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릉역에서 신논현까지 하염없이 걸어간 어느 겨울밤
이 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겨울밤 테헤란로에 덩그러니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2024년 11월은 오랜 버킷리스트를 이루던 한 달이었다.
무려 여덟 해 넘게 노래를 불러놓고 여러 이유로 가지 못했던 미국 여행. 드디어 여러 타이밍이 맞아떨어졌고, 현지 친구를 믿고 ‘30대가 가기 전에!’하며 전재산 탈탈 털어 다녀온 오래된 버킷리스트였다. 이 무렵은 이 여행 하나만 보고 버티면서, 다녀오면 조금씩 이직 준비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첫 장기 휴가를 앞두고 업무 상 ‘빵꾸’가 나지 않게 몇 주에 걸쳐 여분의 콘텐츠를 쌓아두고, 필요시 인수인계 대응 등 만반의 준비와 여러 우여곡절 끝에 잘 다녀올 수 있었다.
볕도 들지 않아 날씨도 모를 어느 골목의 사무실에 있다가 마주한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엄청났다. 그야말로 눈이 부시다 못해 타 들어가는 햇빛이었다. 그동안의 모든 불안이니 힘듦이니조차 그 강렬하고도 쨍한 햇살에 살균이 된 것인지,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져 의욕을 다지면서 새 마음 새 각오로 다시 시작하려던 연말이었다.
2024년 12월 초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를 수 없는 대국가적 사건으로 인해 외부적으로 엄청난 불안과 공포의 시간들이 쏟아졌다. 어렵게 다짐한 결심이 흔들릴 정도로 회사의 분위기도 묘하게 바뀌던 무렵, 갑자기 떨어진 마케팅 캠페인을 수행하기 위해 오랜만에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었다.
마케터였기에 당연히 다른 업무 만사 제쳐두고 한 주 동안은 이 일이 ‘되게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뜻이 맞는 팀원들끼리 마지막 불씨를 태우듯, 유저를 불러들일 이런저런 방법을 고민하며 실행하려 했다. 명확한 것 하나 없는 환경이었지만 오랜만에, 아니 사실 거의 처음으로 정말 스타트업처럼 ‘안 되는 것을 되게, but 팀원들과 머리 맞대어 즐겁게!’ 몰입해서 일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서로 다른 직군끼리 모여 일주일을 회의실에 골방처럼 갇혀있었는데, 그럼에도 입사 이후 거의 처음으로 다들 눈이 반짝이던 시간이었던 기억이 난다.
난 이 일을 싫어해서 괴로운 줄 알았는데, 일 자체가 싫었던 게 아니었구나.
그렇게 준비한 캠페인 일정과 내용들을 노션에 최대한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슬랙으로 보고하고 연말까지 일정 목표치도 세워서 원활하게 진행 중이었다. 그 난리가 나기 전까지는.
사실 시간이 꽤 흐르기도 했고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케터로서 이메일과 콘텐츠, 그 안의 각각의 요소들이 타깃에게 어떻게 닿아야 하는지, 어떤 지점에서 후킹이 일어나야 하는지, 그를 위해 어떤 구조적 세팅이 필요한지 나름의 근거를 들어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내내 그랬듯 거대한 벽 앞에서 그 모든 설명은 단 0.01%도 닿지 않았다.
회사는 나의 일을 하는 곳이 아니니 내 의견이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 너무도 당연한 일.
하지만 동아리가 아닌데 적어도 일이 어떻게든 되게끔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물며 한 조직의 리더라면. 당시 나의 소원은 단 하나였다. 제발 일을 합시다, 싸우지 말고…
내 실력이 부족했는지, 근거가 부족했는지, 설득에 실패한 건지, 혹은 원하는 대로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하지 않은 탓인지.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캠페인에서 배제되었다.
마케팅 캠페인인데 마케터가 빠졌네요, 그것도 나는 모른 채로 하핳.
적어도 이런 결정이 내려졌다면 담당자 본인에게 알려야 하는 거 아닌가?
