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곡면
최근에 결혼한 친구를 며칠 전에 만났다. 자기는 내 결혼식에도 못 오고 부조도 못 했는데, 왜 돈을 보냈냐고 했다.
"나야 당시에 스몰 웨딩을 했고, 축의금도 안 받는다고 했었잖아. 원래는 직접 가서 네 드레스 입은 모습 예쁘다고 했어야 했는데 못해서 미안해."
친구는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며 그 가게에 있는 여러 디저트를 사 주었다.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좋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주말에 일하고, 아이 둘도 있는 입장을 이해해 준 친구가 무척 고마웠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출산과 육아로 이어졌다. 친구는 아이가 너무 예쁜데 직접 낳아 기르려니 두렵다고 했다. 스스로 사랑하는 모습이 있는데 그게 사라질까 염려된다면서 말이다. 그건 꼭 그 친구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출산 직전까지 내가 했던 고민이었고, 아직 아이가 없는 친구들도 다 갖는 고민이었다. 솔직히 말했다. 아이를 낳는 순간 내가 사라지는 게 맞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쉽거나 그렇지는 않다고, 또 다른 세계가 열릴 거라고도 말해주었다. 말을 하면서도 뻔하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그게 말 뿐인 위로로 다가가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를 낳으면 내가 사라질 것 같아.'
사실 그건 고민이 아니라 예언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당장 나만 해도 아이 없는 일상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 없을 때와 비교하면 내 삶은 더 풍성해졌다. 일단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을 다시 배운다. 아이의 기쁨, 슬픔, 놀람, 고통은 30년 넘게 겪어온 내 감정보다 훨씬 솔직하게 드러난다. 아이의 반응이 전이돼, 나 역시 다시 한번 모든 감정을 다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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