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바로 다음날이 최애의 첫 유닛 콘서트였다.
수많은 콘서트를 다녀왔고 이제는 어떤 콘서트는 슬프게도 별 감흥이 없기도 하는데, 이 여름날의 그 열기는 아직도 쉽게 잊히지가 않을 만큼 뜨겁게 열광했고, 지금도 잊지 못할 도파민과 행복의 여름날이었다. 첫 콘이 끝나고 검은 봉다리에 응원봉, 지갑, 신분증, 선풍기 다 던져놓고 무슨 정신으로 집에 갔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의 벅찬 고양감을 오랜만에 느끼면서.
이제야 조금 쉬는 것 같은 날들을 보내던 작년 여름.
분명 그토록 바라던 혼자만의 시간도, 기록하는 즐거움도, 오래도록 바라왔던 최애의 도파민 최고조의 콘서트까지 뜨겁고 행복하게 겪고 와서,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아 진짜 빨리 돈 벌어야겠다.'라는 의지를 태우고 있었는데, 왜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
‘나는 지금 내 인생을 잘 꾸려나가고 있지 못하다’는 만성적인 자바카라, 돈도 못 벌면서 쓰기만 하는 것을 멈추고 싶은데도 멈추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지속적인 실망. 그리고 그 위에 차곡차곡 쌓인 수많은 ‘해야 하는데...’의 감각과 당위성이 너무 버거워서 GPT에게도 물어보고 영상과 바카라을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우연히 답을 찾았다.
‘권태’였어.
우연히 마주한 <유퀴즈> 영상에서 김창옥 교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은 것이었다. 막막한 마음에 유튜브에 무작정 '인생 권태기'라고 검색하다 찾은 교수님의 한 마디가 쿵하고 울렸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좋은 에너지를 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할 따름.
열정이 많았던 사람일수록 권태가 심하대요. 그만큼 열정적이었기 때문에…
그저 이상하리만치 지친 마음이 회복이 되지 않고, 혼자 있던 시간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어서 ‘퇴사한 지 세 달이나 됐는데 아직도!?’ 라며 또 자바카라과 죄바카라감만 올라오는 게 괴로웠는데 그 감정의 원천이 번아웃이 아닌 권태였다니.
이 둘은 꽤나 비슷한 모양이라 구분하기가 어려운데 분명히 달랐다.
마냥 24시간 눕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치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니까.
인생이 너무 길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운 동시에 한 편으로는 너무 감사한 일이니까 소중하게 살아내고 싶은데,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러서 24시간 하루 일주일 한 달을 이렇게 발만 동동 구르다 권태의 늪에 빠져 지내다 보내도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년 이 맘 때, 그러니까 25년 여름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적 신드롬을 막 일으키던 무렵이었다. 자아가 너무 비대한 탓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케데헌이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아주 오래전 내가 원했던 일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10여 년 전 <무한도전>에서 완벽하게 만든 토토가 특집을 보며 느낀 무력감과 비슷한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이 엄청난 신드롬을 보면서 한국의 음악이나 문화, 콘텐츠를 알리는 일, 되살리는 일, 만드는 일, 엔터든 방송 일 한가운데에 있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 무력한 것일 수도.
‘나 저 일이 너무 하고 싶었구나…’
그 마음은 정말 간절했으니까.
실제로 굵직한 대기업부터 온갖 음반기획사와 유통사 면접을 거의 대부분 봤었으니까. 안타깝게도 결실을 맺지 못했을 뿐. 누군가는 그걸 만들어냈고, 성공시켰고, 아니면 최소한 그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하지만 난 그렇지 못했으니까.
20대를 넘어 30대까지도 그 일들이 너무 하고 싶었던 마음이, 현실적인 부분에서 어떻게든 부딪혀서 깨지고 결국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 무엇도 될 수 없구나 라는 끝자락에서 재확인받은 느낌이었을까?
20대도 30대도 끝난 마당에 돌아보면 그냥 그 작은 온라인 게임에서도 어떻게든 버티다 타버린,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구나.
그게 그냥 너무 슬펐나 봐.
이번 퇴사 이후 내내 '하고 싶은 게 딱히 없는' 상태가 너무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정확하게는 하고 싶은 게 없다기보다 ‘많았는데 현실적으로 내가 하지 못하는 반복되는 상황에 지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진짜로 ‘그것이 더 이상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과 현실을 받아 들어야만 하는 이 시기가 너무 고통스러운 것일지도. 오랜 시간 쥐고 있던 꿈에 대한 애도는 길어질수록 힘드니까.
물론 아직 젊고 살아갈 날 많지만, 뭔가 이제 끝끝내 정말로 사라져 가는 것만 같은 불안감과 공허함에서 허덕이다 지친 것 같았다. 한국 슬롯 특유의 나이 압박으로 인해 앞자리가 바뀌기 전 ‘마지막’이라는 압박감에서도.
내가 그들보다 열등하다는 게 아닌데 어찌 되었든 아직도 방향을 못 잡고 있고, ‘이젠 정신 차릴 때도 되지 않았냐?’ 싶어서 이 마음들이 더 앞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나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 판으로 다시 밑바닥부터 해보겠다는 대단한 열정이 아직까지 남은 것도 아니고. 어쨌든 나도 내 방향으로 30대 내내 불태운 건 사실인데 나한텐 남은 게 그 무엇도 없는 것 같아서. 그리고 비슷한 또래의 동기와 친구들은 길면 15년, 짧아도 10년 넘은 경력으로 자기만의 것들을 쌓아 올리는데, 난 입사와 퇴사, 심지어 그 사이 공백까지, 를 반복하며 아직도 지겹게도 내 쓸모를 증명하고 있으니까.
이직도 구직도 나름 즐거웠던 백수 루틴도, 끝도 없이 치우고 치우고 또 비워야 하는 핸드폰 갤러리도 방도, 기껏 한 달 빡세게 관리해서 빼거나 깨끗하게 해둬 봤자 보름 손 놓으면 돌아오는 몸도 피부도
다 지겹다.
지겹다고!!!!!!
그 모든 게 너무 지겨워서 지쳐버렸나 봐. 하얗게 타들어갈 만큼.
그래서 지금이 너무 막막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