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회사 뒷담을 하려고 이 글을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쓰다 보니 끝이 없네.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은 수도 없이 있었지만, 그중 탑은 스무 명도 안 되는 조직에서 이 년 동안 팀이 네 번이나 바뀐 것이 아니었을까?
12월 결심 이후 퇴사 타이밍을 엿보던 즈음 다섯 번째로 팀을 바꾸라고 하던 날,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전달했다. 그나마 어떻게든 이어가던 기존 업무들에서 전부 손을 떼고 또 새로운 팀으로 (그마저 이번에는 성격이 전혀 다른) 가라고 하길래 꿀꺽 침을 삼킨 후 나지막이 전달했다.
죄송한데 다음 달 중에는 나갈 생각이라서요.
그렇게 일찍 밝힐 생각은 아니었는데.
예정보다 이른 퇴밍으로 인해 조금은 편해지나 했는데 이상하게도 가장 힘든 시간이 되었다. 여태까지 내가 봐온 퇴사 직전 사람들은 모두 전역 앞둔 말년 병장처럼 평온해 보였는데, 기존 업무도 마무리 지어야 했고 새로 시작한 콘텐츠 업무와 (여태까지 거의 전무했지만) 혹시 모를 어려움이 없도록 철저히 인수인계까지 제대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퇴사 의사를 꽤나 여유 있는 기간을 두고 공식적으로 밝혔음에도, ‘업무 중단 후 새 프로젝트 투입’이라는 이유로 (새로운 팀이 될 예정이었던) 팀원 분들과 호출되었다. 팀원들끼리는 팀 상관없이 잘 지냈던 것이, 그 안에서 좋은 관계를 쌓았던 것이 유독 이 조직을 떠나기 힘들게 했지만, 업무적으로는 결이 다른 팀원분들과 함께 외딴섬처럼 불려 온 것이 편치는 않았다.
길어야 한 시간 정도면 끝나겠지 싶었고, 무엇보다 난 곧 나갈 사람이고 우리 팀도 아니니 이 팀이 오랜 시간 감내해야 했던 설움이나 업무적 비효율성, 그리고 대표와의 관계 그 모든 것에 입 다물고 있으려 했다. 어쨌든 나가는 순간까지는 회사의 월급을 받는다면 뭐가 되었든 필요한 일에 투입되는 것이 온라인 게임인의 순리니까.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서로 최고조로 쌓인 감정들이 사방에서 터지기 시작했고, 피 튀기는 그 격한 감정들 사이에서 가능하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심정적으로는 이 팀의 입장에 공감도 됐고, 일 년 넘게 도돌이표처럼 논의하며 협업을 도모했던 문제였기에 지지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투명인간처럼 앉아있을 바에야 그냥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 시간 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엄연히 따지면 '나의 일'도 '우리의 일'도 아니었으니까. 서로의 일에 대한 존중과 경계가 뒤엉킨 상태에서 괜한 오해만 불러일으킬까 봐 말을 삼켰다.
그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말이 아니라 감정들만 한 시간 넘게 충돌하던 그 장면은 마치 엄청난 돌덩이들끼리 앞뒤로 밀치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나는 왜 여기에 불려 왔지...?
대표가 가져온 새로운 프로젝트는 3주 뒤면 나갈 내가 몇 주 안에 해결할 수 있었던 일도 아니었다.
그냥 'OO 하세요' 하면 조용히 그 일이나 하다 가려했는데...
원활한 협업을 위해 두어 달 전부터 시작한 전사 회의 이후, 각 팀에서 협업이나 업무 요청이 오면 기꺼운 마음으로 달려가, 그동안 부족해 보였던 부분 및 필요한 자원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 나누며 조금씩 방향이 보이는 듯했다.
그래서 잠시 고민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같이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다시 느껴버렸거든.
하지만 이 날은 한 시간이 넘어가고 심지어 한 시간 반이 넘어가도록 논의는 무엇 하나 진전되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그 자리를 엎고 나오고 싶었다.
‘어차피 안 들을 거잖아’
‘어차피 안 들을 텐데’
‘어차피 막을 텐데’
‘어차피 안 될 텐데’
온갖 부정적인 문장들만 머리 위로 튀어 오르더니 갑자기 숨이 막혔다.
정확히는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아르바이트까지 포함하면 스쳐간 회사가 몇 십 개인데, 일을 하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서러워 눈물이 나거나 화가 나서 분기탱천한 적은 있었어도, 이렇게 숨이 막힌 적은 처음이었다.
‘이상하다…?’
그럼에도 가능하면 회의 -라고 부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를 끊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세 평도 안 될 그 좁은 회의실 위아래 양옆 360도에서 벽과 천장이 몸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고, 체한 것도 아닌데 토할 것만 같았다.
이러다간 진짜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진풍경을 만들 것만 같아서, 도리가 아닌 걸 알면서도 말을 끊고 손을 들었다.
정말 죄송한데, 제가 지금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먼저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
하고 두세 문장 이내로 실무진으로서의 의견을 전달하고 ‘필요한 업무 및 지원에 대해서는 가능한 만큼 모두 하고 갈 테니 추후 정리해서 말씀해 달라’라는 말과 함께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겨우겨우 회의실을 뛰쳐나오자마자 랩탑을 안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쪼그려 앉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을 되살려 이럴 땐 숨을 깊게 두 번 내쉬라고 했던가, 누가 보든 말든 사무실 문 앞에 쪼그려 앉아 깊은 숨을 마셨다 들이쉬고 다시 마셨다를 몇 분간 반복하면서 겨우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슬픔은 호흡을 무너뜨린다더니,
2년 가까이 무수한 말들을 하지 못하고 삼키다 삼키다 결국 숨과 함께 삼켜버렸나 보다.
그래서 그게 나를 잡아먹었나 보다.
사실 슬롯초년생 때나 다른 온라인 게임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필요한 경우에는 싸우기도 했다. 시비를 털거나 감정적인 싸움이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이 되게끔’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정당하게 주장해야 할 때에는 생각보다 목소리를 많이 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 모든 것이 무無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사라졌나 봐.
정신을 차리고 물을 마시고 숨을 다시 쉬고 나니 회의는 끝나있었고, 같이 회의했던 팀의 팀장님이 걱정 어린 안부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그 회의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무슨 말을 했었는지 그때도 지금도 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그 공간에서의 한 시간 반은 통으로 기억에서 지워졌다. 겨우겨우 붙잡던 마지막 끈이 터진 것만 기억이 날 뿐. 그 이후로 그 팀이 하던 모든 업무는 스탑되었다고 들었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매출을 내던 캐시카우였음에도.
그 무렵엔 다시 나약해진 내가 너무 싫었었다. 그거 하나 못 버티냐면서.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면 몸이 이미 알고 있던 거지, 더는 삼키지 말라고, 더는 욱여넣지 말고 뱉어내라고 토해내라고.
그 이후 (내 기억이 맞다면) 대표와 마주친 일은 없었다.
퇴사 전후로 DM을 몇 번 주고받긴 했지만 퇴사 날조차 외근인지 마주칠 일은 없었다.
그렇게 어딘가 찝찝함을 남긴 채, 그곳에서의 시간은 끝인지도 모를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