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사랑해' 라는 인증서

매일 받는 그 익숙한 말들 사이에서

by나온우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들의 가방을 정리하는 시간, 가방에 있는 수저와 물병들을 씻기 위해 가방을 연다. 글씨를 쓰기 시작한 첫째의 가방에는 유독 작은 것들이 많다. 어린이집 친구들과 서로 주고받은 편지들, 그리고 작게 작게 만들었던 색종이 접기, 색칠 놀이한 A4 용지들까지…. 하나씩 열어서 식탁 위에 펼쳐본다.


"사랑해 우리 집에 놀러 와"

"사랑해 주말에 키즈카페 가서 같이 놀자"


부모님들이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들끼리 약속을 잡고, 사랑을 말하는 아이들의 마음이란. 이제 막 글씨를 쓰기 시작해서 뭐든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들이 느껴지는 작은 쪽지들이다. 그런데 정리를 하다 보면, 꼭 첫째는 한 번씩 내게 말한다. 아빠 주려고 준비한 게 있다며, 가방 앞에서 색종이를 오려서 붙인 편지를 내게 건넨다. 하루에는 많을 땐 몇 장씩도 있는 그 편지에는 언제나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아빠 사랑해'


아이의 아빠를 향한 그 마음이 고맙고 받을 때마다 흐뭇하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같은 내용의 애정 공세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좀 무디게 만든다. 마치 공장에서 매일 찍어내는 사랑 편지인 것 마냥, 방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올 때마다 손에 들려있는 편지를 보면, 나는 의례적으로 고마워, 라고 말하고 넘어가게 된다.


너무도 자주 받는 그 작은 편지들은 소홀하게 다뤄진다. 첫째에게 받은 수많은 팬레터는 집 여기저기에 흩어진다. 그중 일부는 어디 침대 밑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하고, 가끔은 세탁기 빨래를 마친 뒤에 깨닫는다. '아, 맞다. 아까 그 편지. 주머니에서 안 뺐구나.' 이미 세탁물들은 종이 부스러기들로 엉망이 되어있다.


아기자기하게 손으로 만드는 걸 참 좋아하는 첫째는, 6살이 되자마자 동네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음을 그림으로 잘 표현했으면 하는 아빠의 바람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키와 그에 걸맞게 그림의 표현능력도 참 빠르게 좋아졌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표현력에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어느 날,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아빠 선물'이라며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선물이라고 말하는 건, 특별히 애정을 쏟아서 만들었을 때 하는 얘기였다. 그림이었다. 그 그림 속의 주인공은 첫째가 한창 빠져든 '개비와 매직하우스'의 주인공과 닮아 있었다. 반은 사람, 반은 고양이의 모습이었다. 그림의 작가는 의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아빠'라고 위에 주인공을 적어뒀다.


그림 속 반인반묘는 이렇게까지 즐거울까 싶을 정도로 활짝 웃고 있었다. 입꼬리는 끝까지 올라갔고, 눈동자는 속눈썹까지 세밀하게 그려놓았다. 눈의 위치는 원래의 모습과는 벗어나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머리 스타일은 아빠의 특징적인 머리 스타일인 꼬불꼬불한 모양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노력한 작가의 고뇌가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그 대상의 주변을 수많은 하트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이지만, 그 누가 보더라도 대상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하트였다. 어딘가 지나가다 이 그림을 봤다면, 누군지는 몰라도 그린이가 대상을 참 사랑하는구나, 라고 느끼게 될,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사랑이었다. 가슴이 뭉클해져, 첫째에게 고맙다며 꼭 안아줬다.


그러자 그걸 본 둘째가 "나도나도"를 외치기 시작했다. 자기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의미였다. 식탁 위에 큰 종이와 크레용을 올려줬더니 이내 둘째도 집중해서 무언가를 쓱쓱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뭘 그린지는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현대 미술, '혼돈의 선 긋기'였다.


어느 정도 그리다가 만족했는지, 둘째는 "자, 여기!" 하며 종이를 건네줬다. 자기도 아빠한테 뭔가 그림을 그려줬다 이 얘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기도 언니처럼 안아달라는 듯, 내 품으로 쏙 들어왔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둘째도 첫째만큼 꼭 안아줬다.


한 손에는 첫째의 반인반묘 초상화를, 다른 손에는 둘째의 추상화를 들고 있었다. 두 종이를 번갈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일까?' 육아를 시작하며 종종 머리를 스쳐 가는 생각이었다. 벅차면서도 두려운 마음.


나의 어린 시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언제나 100점을 맞던 내가 어느 날 하나를 실수로 틀렸던 날, 거의 다 맞은 그 문제들이 아니라 틀린 1개를 왜 틀렸냐 물어보셨던 그날, 그 틀렸던 문제, 그리고 엉엉 울던 내 방 침대가 아직도 생생하다. 틀려서 속상했던 나를 위로해 주고, 충분히 잘했다고 말해주지 못했고, 아직도 나는 그때의 나를 안아주기가 너무도 어렵다.


육아를 하며 어린 시절의 그 외로웠던 나와 닿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봤다. 어렸을 때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사랑해', '너가 지금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라는 말이었다. 잘하지 못해도, 좀 못나도, 그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싶었다. 예민하고 불안한 내 모습도, 그냥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는 위안.


나는 여전히 그때의 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계속 해야 한다고 느꼈다. 가족에게 좋은 걸 주고 싶어 있는 힘을 다한다. 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지쳐 쓰러진다. 그러고선 와이프에게, 아이들에게 왜 내 마음을 몰라주냐고, 서운해한다. 그들이 바라는 건 어떤 건지 바라보지도 않은 채, 스스로를 다그치고, 또 다그친다.


얼마 전, 아이를 다 키운 한 자원봉사자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애들 키워보고 나니까, 어딜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더라. 애들은 어딜 간 것보다 가서 어떤 기분이었는지만 기억하더라고." 돌이켜 보니 나 또한 그랬다. 주말, 집 앞 공원에 나가서 닿지도 않는 농구 골대에 골을 넣어보겠다고 애쓰던 어린아이가 있다. 그러다 그 모습을 본 아이의 아빠가 그 아이를 번쩍 들어줬다. 공을 던지고, 다 찢어져 한쪽만 달랑거리며 남아있던 그물이 찰랑거렸던, 장면이다. 일상의 순간, 함께였던, 행복한 순간.


방바닥에, 침대 밑에, 컴퓨터 바카라상 위에 굴러다니던 사랑의 인증서 같은 편지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읽어봤다. 잘못해서 아빠가 화가 났었을 때는 '아빠 화나게 해서 미안해', 나한테 서운한 게 있던 날에는 '아빠가 나랑 안 놀아줘서 속상해', 하지만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아빠 사랑해', '아빠랑 함께 있어서 행복해', '아빠 고마워', 그중 가장 좋았던 건 '아빠가 너무 좋아서 어떡하지?'라는 편지였다. 이런 말은 어디서 배웠담.


그 인증서 중에 첫째의 그림을 방 한쪽에 걸어뒀다. 그리고 언젠가 둘째만의 표현이 종이 위에 선명해질 때를 기다리며, 둘째의 그림 걸 자리를 비워두었다. 언젠가 둘째의 혼돈의 추상화가 형태를 갖출 때를 기다리며.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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