회의실에서 들은 것도 아니고 슬랙으로 통보당한 것도 아니고, 회의에 참여한 다른 팀원 분들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그 이후의 시간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 일과 진심, 일주일의 시간이 모조리 부정당했다는 생각에 도저히 그대로 집에 갈 수가 없었다. 프로젝트를 일주일 내내 같이 진행한 팀원 분과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었지만 다른 일정이 있었고, 그렇다고 분노와 허탈함이 머리끝까지 찬 이 상태로 지하철을 탈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랬듯, 모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제한된 인력과 연말이라는 특수성, 그리고 빠듯한 일정으로 인해 어떻게든 되게끔 스케줄에 맞춰 일이 나가게 하려면 최소한의 기획 문서와 R&R이 필요했다. 사람들을 모으고, 역할을 나누고, 일정에 맞춰 일을 돌아가게끔 하는 것.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는데, 이번에도 ‘늘 그렇지 뭐’하고 넘기기에는 내가 너무 진심이었나 보다.
그리고 너무 오래 시달려 지쳐있었나 보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그날의 그 무력감과 절망감, 그리고 분노가 아직까지 꽤나 선명하게 기억난다.
영하 8도의 날씨에 선릉역에서 강남역까지 걸어갔다. 한 잔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약속까지 시간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해준 동료 덕분에 다행히 혼자는 아니었다. 걸으려고 걸었다기보다는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그리고 그 절망과 무력감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서 같이 ‘한 정거장만’ 하며 걷다가 그 긴 거리를 그 추운 겨울에 걸어갔나 보다.
차디찬 테헤란로를 하염없이 걸으며 같이 울다가, 욕하다가, 웃다가, 그렇게 조금은 후련하게 그 엉망진창이었던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이었다. 과거의 내 업보를 갚기 위해 ‘죽어도 버텨야 해’ 하며 버텨내던 시간에 마침표를 찍어야겠다고 결심했던 날은.
지금 생각하면 온라인 게임인 마인드가 부족했나?
그냥 영혼이고 간이고 쓸개고 빼고 시키는 대로, 마치 조금 성능 좋은 인간 GPT 마냥 그대로 옮기기만 했으면 내 마음이 조금은 편했을까? 그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냥 눈 딱 감고 다녔으면 됐는데.
회사라는 공간에서 내가 자연인으로서 존재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쓸모 있는 존재, 쓰임이 되는 존재,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단 20%라도 진심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당시의 내겐 필요했나 보다.
… 이러니 이 정글 같은 스타트업에서 살아남기가 힘들었나? 떼잇 나약한지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미처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많으니 그 이야기들은 그 겨울날 걸었던 길 저편으로 넘기기로 하자.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P.S. 덧붙이는 이야기
강남역에서 각자 헤어지고 아지트 같은 공간에서 스스로를 조금 다독인 후에 집에 가고 싶었다.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서 지친 마음을 녹이고, (여전히 영혼은 나간 채) 텅 빈 눈으로 신논현역을 향해 걷다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어..! 혹시…!?”
라는 말을 듣자마자 ‘괜히 강남역으로 와서, 또 도믿인가’ 하며 화부터 치밀었는데, 알고 보니 한 달 전 미국 요세미티 공원 현지 투어를 같이 하던 분이었다. 이 인파에서 대체 어떻게 알아보셨냐고 묻자 폰에 달린 강아지 그립톡을 보고 '혹시'하는 기대감으로 말을 거셨다고…!
고작 한 달 사이에 그 반짝거리고 해방감에 행복해하던 나는 사라지고, 하필 가장 초라할 때 마주친 상황이 민망했지만,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어떻게 하루 같이 다니던 인연을 한 달 뒤 서울, 그것도 이 사람 미어터지는 강남역 한복판에서 마주치다니! 그것도 지금 바로 이 시간에!
그렇게 마주치고 길게 대화하진 못했지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카톡을 보냈다.
사실 개인적으로 참 힘든 하루였는데, 덕분에 몽글한 마음으로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이 기적 같은 해프닝 덕에 그날 찢어진 마음에 작은 반창고를 붙인 채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그 분과 그 이후로 다시 마주치는 일은 없었지만,
여러모로 잊지 못할 2024년의 12월 겨울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