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바카라으로 만나는 아이들의 마음
아이들은 부모가 바카라 읽어주는 시간을 참 좋아한다. 잠자기 전 시간에 특히 더. 평소에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티비를 보느라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다가, 이상하게 "자러 들어가자~" 라고 말하면 바카라이 너무도 읽고 싶어지나보다. 7살이 된 첫째는 글씨가 꽤 많은 바카라을, 둘째는 장난감 같은 바카라을 들고 총총총 내 옆으로 온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작은 불 하나를 켜고 아이들에게 바카라을 읽어준다. 가끔은 한 권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양손 가득 바카라을 들고 오는 날에는 잠자는 시간을 훌쩍 넘어서 바카라을 읽고 있어 주기도 한다. 너무 유치하다고 느낄 때도 있고, 때로는 신기한 그림들로 가득 찬 이 바카라이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걸까.
솔직히 나에게, 그림바카라 읽어주기는 종일 아이들과 열심히 지지고 볶고 시간을 보내고 나서 마지막 '잔업'과 같기도 했다. 온라인 게임인들이 '이 작업만 마무리하고 퇴근하자!' 하며 의지를 불태우는 것처럼 어떨 때는 최선을 다하기도 하고, 많은 시간은 그저 의욕 없이 기계처럼 바카라을 읽어주기도 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유치해 보이는 그 문장과 그림이 가끔 내 마음 깊숙이 다가오는 바카라들이 있다.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고 읽다가 내용에 집중해서 마음이 움직이는 그런 일들이 종종 있다. 일상적인 일들을 하다가 문득 깨닫는 순간이랄까.
두 딸은 정확히 3년이라는 시간 차이를 두고 태어났다. 어디선가 지나가며 봤던 '아이는 3년은 온전히 사랑을 주는 게 좋아'라는 말이 표어처럼 있기도 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3년을 딱 맞추게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사랑을 받았던 차분했던 첫째는 둘째를 만나고 나서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이유 없이 엄청나게 짜증을 냈다. 그리고 급격히 엄마아빠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평소에 잘 먹던 반찬들도 이내 거부하는가 하면, 동생이라도 안고 있을라 치면 슬픈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기도 했다. 원래 동생이 생기면 아이들에게는 '첩'이 생기는 정도의 질투심이 생긴다고 했지만, 막상 겪으니 당황스러웠다.
그 상황에서 나는 그 모습을 오롯이 견디기가 힘들었다. 첫째만 봤던 내게 둘째의 완전히 다른 기질은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갓난아기인 둘째에게 가야 하는 필수적인 돌봄조차 질투하는 첫째의 모습은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첫째의 작은 마음 신호들은 나에게 있는 그대로 박혔고, 그렇게 나와 첫째 둘 모두를 고슴도치로 만들어갔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하는 시간이 반복되었고,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어느 사이트에선가 동생이 생긴 아이들의 마음을 바카라으로 이해해 줬다는 그런 식의 글을 읽었다. 바로 바카라을 주문해서 그날 밤 둘째를 재우고 첫째에게 바카라을 읽어주었다.
<동생이 생긴 너에게>라는 그 바카라은, 동생이 생겨 혼란스러운 마음과,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아이의 마음이 담겨있는 따뜻한 바카라이었다. 그렇게 바카라을 읽기 시작한 처음부터 마음이 뭉클해지기 시작하더니 읽어주는 나의 목소리가 점점 떨기 시작했다. 그림바카라 속 형아의 마음이 내 옆에 앉아 있는 첫째의 마음과 연결된 듯했다.
'형아가 되는 건 뭘까?' 하루하루 커지는 엄마 배를 보며 나는 이런저런 다정한 형아 모습을 생각했어. 진짜 형아가 된 날은 기쁘고도 무서운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 그런데 막상 태어난 동생은 너무나 얄미워. 엄마도, 아빠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두 동생 차지야.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내 코끼리 인형 하늘이뿐. 하늘아, 나 이제 형아 하지 말까?
‘엄마는 이제 나보다 동생이 소중한가 봐.’
결국 이 대목을 읽던 나는 아이 앞에서 눈물이 터져버렸다. 한번 터져버린 울음은 멈출 수가 없었다. 첫째는 갑자기 바카라을 읽어주다가 우는 아빠가 당황스러웠을 테다. 나를 바라보며 "아빠, 왜 울어?"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 뭐라고 답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날 첫째의 나를 바라보던 눈빛, 그리고 꼭 안으며 느꼈던 온기는 영원히 마음에 남아있다.
