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들~" "네~"

어린이집 운영위원장이 된 아빠의 이야기

by나온우

3월 새 학기의 시작에, 두 딸을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첫째는 5살에 집에서 가까운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7살까지 다닐 수 있는 곳이어서 마음에 들었고,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둘째 또한 3살이 되어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보냈다. 두 딸 모두 만족스럽게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열도 없었고, 특별히 문제도 없는데 뭐지...?' 보통 어린이집에서 오는 전화는 안 좋은 소식일 때가 많아서 불안하게 전화를 받았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셨다. 지나가면서 얼굴만 몇 번 뵈었었는데, 반가운 목소리로 말씀을 하셨다. 아버님은 뭐하며 지내시냐는 얘기, 아이들 너무 즐겁게 다니고 있다는 얘기 같은 가벼운 얘기들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원장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아버님, 어린이집 운영위원회 하실 수 있으시죠?"


며칠 전에 아이들이 가져왔던 가정통신문이 갑자기 생각났다. '어린이집 운영위원회 모집'이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조용히 폐지함에 넣어뒀던 그 종이를, 통화를 마치고 다시 꺼내어 찬찬히 읽어봤다. 어린이집 활동 전반에 대한 의견 및 회의 등을 하며 어린이집 운영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이다. 큰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감투 쓰는 건 언제나 부담스러웠다. 통신문 끝에는 '모집인원 미충족 시 임의로 요청드릴 수 있습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오죽이나 하겠다는 분이 안 계셨으면 나한테까지 이런 요청이 왔겠나 싶었다. 그래서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며칠 뒤에 열린 운영위원회 정기회의 자리에 갔다. 자리나 채우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회의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교실에서 진행되었다. 아이들에게는 딱 맞는 의자겠지만 아빠인 나에게는 엉덩이 두 개도 다 안 들어가는, 그런 크기였다. 그나마 크지 않은 키가 이럴 땐 고맙게 느껴졌다.


첫 번째 안건은 '어린이집 운영위원회 위원장 선출'이었다. 분위기가 싸했다. 아무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때 진행하시는 선생님이 "아무도 없으시면 추천받겠습니다."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엄마가 손을 들었다. 오늘 회의하며 처음 본 엄마였다. "저 아버님께서 잘하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추천합니다." 뭐지? 아빠는 나밖에 없는데? 라는 당혹감이 드는 것과 동시에 모두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온 자리에서 '어린이집 운영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감투를 쓰게 됐다. 나는 앞장서기보다 뒤에서 묵묵히 바라보는 편이다. 그게 어떤 자리든지 감투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한 내게 원장 선생님이 "크게 할 일은 없을 거예요. 한 번씩 얼굴 보는 거니까, 부담 가지지 마세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막상 해보니 대부분 선생님들이 많이 신경을 써주셔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은근히 챙겨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위원장'이 되기 전에는 내 일정이 1번이었다. 지금은 어린이집 부모 참여 행사 일정이 나오면 참석하든 못하든 달력에 제일 먼저 적어둔다. 남들은 크게 신경 안 쓰는데도 등하원때 거울을 한 번 더 본다. 별 차이는 없지만.


역시나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은 학부모 참여행사 때 앞에 나가서 하는 한마디이다. 안 그래도 주목받게 부담스러운 내게는 '축사 : 어린이집 운영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가정통신문의 글귀를 보자마자 가슴이 쿵쿵 뛴다.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쓸 텐데도 무슨 말을 하지, 혹시나 분위기가 싸해지면 어쩌지, 하며.


운동회 때는 운동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아, 여기서는 학부모의 호응을 끌어내야지' 하며 거울을 보며 손짓을 연습해 보았고, 어린이집 신규원아 입소설명회 때는 '어린이집 처음 보낼 때의 우려를 나도 알고 있어'라는 마음이 최대한 잘 전달되도록 마이크를 잡기 전까지 해야 할 말 리스트를 꼭 손에 쥐고 있었다.


어린이집 졸업식은 그 정점을 찍은 날이었다. 축사가 있어 맨 앞자리에 앉아서 둘러보니, 졸업식이라는 자리에 긴장한 아이들의 얼굴, 옆에서 훌쩍거리는 담임 선생님들의 모습에,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망했다.


강당 뒤편에 아이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온 부모님들이 촉촉해진 눈을 닦는 순간이었다. '저 부모들은 축하하면서도 얼마나 찡할까' 서부터, '내년에 우리 첫째 졸업할 때 나도 저런 마음이겠지'라는 감정 이입을 넘어선 몰입의 순간, 기어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얼굴을 비비는 척 눈물을 닦았다.


축사의 시간, 이를 꽉 깨물고 인사를 드렸다. 누가 보면 내 숨겨놓은 아이가 졸업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고 생각하며, 준비해 온 축사를 했다. 나중에 어린이집에 올라온 졸업식 현장 사진에는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의 졸업식 자리에서 혼자 눈시울이 촉촉해진 채 마이크를 쥔 내 사진이 올라왔다. 아이 친구 엄마들도 나에게 "내년 졸업식에는 위원장님 우는 거 볼 수 있겠어요~" 하고 놀리기 바빴다.


그래도 원장 선생님과의 만남에서 "아버님이 많이 도와주신 덕에 수월해요. 아버님이 운영위원장 맡아주셔서 다행이에요."라는 말에, 내심 흐뭇했다. 아이 둘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도움이 된다는 건, 주 양육자인 아빠의 평가지표에서 가산점을 줄 만한 포인트가 된다.


그리고 '운영위원장'이라는 타이틀은 학부모와의 벽을 낮추는 명함이다. 어린이집 운영에 대해 궁금한 일들이 있을 때 원장 선생님께 직접 물어보기는 좀 애매한 것들은 내게 물어본다. "이번에 소풍은 어디로 가나요?" "운동회 일정은 언제래요?" 같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 공식적으로 건의하기 어려운 것들을 내게 슬쩍 던질 때도 있다. 인간 소원 수리함이다.


의외의 장점도 있다. 원래 같이 놀아주는 '친구 아빠'의 위치였는데, 가끔 공식적인 자리에 나가서 얘기를 한마디 하거나 하면 아이들은 나를 좀 다르게 본다. 어느 날 졸업식을 마치고 한 아이가 나한테 말했다. "삼촌 그냥 놀아주는 줄만 알았는데, 대단한 사람이네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삼촌 원래 이런 사람이야!"


분명 1년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수락한 '운영위원장' 임기는, 3월 운영위원회 때 만장일치로 연장되었다. 처음의 부담스러웠던 마음은 내려놨지만, 여전히 한 어린이집의 학부모 대표를 맡는다는 사실이 부담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업으로 아이를 돌보는 아빠로서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역할이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조금이나마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회의에서 올해 어린이집 부모 활동 일정을 훑고, 예산 계획표를 보며, 엄마들 사이에서 의사봉을 두드린다. 작년에는 원장 선생님이 "어머님들~" 하고선 "아, 아버님도 계셨죠."라며 정정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올해는 같은 상황에 "어머님들~" 하면 나도 같이 "네~" 하고 대답한다.


오늘도 나는 엄마 아닌 '엄마'처럼 살아간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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