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과 결정핵
그날은 무언가 무료한 평일이었다. 커다란 과학관에 관람객도 별로 없는 그런 하루. 아무것도 변할 게 없어서 주변이 회색처럼 흐릿해지는 것 같은 날. 그런데 그때 연두색 유니폼을 입은 여성분이 다가왔다. 나이는 대략 40대 즈음되었을까. 수줍게 다가와서는 해설 들을 수 있는 게 있느냐고 물으셨다.
당시 들을 수 있는 해설은 총 세 가지가 있었다. 다만 내가 담당하는 해설만 끝난 시간이어서 그렇게 설명을 드리고 다른 시간대의 해설 프로그램을 안내했다. 그런데 그분은 대번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제가 과학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연차 내고 일찍 왔어요. 여기 강의 들으러 오는 김에 해설도 다 들으려고. 근데 하나가 이미 끝났군요...."
그때 시간은 오후 2시 30분이었고, 그분이 말씀하신 강연은 그로부터 한참 후에 하는 거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원래 시간 지나면 안 해드리는데, 그냥 해드릴게요. 이리 오세요. 그거 해설 제 담당이거든요. 운이 좋으세요."
편광현상에 대한 설명이 끝났을 때 그분의 눈빛을 기억한다. 반짝이는 눈이었다. 그분은 필기까지 하면서 들으시다가 질문을 하기도 했다.
"너무 재미있어요. 너무! 근데 짧아서 아쉬워요. 다른 거 아시는 거 하나만 더 알려주시면 안 돼요?"
결국 나는 내가 아는 지식을 총 동원해 과학관 곳곳에 숨은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대화가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분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원래 하는 일은 지질공원 해설사인데 과학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과학 도서도 꾸준히 보고 강연을 쫓아다니며 듣는데, 그 기간이 벌써 7년째라는 것이다. 진심으로 감탄하는 마음이 들어 양손으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어떤 일에 몰두하며 눈을 반짝이는 사람들에게선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기운을 받아선지 그날 오후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은 줄고, 생존과 직접 관련 없는 일은 하지 않게 된다. 갈수록 호기심을 품을 만한 새로운 일이 없기도 하고, 체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머리가 희끗한 '덕후'를 보면 그 몰입의 주제가 무엇이든 일단 경외심 비슷한 마음이 든다. 저분은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치 보드라운 세상만 알고 지낸 아이 같은 눈빛을 할 수 있지. 부러운 마음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가 내 관심 밖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기꺼이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마치 아이를 대할 때처럼. 그래서 가끔,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든 채로, 관심 없는 이야기를 한참 듣기도 한다.
어른에게서 여전히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 나는 '결정핵'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결정은 소금이나 다이아몬드, 수정처럼 원자들이 질서 있게 쌓여 만들어진 물질이다. 그런데 결정이 만들어지려면 먼저 작은 씨앗 하나가 필요하다. 과학에서는 이를 결정핵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주변 물질들이 하나둘 달라붙기 시작하면 결정은 점점 몸집을 키운다.
흥미로운 점은 결정이 일정한 크기에 도달했다고 해서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변에 쌓일 물질이 남아 있고 결정핵이 무너지지 않는 한 계속 자란다.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성장에서 제외되는 법이 없다.
물론 사람은 실제 결정과 달리, 무엇에 시간을 쓸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전에 운동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F45 (고강도 인터벌 운동)에 참여했는데 앞에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서 있었다. 친구가 나를 쿡 찌르더니 속삭였다.
"저분, 우리 엄마랑 나이 같다. 근데 운동 엄청 열심히 하셔. 진짜 대단하지."
그분은 주변의 젊은이들보다 느렸지만 자신만의 중량으로 익숙하게 운동을 했다. 본인 연령대에는 생소한 고강도 운동을, 그것도 아들 딸뻘 친구들과 함께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와 열정이 필요했을까 싶었다. 음, 어쩌면 이전부터 꾸준히 다른 운동을 해오셨던 것일 수도 있다. 그분의 서사를 직접 듣지 않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용기와 열정은 분명 오랜 시간 계속 쌓여오던 것이었을 거라고 추측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비록 앞서 수많은 결정들에 대해 찬사를 보낸 직후라 민망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의 열정을 언제나 긍정적으로만 본 건 아니라는 걸 고백해야겠다. 근무하는 곳에는 고학력 경력 해설사라고 해서 과학계에 오래 종사한 분들이 자원봉사로 해설을 하러 오신다. 그런데 그중 한 분은 열정이 정말 넘쳐서, 관람객을 아예 끌고 가서 5분이고 10분이고 해설을 한다. 좋아하는 관람객도 많지만, 부담스러워하는 분도 계셨다. 열정이 많은 사람은 눈에 띄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질투받기도 쉬워서, 나 역시 그분에게 처음에는 좋지 않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저렇게 까지 안 해도 되는데, 하면서 말이다.
하루는 그분이 어디서 받으셨다며 직원들에게 참깨를 나눠주신 적이 있었다. 나는 일단 받아 들고 그분이 안 보실 때 습관적으로 비웃었다.
"아니, 저분은.... 너무 열심히 하시네요. 이거 참깨도 중국산이에요."
내가 옆에 있던 동료 선생님한테 속삭이자, 동료의 말이 벼락처럼 꽂혔다.
"중국산이든, 한국산이든 감사하게 받아. 마음이 중요한 거잖아."
그때의 부끄러운 마음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뒤로 그분을 자세히 관찰해 보니 이전과 다른 게 보였다. 자신이 아는 과학 지식을 설명할 때의 즐거운 표정과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야, 그분의 해설에 즐거워하는 관람객의 표정도 볼 수 있었다. 사실 크리스마스 같은 휴일에도 자진해서 산타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며 사탕을 나눠주고 과학을 알려주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더 나이 들어 저 해설사 선생님의 나이가 되면, 나는 저런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반성과 경외심이 번갈아 들었던 시간들이었다.
어린 시절 바라본 어른은 완성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 존경하게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완성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과학을 배우러 연차 내는 사람, 낯선 운동에 도전하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자신의 행복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
나이보다 눈빛이 먼저 보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