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띠 독립’,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견디며 ②

/ 그럼에도 우당탕탕 쩜오 독립일기, 내 선택으로만 채운 24시간

by홍나씨


그렇게 보부상처럼 이것저것 싸들고 왔는데도 음식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식용유나 올리브오일처럼 생각지도 못한 아이템이 자꾸 튀어나와서 급하게 쿠팡과 컬리로 주문했다. (아무래도 문명의 혜택 없는 곳에서 자연친화적인 삶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런데 다음날 아침, 야무지게 아침 해 먹을 생각에 설레며 눈을 떴는데 알고 보니 배달이 잘못되어 애먼 집으로 간 것이 아닌가… 다행히 방 안에 사람이 있어 다시 받아서 박스채 들고 오긴 했는데, 살면서 잘못 배달된 박스를 뜯어 간 사람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안에 품목이 몇 개 비었지만 그 정도는 그냥 해프닝으로 치자.



4.5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근처 사는 친구들과 약속도 잡아두어서 오롯이 혼자 보내는 날은 실질적으로 하루였다. 어떻게 보면 사실상 더위를 피하기 위한 임시공간을 대여한 것에 가까웠기도. 하지만 그 하루만큼은 그리고 오전 시간 늦은 밤, 새벽 시간까지 독립생활의 소소한 행복들을 어떻게든 만끽하고 싶었다.


밤늦은 시간에 아이스크림 사러 1층 편의점 다녀오기, 늦은 아침을 정성껏 차려 먹고 점심은 스킵하기, 내가 좋아하는 영상들로 가득 채운 유튜브를 하루 종일 모니터에 틀어놓기, 푸딩이나 조각 케이크, 아이스크림 등 좋아하는 간식 등 시간 상관없이 먹고 싶을 때 먹기, 샤워도 청소도 설거지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마음껏 하기 등등.


일상의 작은 것들을 원하는 때에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것도 기뻤지만, 무엇보다 원치 않은 것들이 사라지는 게 행복했다. 집에서 하는 일거수일투족 모든 행동에 걱정 어린 시선, 걱정이란 이름의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 아침이고 새벽이고 바깥에서는 저층의 창문 너머 넘어오는 행인들의 싸우는 소리, 하루 종일 들려오는 원치 않는 정치 채널의 뉴스 소리 등등. 온 힘을 다 해 의도적으로 차단해야 나를 지킬 수 있었던 것들에서 해방되니 그것만으로도 편안해졌다.


오롯이 나 혼자만 있는 그 적막과 고요, 그리고 조용히 들려오는 에어컨 소리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온전한 내 시간 동안, 그동안 미뤄둔 자잘한 일들을 각 잡고 뭐라도 해보려고 했던 거창한 노오력에 비해서는 생각보다 글이고 블로그고 작업이고 잘 안 써지더라. 하핫.


그럼에도 당시 진행 중인 프로젝트였던 단어 모으기를 통해 모은 80개 포스트잇 중에서 내 단어를 추려내는 작업이나 (바카라상이고 바닥이고 포스트잇으로 도배를 해도 괜찮은) 늦은 시간 스탠드 하나 켜놓고 일기를 쓰거나 아침과 밤에 나만의 적막과 평온을 깨는 요소가 없어서 좋았다.


내 감정을 내 생활권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그 안정감.



더불어 새롭게 깨달은 것들이 있었는데 '24시간은 길고, 나는 생각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는 점이었다.


20대 때부터 “넌 어떻게 혼자 그렇게 잘 다녀?”라는 말을 들으며 혼밥이란 말이 생기기 전부터 자연스레 혼밥을 하고, 혼자 여행을 가고 혼자 다니는 것들이 너무 익숙해서 당연히 4박 5일 정도로는 그런 헛헛함을 느낄 리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너무 약속을 촘촘히 넣은 탓인지, 여행하는 기분이라고는 했지만 24시간을 오롯이 혼자 보내는 것은 여행이나 호캉스와는 또 달랐다.


혼자서 잘 놀고 (징할 정도로) 잘 먹었는데도 ‘이렇게 평생 혼자 잘 있을 수 있을까?’란 불안감조차 들었더랬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혼자 지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또한 내가 얼마나 수많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얽매여 살았는지, 얼마나 현재에 머물기 힘들어하는 사람인지도 새삼스레 깨달았다. 지금의 이 자유와 편안함에 집중하기보다는 내일모레 콘서트, 소량으로 나오는 굿즈 살 걱정, '돌아가면 다시 집은 덥고 앞 집은 또 창문을 열고 새벽에 시끄러울 텐데' 하는 걱정, 그리고 또 다른 걱정 A 걱정 B 걱정 C…


지금 이곳에 집중하기란 참 어렵나 보다.






짧은 쁘띠 독립을 경험하며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폭염경보가 내리던 일주일 동안 더위 안 먹고 시원하게 잘 보낸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나흘 동안 새로운 나를 알게 된 것 또한 수확이라 할 수 있으려나?
나는 내 생각보다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었고, 혼자 있으면 생각보다 귀찮아서 안 챙겨 먹고, 근데 또 이왕 만들어 먹으면 생각보다 요리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잘은 못하지만.


마흔 해 가까이 살았는데 아직도 나를 너무 모르네.



물론 작고 귀여운(?) 해프닝도 있었다. 날이 좋아 문 활짝 열어놓고 동네 카페 다녀온 사이에 갑자기 국지성 폭우가 쏟아져 바닥이 반쯤 물바다가 된 것이 아닌가! 남의 집 바닥 망칠까 봐 심장이 철렁했다. 하필 흔치 않은 나무 바닥이라 폭싹 젖어서… 물걸레가 없어 대신 다이소에서 쟁여둔 키친타월 반 통을 순식간에 써버리면서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런 해프닝 정도 있어줘야 기억에 남는 법이니?


뻥 뚫린 16층의 고층에서 바라보는 비 개인 여름 노을,

그리고 여의도까지 탁 트인 하늘을 봤을 때의 그 해방감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내 선택으로만 가득한 24시간, 어서 다시 느끼고 싶은 소중한 일상의 자유,
가까운 미래에 어서 다시 잡을 수 있기를!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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