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업보를 꾸역꾸역 갚아야만 했던 시간
퇴사한 지 벌써 일 년도 훨씬 넘은 전 회사는 그전 공백기 기간 동안 꽤 긴 시간을 들여 어렵게 입사한 곳이었다. 사실 최종 면접에서 어딘가 설명하기 어려운 ‘쎄함’을 느끼긴 했지만 (그때 도망갔어야…) 그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넘겨버렸다. 오랜만에 여러 조건이 맞는 곳에서 나를 필요로 해주었다는 사실이 좋았다. 드디어 선택받았다는 느낌, 국내 스타트업인데 영어로 오퍼레터를 보내준 사소한 점까지도 당시의 내게는 퍽 벅차게 느껴졌었다.
인터뷰 당일에는 네트워크 문제로 대화가 매끄럽지 않았고, 오퍼레터를 보내준 팀장은 내 입사 후 만 세 달이 되기도 전에 퇴사 의사를 내비쳤다. 어쩐지 수습 기간 내내 내게 다른 회사를 권하더라니. 하지만 긴 공백기 후 다시 일을 시작한 나는 그런 시그널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나 보다.
‘잘해야 해’
‘빨리 성과를 보여야만 해’
압박에 휩쓸려 의욕은 넘쳤다. 이전 회사에서 배운 프레임워크를 활용해 전략을 제안하기도 했고, 기본적인 디자인 자료조차 없는 환경에서 광고를 시도했다. 지금처럼 AI가 이미지를 뚝딱 만들어주던 때도 아니어서, 부족한 자원을 하나하나 가내수공업으로 메꿔나가며 결과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황무지에서 어떻게든 뭐라도 심어놓으면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 간절한 마음으로.
굳이 그 지난하고 버거웠던 시간들을 모두 적을 필요는 없겠지.
몇 번의 퇴사를 결심했는지 모르겠다. 과거의 내 지리멸렬 조각난 경력들에 대한 업보의 시간이라는 마음으로, ‘환경만 받쳐주면 난 이렇게나 버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떻게든 버텨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도 많았고, 제대로 성과라는 것을 낼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왜 성과가 안 나오냐?’는 말로 요구받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내고 싶었다. 문제와 일을 정의하고, 역할을 나누고, 마감일을 세우고, 목표와 KPI와 맞는 태스크 단위로 쪼개서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고자 애썼다.
여태까지 크고 작은 조직에서 정말 여러 일을 해왔었다. 고작 몇 달 있던 곳에서도 결과를 만들고, 그 경험을 이직에 보탬이 되게 만들어 다음 기회로 이어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에서는 나조차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이, 비 오는 날 자욱한 안개처럼 흐려져가고 있었다.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안고도 초기 스타트업에 온 이유는 하나부터 열까지 시키는 일을 그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함께 만들고 방향을 같이 세워나가며 힘들어도 복작복작 그렇게 같이, 제품과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고 싶었다.
어찌어찌 일 년이 지나고, 계절이 몇 차례 바뀌었다.
스무 명도 되지 않는 그 작은 회사에서 팀이 네 번이나 바뀌었지만, 그래서 제대로 프로젝트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 점만 빼면, 잠시나마 회사에도 나에게도 조금의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가을이 오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떨어지던 단풍들처럼, 중심 멤버였던 공동창업자들마저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끝끝내 메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갔다. 의사결정을 같이 바카라임질 사람도, 제품에 애정과 바카라임을 가지고 균형을 잡아줄 사람도 하나둘 사라졌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회사의 공기가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