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면 괜찮아질까?

/ 보름 만에 인생 첫 강의를 준비하다

by홍나씨


그렇게 권태와 싸우며 여름에 녹아가던 즈음, 몇 달 전 멘토링으로 연락 주신 분이 다시 전화가 왔다.


멘토링 말고 혹시 강의로 가능하실까요?

퇴사 직후에 ‘마케팅‘이라는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지 의문과 불안에 휩싸여 혼란스러웠던 와중,

10년 전 같이 일했던 동료 분의 소개로 멘토링 제안을 해주신 분이었다. 아무래도 전문성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경력과 스스로가 확신이 없는 이 상황에서는 어려울 것 같아 정중히 거절했지만,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무심함과 정말 ‘사람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이 핸드폰 너머 느껴졌다.


여전히 불안하고 확신이 없었지만, 무엇보다 퇴사 후 서너 달이 지난 시점에 현실적으로 돈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런데 강의라니… 제가요?


알고 보니 한 시간이나 한 시간반 짜리 이벤트성 강의도 아닌 무려 네 시간 가까이 혼자 원맨쇼를 하든 덤블링을 하든 채워야 했던 강의였고, 심지어 서울이 아닌 대전까지 내려가야 한단다.


대화를 할수록 계속


강의요? 제가요?
그것도 네 시간… 이요?
심지어 서울도 아닌 대전… 이요?

라며 물음표 개수만 늘어나는데 편하게 해 주시면 된다고 했다. 생애 처음 하는 강의를 30분이나 한 시간도 아니고 무려 네 시간이나 끌고 가기 위해서는 좀 더 뾰족한 주제와 타깃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대답은 초지일관 ‘그냥 마케팅이요ㅎㅎ’였다.


흠…


사실 교통비도 지급되지 않았고 강의비 또한 아주 넉넉하진 않았지만, ‘조금 비싼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니 엄청난 시급에 꽤나 매력적이었고, 반드시 네 시간을 꽉꽉 채우지 않아도 된다고 해주셔서 부담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오래전부터 어쩌다 보니 10년 전에도 지금도 자주 보는 친구들이 대전에 살아서, 대전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안 된다면 망고시루나 사 오자! 하는 마음으로.




24시간이 모두 내 것인데 그 하루가 너무 길고 막막해서 불안했었다. 그런데 일단 저 네 시간을 어떻게든 채우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준비해야 했고, 그렇게 강의 준비를 시작하자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이 생겼다.


‘대 AI시대’에 다들 AI를 그렇게들 쓴다고 하는데, 테크 업계에 있으면서도 퇴사 후 GPT를 심심이 정도로 쓰는 수준이었다. 어쨌든 2주도 안 남은 시점에서 혼자서는 도저히 시간 내에 완성할 수가 없었기에 그 대 AI의 시대에 얼떨결에 합류하게 되었다.


고작 일 년 하고 몇 달 전인데, 그 사이에 너무 빠르게 발전해서 지난여름에 썼던 툴 중 몇 개는 지금은 또 활용되지 않는다. 어쨌든 AI의 도움을 받아 뼈대를 만들고, 일단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기획부터 빠르게 채워 넣었다.


대충 - 빨리 - 잘


빌어먹을 완벽주의 때문에 초반부터 ‘잘’을 시작하느라 포기했던 일들이, 시작조차 못했던 일들이 얼마던가. 몇 년 전 포트폴리오를 갈아엎을 때처럼 포스트잇에 적어놓고, 일단 속도를 내서 분량부터 채워 넣었다. 그럼에도 시작하다 보니 할 말이 많아져 또다시 길어졌지만.


정확히는 내 할 말보다는 이제 시작하는 학생들이란 말을 듣고 나니 사수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던 내 초년생 시절이 생각나, ‘내가 어릴 때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이라는 마음으로 사례집, 참고서처럼 꽉꽉 채워 넣으려 했다.


출근 퇴근 시간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정해진 마감이 있고 내가 오롯이 시간과 리소스를 배분해야 일이 완성되다니. 프리랜서나 자영업자가 이런 기분일까. 극한의 미루기와 벼락치기 인생으로 살아온 내겐 어려운 라이프스타일이겠구나, 라며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했다.


애초에 시간이 넉넉했던 게 아니었던지라, 일주일 동안은 밤낮으로 매달려서 더 꽉꽉 채워 넣고 시간을 재서 리허설을 하고 또 수정을 하고… 지금 생각하면 그 돈 받고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었는데, ‘잘해야 한다’는 평생의 당위성과 더불어, 오래된 지인의 소개와 제안으로 시작된 일이라는 점이 한층 더 이 빌어먹을 완벽주의에 힘을 실어주었나 보다. 그리고 다수의 학생들 앞에 서는 일이라고 하니 어떻게든 쓸모가 있고 싶었다보다.


내가 이리저리 깨져온 10년+a의 시간이, ‘잘못 살았다’고 자바카라하기만 했던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네 시간짜리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구나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던 걸까?


‘이런 길도 있구나’하는 마음과 함께.




비록 스무 명도 안 되는 학생들 중 몇몇은 그 옛날 5교시처럼 졸음을 꾸역꾸역 참으며 헤드뱅잉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몇몇의 열렬하고 뜨거운 눈빛 덕분에 목이 쉬어가면서도 첫 강의를 마칠 수 있었다.


제안부터 당일 강의까지 운영 측면에서 불만족스러웠던 점도 있었지만, 이 또한 끝나고 나니 아무래도 좋았다. 학생들에게 어쨌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그 어떤 때 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건물을 나와 성심당으로 뛰어갔다. (슬프게도 망고시루는 시즌이 끝나서 끝내 구매에 실패했지만)


퇴근 후 달려와준 친구와 기깔난 삼겹살을 먹고 코인노래방에서 몇 시간을 달리다가, 지하철도 아닌 무려 KTX 막차를 타고 서울에 겨우 올라갔다.

몇 달 만에 정말 후련한 7월의 마지막날.



다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오래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앞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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