 첫 반응이었다.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응? 뭐라고? 난 1일 1비건인데?"

하루 세 끼를 모두 비건으로 먹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혼자 먹는 한 끼 정도를 내가 먹고 싶은 방식으로 먹겠다는데, 왜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걸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비건'이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유가 조금씩 보였다.
비건 아닌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 같은 태도,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 죄바카라감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 자신의 방식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강요하는 모습. 물론 모든 비건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일부 강한 이미지가 '비건' 전체에 대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 뒤로 우리는 종종 밥상 앞에서 부딪혔다. 솔직히 남편은 '비건'이라는 말 자체를 불편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만든 매생이 비건 라면 영상에 댓글 하나가 달렸다.
비건을 조금 더 폭넓게 바라보게 됐다는 내용. 그 댓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비건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처음 채식을 시작했던 이유는 뜨거워지는 지구와 환경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러 재료를 사용하고, 영양의 균형을 고민하고, 내 생활에 맞는 채식을 만들어가면서 나 역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비건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자신의 방식으로 채식을 이어갈 수 있느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이제 채식을 하나의 정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몸도 다르고, 라이프 스타일이나 먹는 습관도 다르다.
누군가는 완전한 비건으로 살아갈 수 있다. 또 누군가는 생선을 먹는 페스코 채식을, 우유나 달걀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또 누군가는 평소엔 자유롭게 먹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만 채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것도 채식이다.
나이에 따라, 건강 상태에 따라, 생활환경에 따라 먹는 방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몇 가지 채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채식이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기준과 신념은 가지고 있되, 건강과 생활에 맞게 조걸해가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채식이다.
예전에는 하루 한 끼만 비건으로 먹는다는 것이 어딘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완전한 비건도 아닌데 비건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될까? 이 정도로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한 사람이 수천 번 꾸준히 실천하는 채식도 소중하고, 수천 명이 한 달에 한 번씩 선택하는 채식도 소중하다. 1일 1비건에서 페스코로, 지금은 휴식기로.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채식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하루에 한 번이어도 좋고, 일주일에 한 번이어도 좋다. 힘들거나 아프면 쉬어가도 된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아예 시작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채식을 하다가 다시 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실패가 되는 것도 아니다. 며칠 쉬었다고 해서 영원한 낙오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몸 상태가 달라질 수도 있고, 생활환경이 바뀔 수도 있다. 그때그때 나에게 맞는 방식을 다시 찾으면 된다. 오히려 '한 번 시작했으면 평생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새로운 시작을 막을 수도 있다. 나는 실패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고 싶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내게 맞는 방법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고.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오래 갈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좋은 방법이다.
채식을 시작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동물권 때문일 수도 있고, 건강 때문일 수도 있다. 그저 채소가 좋아서 시작할 수도 있다.
이유가 많아질수록 시작하는 방법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의 채식은 틀렸다', '나의 채식만 옳다'를 따지는 대신 각자가 자신의 방식을 찾아 갔으면 좋겠다.
모두의 채식은 소중하다.
채식은 누군가의 특별한 신념이나 특권이 아니다. 마트에서 채소 한 봉지를 집어 드는 순간에도. 오늘 한 끼, 고기 대신 두부와 채소를 선택하는 순간에도 시작할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중간에 멈춰도 괜찮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각자의 콩알이 하나의 콩깍지를 채우듯, 서로 다른 수많은 채식이 모여 우리의 식탁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마음 한편에 푸른 채소 한 접시 정도는 남겨뒀드면 좋겠다.
언젠가 채식이 하고 싶어지는 날, 그 한 접시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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