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와 흡수
우리 집에는 로봇 장난감이 꽤 많다. 첫째 아이가 로봇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는 인형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최근까지는 뚜렷한 호불호가 없었어서 첫째의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꽤 흥미로운 모습을 봤다. 둘째가 로봇으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기야, 맘마 먹자."
둘째가 조금 큰 로봇을 움직이며 작은 로봇에게 말하자, 동생과 같이 놀고 싶었던 첫째가 다른 로봇을 가지고 와 말했다.
"어, 여보. 그럼 나는 잠깐 출동하고 금방 올게!"
전투와 육아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로봇들은 애도 돌봤다가 악당과도 싸우느라 몇 배로 바빠 보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누군가는 전투에, 누군가는 일상에 집중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첫째가 악당을 물리치고 돌아오자 둘째는 "아기가 아빠 보고 싶대."라며 작은 로봇 앞으로 첫째를 데려갔다. 악당을 물리친 영웅도 둘째가 있는 집에 돌아오면 밥을 먹고 아이를 돌보는 아빠가 되는 셈이었다. 둘은 이미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같은 장난감 가지고도 저렇게 다르게 놀다니. 같은 배에서 나온 '아이들'이지만 마냥 하나로만 묶일 수는 없다는 걸 다시 느꼈다. 아이들의 차이점을 보면서, 나는 빛의 반사와 흡수에 대해 떠올렸다.
빛은, 같은 곳에서 왔다고 해도 어디에 가 닿느냐에 따라 흡수되거나 반사된다. 그것은 물질마다 어떤 파장은 반사하고, 어떤 파장은 흡수하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무지갯빛 가시광선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만약 우리가 빨간색을 본다면 그것은 그 물체가 빨간색만을 반사시키고 나머지 빛을 흡수한 결과이다. 다른 색도 마찬가지다. 이를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사람 역시도 똑같은 자극일지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같은 로봇 장난감으로도 전투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러나 선생님이든 부모든, 특히 누군가에게 자극을 주려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쉽게 잊는 것 같다. 자극을 받아들일 사람에게 최대한 좋은 것만 주려는 욕심이 종종 앞선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독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가족은 바카라을 구매하기보다 빌려 보는 편이다. 아이들이 읽을 바카라은 주로 남편이 전담해 빌려오는데, 그가 바카라을 고르는 기준이 한동안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가 요즘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북'이나 '아이들이 관심 있어하는 소재'만 보고 바카라을 골라왔기 때문이었다. 얼핏 보면 무슨 문제가 있나 싶지만, '소재'만 신경 쓰다 보니 연령대를 고려하지 않은, 너무 어렵거나 흥미 위주의 바카라들도 섞여있는 게 문제였다. '그림은 거의 없는 바카라', '단어가 너무 어려운 바카라'들을 아이들이 가져와 읽어달라고 할 때, 그렇게 난감할 수가 없었다.
'요즘은 충분히 유익하면서도 아이들 연령에 잘 맞는 바카라도 있으니 활용하면 좋을 텐데.' 혼잣말을 꾸역꾸역 삼켰다. 누군가 전담한 일에 의견을 되도록 달지 않는 것은 우리 부부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대신 그가 바카라을 대여할 때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바카라들을 함께 대여해 달라고 요청하는 식으로 의견 표현을 했다. 그러나 내가 고른 바카라이 늘 효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자기가 관심 생기는 바카라만 가져와 읽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보통 열 권가량의 바카라을 빌렸다고 한다면, 아이들이 가져와 읽어달라고 하는 바카라은 두, 세 권에 그친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읽어주고 싶었던 바카라을 슬쩍 권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아 성교육 바카라이 그런 종류였다.
"이거,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 한번 읽어볼까?"
그랬더니 아이들은 단호하게 엄마의 의지를 거부했다. 대신 로봇이 악당을 물리치거나 귀여운 토끼가 산바카라하는 바카라을 들고 왔다. 내 선택의 바카라이 아이들에겐 전혀 선택받지 못한 채 다시 도서관 바카라장에 꽂히고 나면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더니. 읽지도 않는 바카라은 의미가 없네...' 같은 바카라에서도 누군가는 오래 남을 한 문장을 얻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당연한 사실인데도 내 아이 앞에서는 잊고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거기서 무슨 바카라을 읽어달라 가지고 오든 그냥 둔다. 물론 전체 연령가가 아닌 영상물에 꼭 붙는 말처럼, 최소한의 '지도'를 하며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같은 세상이 아이들 안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스며드는 걸 본다. 어떤 것은 그대로 스쳐 지나가고, 어떤 것은 오래 남아 아이를 조금씩 바꿔 갈 것이다. 그 과정은 부모가 대신할 수도, 재촉할 수도 없다.
돌이켜보면 시작은 같은 로봇 장난감이었다. 그런데 첫째는 그 안에서 영웅의 세계를, 둘째는 가족의 세계를 만들어 냈다. 같은 장난감도 이렇게 다른 세상이 된다면, 바카라도, 경험도,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모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무엇을 흡수해야 하는지 대신 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빛을 만날 기회를 만들어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빛이 아이 안에서 어떤 색으로 남는지는 조금 더 오래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