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권태기가 벌써 올 시기인가 - 서른마흔다섯살

by홍나씨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바로 다음날이 최애의 첫 유닛 콘서트였다.

수많은 콘서트를 다녀왔고 이제는 어떤 콘서트는 슬프게도 별 감흥이 없기도 하는데, 이 여름날의 그 열기는 아직도 쉽게 잊히지가 않을 만큼 뜨겁게 열광했고, 지금도 잊지 못할 도파민과 행복의 여름날이었다. 첫 콘이 끝나고 검은 봉다리에 응원봉, 지갑, 신분증, 선풍기 다 던져놓고 무슨 정신으로 집에 갔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의 벅찬 고양감을 오랜만에 느끼면서.


이제야 조금 쉬는 것 같은 날들을 보내던 작년 여름.


분명 그토록 바라던 혼자만의 시간도, 기록하는 즐거움도, 오래도록 바라왔던 최애의 도파민 최고조의 콘서트까지 뜨겁고 행복하게 겪고 와서,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아 진짜 빨리 돈 벌어야겠다.'라는 의지를 태우고 있었는데, 왜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





‘나는 지금 내 인생을 잘 꾸려나가고 있지 못하다’는 만성적인 자바카라, 돈도 못 벌면서 쓰기만 하는 것을 멈추고 싶은데도 멈추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지속적인 실망. 그리고 그 위에 차곡차곡 쌓인 수많은 ‘해야 하는데...’의 감각과 당위성이 너무 버거워서 GPT에게도 물어보고 영상과 바카라을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우연히 답을 찾았다.


‘권태’였어.


우연히 마주한 <유퀴즈> 영상에서 김창옥 교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은 것이었다. 막막한 마음에 유튜브에 무작정 '인생 권태기'라고 검색하다 찾은 교수님의 한 마디가 쿵하고 울렸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좋은 에너지를 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할 따름.


열정이 많았던 사람일수록 권태가 심하대요. 그만큼 열정적이었기 때문에…

image.png유퀴즈 온 더 블럭 - 김창옥 교수님 편


그저 이상하리만치 지친 마음이 회복이 되지 않고, 혼자 있던 시간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어서 ‘퇴사한 지 세 달이나 됐는데 아직도!?’ 라며 또 자바카라과 죄바카라감만 올라오는 게 괴로웠는데 그 감정의 원천이 번아웃이 아닌 권태였다니.


이 둘은 꽤나 비슷한 모양이라 구분하기가 어려운데 분명히 달랐다.

마냥 24시간 눕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치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니까.


인생이 너무 길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운 동시에 한 편으로는 너무 감사한 일이니까 소중하게 살아내고 싶은데,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러서 24시간 하루 일주일 한 달을 이렇게 발만 동동 구르다 권태의 늪에 빠져 지내다 보내도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년 이 맘 때, 그러니까 25년 여름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적 신드롬을 막 일으키던 무렵이었다. 자아가 너무 비대한 탓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케데헌이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아주 오래전 내가 원했던 일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10여 년 전 <무한도전>에서 완벽하게 만든 토토가 특집을 보며 느낀 무력감과 비슷한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이 엄청난 신드롬을 보면서 한국의 음악이나 문화, 콘텐츠를 알리는 일, 되살리는 일, 만드는 일, 엔터든 방송 일 한가운데에 있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 무력한 것일 수도.


‘나 저 일이 너무 하고 싶었구나…’


그 마음은 정말 간절했으니까.

실제로 굵직한 대기업부터 온갖 음반기획사와 유통사 면접을 거의 대부분 봤었으니까. 안타깝게도 결실을 맺지 못했을 뿐. 누군가는 그걸 만들어냈고, 성공시켰고, 아니면 최소한 그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하지만 난 그렇지 못했으니까.


20대를 넘어 30대까지도 그 일들이 너무 하고 싶었던 마음이, 현실적인 부분에서 어떻게든 부딪혀서 깨지고 결국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 무엇도 될 수 없구나 라는 끝자락에서 재확인받은 느낌이었을까?


20대도 30대도 끝난 마당에 돌아보면 그냥 그 작은 온라인 게임에서도 어떻게든 버티다 타버린,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구나.


그게 그냥 너무 슬펐나 봐.





이번 퇴사 이후 내내 '하고 싶은 게 딱히 없는' 상태가 너무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정확하게는 하고 싶은 게 없다기보다 ‘많았는데 현실적으로 내가 하지 못하는 반복되는 상황에 지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진짜로 ‘그것이 더 이상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과 현실을 받아 들어야만 하는 이 시기가 너무 고통스러운 것일지도. 오랜 시간 쥐고 있던 꿈에 대한 애도는 길어질수록 힘드니까.


물론 아직 젊고 살아갈 날 많지만, 뭔가 이제 끝끝내 정말로 사라져 가는 것만 같은 불안감과 공허함에서 허덕이다 지친 것 같았다. 한국 슬롯 특유의 나이 압박으로 인해 앞자리가 바뀌기 전 ‘마지막’이라는 압박감에서도.






내가 그들보다 열등하다는 게 아닌데 어찌 되었든 아직도 방향을 못 잡고 있고, ‘이젠 정신 차릴 때도 되지 않았냐?’ 싶어서 이 마음들이 더 앞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나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 판으로 다시 밑바닥부터 해보겠다는 대단한 열정이 아직까지 남은 것도 아니고. 어쨌든 나도 내 방향으로 30대 내내 불태운 건 사실인데 나한텐 남은 게 그 무엇도 없는 것 같아서. 그리고 비슷한 또래의 동기와 친구들은 길면 15년, 짧아도 10년 넘은 경력으로 자기만의 것들을 쌓아 올리는데, 난 입사와 퇴사, 심지어 그 사이 공백까지, 를 반복하며 아직도 지겹게도 내 쓸모를 증명하고 있으니까.


이직도 구직도 나름 즐거웠던 백수 루틴도, 끝도 없이 치우고 치우고 또 비워야 하는 핸드폰 갤러리도 방도, 기껏 한 달 빡세게 관리해서 빼거나 깨끗하게 해둬 봤자 보름 손 놓으면 돌아오는 몸도 피부도


다 지겹다.

지겹다고!!!!!!



그 모든 게 너무 지겨워서 지쳐버렸나 봐. 하얗게 타들어갈 만큼.
그래서 지금이 너무 막막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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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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