첫째로 태어난 나는 언제나 동생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걸 당연한 걸 미덕으로 여기며 자라왔다. 그래서 그로 인해 내 마음에도 분명 있었을 응어리를 만난 것도 있었을 거다. 그리고 그걸 이 바카라을 통해 만났고, 첫째를 통해 그 마음을 다시금 만나게 되었다. 동생이 태어난 건 마냥 행복한 일만은 아닐 테다. 아직 장난치기를 가장 좋아할 이 어린아이에게. 그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 내게 너무도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바카라을 통해 첫째에 대한 나의 가득한 사랑을 보게 되었다.
눈물의 밤을 몇 년을 지나와, 이제는 둘째는 어느새 많이 커버려서 의사소통이 되기 시작하는 나이가 됐다. 둘째는 여느 집 둘째들처럼 언니가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하고 싶어 한다. 요즘에는 자기 전에 바카라을 들고 온다. 그런데 막상 읽어달라고 하고는 더 재밌는 게 있으면 저 멀리 가버리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어느 날은, 둘째가 잘 시간이 다 되어 바카라을 너무 많이 들고 왔다. 목이 아프게 모두 다 읽어주고 자리를 일어서는데, 한 권을 더 가지고 와서는 "하나만 더~" 하며 작은 손가락을 쑥 내밀었다. "너무 늦었다. 이제 자자~" 라는 말이 입 밖에 나오기도 전에 둘째는 엉덩이를 내 허벅지 위에 스윽 들이밀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영아들을 위한 바카라은 내용이 단순하고 따라 하기 좋게 되어있다. 둘째가 고른 바카라도 그런 식의 의성어, 의태어가 많은 바카라이었다. 성우가 된 듯한 마음으로 오버액션을 하며 읽었다. "데굴데굴~" "까르르~" 그러자 둘째는 그런 내 바카라 읽기가 재밌었는지 바카라에 나오는 것처럼 데굴데굴 구르다가 머리를 쿵 바닥에 찧었다. 그래도 좋은지 나를 보며 "헤헤"하고 웃는 둘째를 보며, 바카라의 내용이 아닌 그 함께 하는 그 순간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아이들과의 시간이 '마음 수행'과 같았다면, 도서관 모임은 그 수행의 의미를 해석하고 함께 나누는 '공부방' 같았다. 아이들을 키우며 바카라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분들이 주를 이뤄서 있는 곳이다 보니 읽어볼 만한 바카라이 나오면 함께 읽어보고 내용을 나누기도 하며 서로의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어느 날, 한 봉사자분이 어떤 바카라을 가지고 오셨다. "애들 키우는 사람들은 이 바카라 읽으면 자동 눈물 버튼이야." 그 바카라은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로, 엄마가 유령이 되어 내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아이들에게 무엇이 남을지 질문을 던지는 그림바카라이었다.
바카라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대문자 F의 숙명이다. 이미 다른 봉사자분들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남잔데..' 공개된 자리에서 울 수는 없지, 하며 그 자리에서 읽기를 포기하고 아이들이 등원한 시간에 빌려와 집에서 혼자 읽었다. 혼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별다른 내용이 없고 길지도 않은 그림바카라에 이렇게까지 마음이 닿을 수 있다니. 활자로 된 바카라을 읽는 것만이 바카라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림바카라은 내 앞 바로 가까이에서 나의 감정을 다시 꺼내주는 힘이 있었다. 언급한 바카라 이외에도 아이들에게 읽어주다 보면 고맙게도 나를 흔들거나 내게 물어보는 바카라들을 만나곤 한다.
모든 바카라이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아이들이 읽어준 바카라들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림바카라 속의 문장 하나하나가 아이의 삶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와 바카라을 읽으며 함께 눈을 맞추며 온기를 느끼고 있었던, 바카라을 읽어주던 시간은 오롯이 우리의 시간으로 남는다.
아이에게 바카라을 읽어주는 시간 동안에는 나는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 존재한다. 그림바카라은 페이지가 아무리 많은 바카라이어도 길어야 10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바카라을 읽어주는 동안에는 스마트폰도 할 수 없고, 해야 할 일을 생각할 수도, 하지 못한 일을 후회할 수도 없다. 그저 아이, 바카라, 그리고 나만 함께한다.
아이들은 계속 자라고, 가끔은 피하고 싶던 "아빠 바카라 읽어줘" 하는 말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곤 스스로 보고싶은 바카라을 골라서 혼자 읽을 것이다. 양손 가득 바카라을 가지고 오던 아이들은 언젠가 내 삶에서 하나의 추억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니, 바카라을 한 권만 덜렁 들고 옆으로 오는 날에는 서운한 마음도 든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밤의 '잔업'을, 나는 오늘 밤도 기꺼이 이 행복한 잔업을 준비한다.